방송대서 '인생 이모작' 준비하는 중·장년층 는다

입력 2017.12.18 03:02

40대 이상 신·편입생 40% 넘어
승진·이직·창업 위해서 공부
온라인 수업, 시공간 제약 없어
학비 저렴… 자연계열 학과 인기

중·장년층들이 국립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이하 방송대) 문을 두드리고 있다. 방송대 산하 원격교육연구소에 따르면 방송대 신입생 지원자 중 40대 이상 중·장년층 비율이 2013년 1학기 전체 지원자 중 39.6%에서 2017년 1학기 45.8%로 증가했다. 40대 이상 편입생 지원자도 같은 기간 30.6%에서 41.9%로 뛰었다. 아직은 전체 신·편입생에서 10~30대 비율이 51.3%로 과반수이나, 중년층 비율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2017학년도 1학기 신·편입학생들의 전체 평균 연령은 39.4세로, 2016학년도 1학기 38.3세보다 높아졌다. 방송대 관계자는 "평균 수명이 길어져 이른바 '100세 시대'가 다가오면서 퇴직 이후 여생(餘生)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며 "재교육을 받고 새로운 삶에 도전하려는 이들이 방송대를 찾는다"고 설명했다.

◇"대기업 퇴직 후 방송대 통해 환경 공무원 됐죠"

방송대는 1972년 정부가 설립한 국내 최초 원격 대학이다. 대졸자가 전체 인구의 10%에 못 미치던 시절, 정부가 고등 교육 기회를 넓히기 위해 만든 교육기관이다. 그간 가족 생계를 위해 진학을 포기한 장남, 부모 반대에 부딪혀 학업을 중단한 딸 등 각종 사연을 품은 66만여 명 졸업생을 배출했다.

요즘은 양상이 좀 달라졌다. 최근 이곳에 입학·편입하는 상당수가 고등 교육을 받은 후 남은 인생을 재설계하려는 이들이다. 방송대가 시간과 공간 제약 없이 온·오프라인 수업을 병행하는 블렌디드 러닝(Blended Learning)을 도입한 덕분에 재직 중 틈틈이 새로운 학문을 공부하거나 업무 역량을 높이려는 직장인이 증가한 것이다. 2017학년도 1학기 신·편입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학사 학위를 소지한 편입학 지원자가 지난해보다 6.9%P 늘어난 43.1%였다.

연제훈(58)씨는 27년간 국내 대기업 전자 회사에 근무하다 지난 2011년 퇴직한 뒤 현직에서 익힌 에너지 지식을 전파하는 환경연구소 강사로 일했다. 강의를 위해 공부하고 준비하다 보니 에너지 및 환경 문제에 대한 현장 경험은 풍부하지만 체계적이고 학문적인 지식은 부족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후 2013년 방송대 환경보건학과 3학년으로 편입했다. 매일 4시간씩 온라인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며 논문을 썼다. 학업 난도가 높은 편이라 교과목을 좋은 성적으로 이수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4학년 땐 바쁜 와중에 산업위생관리기사 자격증도 땄다. 수강 과목이 각종 환경 자격증에 필요한 과목과 겹치는 점이 많다는 점을 활용한 덕분이었다. 2014년 우연히 수원시청 홈페이지에서 환경직 공무원 공고를 보고 지원해 합격한 그는 현재 환경정책과에서 수질 관리 업무를 맡고 있다. 연씨는 "환경보건학과 출신 학위와 산업위생관리기사 자격증 덕분에 지원 자격을 충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방송대 대학원 환경보건시스템학과 석사 학위 취득을 앞두고 있으며, 바쁜 일상에도 지난해 상하수도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하는 등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연씨는 "방송대 석사 학위나 자격증을 취득하면, 승진이나 재취업에 유리하다"며 "주변에 방송대를 활용해 '인생 이모작'에 도전하라고 적극 추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35년간 근무한 은행에서 지점장까지 지낸 김도영(58)씨는 지난해 11월 사내 퇴직자 인생 설계를 돕는 KB경력컨설팅센터에 초대 센터장으로 임명됐다. 퇴직(예정)자의 재무 설계와 전직(轉職)을 지원하는 곳이다. 김씨는 대부분 수강자가 중·장년층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들을 위해 더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교육 시스템을 마련하려고 올해 방송대 교육학과에 편입했다. 김씨는 "교육학과 전공 과목 중 '성인 학습 및 상담론' 등이 50대 이상인 상담자 상황과 심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됐다"고 했다.

그는 한 학기 등록금이 30만원대로, 수백만원 등록금을 내야 하는 일반 대학보다 비용 부담이 작다는 점을 방송대 장점으로 꼽았다. 그는 "온라인 강의가 중심이라 누구도 '하라' '마라' 시키지 않으므로 학습자 의지가 중요하다"며 "스스로 학업 계획을 짜고 실천하는 자기주도 학습이 가능해야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도영씨는 방송대의 주요 장점으로 명문대 출신의 실력 있는 교수진을 꼽았다. 오른쪽 사진은 연제훈씨가 상하수도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하는 모습.
김도영씨는 방송대의 주요 장점으로 명문대 출신의 실력 있는 교수진을 꼽았다. 오른쪽 사진은 연제훈씨가 상하수도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하는 모습./방송대 제공
◇방송대, 자연계열 인기 높아져

인생을 재설계할 때는 산업계 변화를 잘 살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방송대 학과별 지원율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과거 방송대 내 전통 강자는 교육학과·청소년교육과·유아교육과·농학과였다. 교육 분야의 자격증 취득을 통한 사회 재진출이나 귀농을 꿈꾸는 이들의 수요가 높았다. 요즘은 정보통계학·컴퓨터과학·환경보건학 등 자연계열 전문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학과의 인기가 높아지는 추세다. 올해 1학기 지원자 수의 경우 정보통계학과가 7.5%P, 컴퓨터과학과가 4.9%P 상승하는 등 자연과학대학을 중심으로 작년 대비 지원율이 증가했다. 내년 신설하는 사회복지학과는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 취득이 가능해 은퇴 후 사회복지사를 희망하는 이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다.

김외숙 총장직무대리는 "제2의 인생을 설계할 때는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다"며 "누구나 언제든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한 방송대 교육 시스템을 통해 약 66만명 동문이 삶을 체계적으로 재설계했다"고 말했다. 방송대는 2018년 1월 9일(화)까지 인문·사회·자연·교육과학대학 4개 단과대학 23개 학과에서 신입생 5만9590명과 편입생(2·3학년) 6만174명을 모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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