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 칼럼] 바보가 박사인 양 기술자를 통제할 때

조선일보
  • 최보식 선임기자
    입력 2017.12.15 03:17

    대통령의 체면을 살려줄 '월성 1호기'의 조기 폐쇄에 감춰진 대목이 있다
    '7000억원+α'라는 돈이다
    현 정권의 핵심들은 돈 문제에 너무나 초연해…

    최보식 선임기자
    최보식 선임기자

    정부가 내년도 전력 수급 계획에서 '월성 1호기 원전'을 뺐다. 이는 월성 1호기를 더 이상 돌리지 않겠다는 것이고, 원전 폐쇄 단계에 들어갔다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밀어붙였던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중단이 좌절됐으니, 오래된 월성 1호기라도 문 닫게 해야 '탈(脫)원전' 대통령의 체면이 설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체면을 살려줄 월성 1호기의 조기 폐쇄에는 감춰진 대목이 있다. '7000억원+α'라는 돈이다. 현 정권의 핵심들은 이런 돈 문제에 너무나 초연해서 필자가 속물처럼 이를 설명해야겠다. 월성 1호기는 2012년 말 '설계 수명'이 만료됐다. 통상 원자력발전소는 신형 부품을 계속 갈아 끼우고 기술을 업데이트하면서 '설계 수명'의 두 배쯤 가동된다. 미국에서는 원전의 평균 나이가 60년이다. 그 수명이 80년까지 연장되는 추세다. 원전 폐쇄 결정은 두 가지 기준에서 살핀다. 첫째는 계속 가동하면 안전을 더 이상 확신할 수 없는 경우이고, 둘째는 원전 설비 부품의 교체 비용보다 차라리 새로 짓는 게 돈이 덜 든다는 경제적 판단이 나온 경우다. 이는 과학적으로 측정되고 확률이 계산된다.

    월성 1호기는 설계 수명에 도달하기 전부터 '엔진'이라고 할 수 있는 압력관 380개 등 핵심 부품과 설비를 다 교체했다. 그렇게 대형 공사를 하고 난 뒤 '가동 연장 신청'을 했다. 자동차 안전 점검을 받기 전에 결격 사유가 될 만한 것을 손봐서 간 격인데, 문제는 그 경비가 7000억원에 달했다. 국민 동의도 받지 않았다. 이미 막대한 돈을 집어넣었으니 연장 신청을 누가 거부할 수 있겠느냐는 속셈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독단과 불투명성으로 많은 질타를 받았지만 이미 저질러놓은 뒤였다.

    규제 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계속 돌리게 하느냐 마느냐의 심사에 들어갔다. 쟁점은 '안전성 여부' 판단이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뒤여서 반대 여론이 거셌다. 한번 회의가 열리면 새벽까지 진행됐고 마침내 승인이 떨어졌다. 월성 1호기의 안전성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공식 검증을 받은 것이다. 그렇게 해서 가동이 10년 더 연장됐다. 당시 원자력안전위원장은 "우리가 전문가인데 정말 위험하다면 왜 계속 돌리도록 하겠나"라고 말했다.

    월성원전 1호기 모습. /조선일보 DB
    환경단체 등에서 연장 허가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가 전문적인 기술과 안전성까지 판단할 능력은 없었다. 심사 과정과 서류 누락 등에서 절차상 위법 여부를 판단했다. 1심에서는 환경단체가 일부 승소했다. 현재 항소심에 계류 중이다. 만에 하나 월성 1호기의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판결이 나오면 가동 연장을 승인해준 원자력안전위원회부터 문을 닫는 게 옳다.

    아직 재판도 안 끝났는데, 정부가 '월성 1호기의 조기 폐쇄'를 발표했다. 엄격히 말해 이는 삼권 분립에 위배된다. 대통령 지시가 있었다면 대통령의 직권 남용이다. 단언하지만 정부는 원전 사업자인 한수원이 자발적으로 월성 1호기를 포기하는 모양새를 만들어 위법 논란을 피해갈 것이다. 한수원이 사업적 판단으로 문 닫겠다고 하면 법적으로 시비를 걸 수 없게 된다. 한수원 측은 "우리는 입이 없다. 정부 방침이 정해지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수원은 개인 사업자가 아니고 공기업이다. 7000억원은 국민 재산이다. 국민이 "너희 마음대로 허공에 날려버려도 좋다"고 동의해줬을까. 가령 대통령이나 산자부 장관이나 한수원 사장이 7000억원이 자기 돈이라면 죽다가 깨어나도 이런 폐쇄 결정을 할 리 없다. 현 정권을 움직이는 핵심들은 대부분 말로만 살아왔지 밥벌이 노동을 별로 해본 적이 없다. 직접 돈 버는 일이 얼마나 고단하며 피땀을 쏟고 자존심을 버려야 하는지, 그래서 돈이 얼마나 귀한지를 모른다. 기껏 '0'이 하나 더 붙고 덜 붙는 숫자 단위로만 돈을 안다.

    이미 문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으로 1000억원 이상 손해가 났다. 정부가 이를 어떻게 보전해 줬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원전을 문 닫게 한 뒤의 뒷감당이나 구체적 대안은 별로 없다. 원전 비율을 줄이는 대신 신재생에너지를 몇 %까지 올리면 되지 않느냐는 식이다. 인구밀도가 높고 험한 지형에서 대규모 태양광과 풍력발전 단지는 과연 조성할 수 있을까. 자연환경 파괴가 일어나고 온 세상이 민원으로 가득 찰 것이다. 현 정부가 좋아하는 LNG 발전소는 청정에너지로 포장돼 있지만 석탄보다 극미세 먼지를 대량 방출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나라를 끌고 가는 현 정권의 핵심들은 자신의 신념과 단편 지식에 의해 내린 결정이 얼마나 많은 사회적 비용과 후유증을 낳을지에 대해 생각이 없다. 이들에게서 조선시대 공리공담(空理空談) 하는 조정 대신들의 모습이 보인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에 이런 구절이 있다. '바보가 박사인 양 기술자를 통제할 때/ 단순한 진실이 잘못 불리는 것을 볼 때/ 정말 이런 세상은 떠나고 싶다/ 그대를 두고 가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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