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명 정치부 기자

지난 11일 밤 중국 국영 CCTV는 문재인 대통령과의 단독 인터뷰 내용을 편집해서 만든 22분 40초짜리 프로그램 '환구시선(Global Watch)'을 방영했다. 보는 내내 혼란스러웠다. 남의 나라 대통령을 인터뷰하면서 "중국 측이 가진 전략적 안보 이익 훼손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한국 측은 어떠한 조치를 취해 나갈 것인가"라고 집요하게 압박하는 중국 앵커의 무례에 분노해야 맞는지, 그럼에도 대통령이 "앞으로도 사드가 중국의 안보 이익을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한국은 각별히 유의할 것"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는 우리 처지에 비애를 느껴야 할 일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이날 방송은 CCTV의 수이쥔이(水均益) 앵커가 청와대 본관 앞에서 시청자들에게 말을 건네는 장면으로 시작했다. "(여러분은) 특히 이미 한동안 양측을 괴롭게 한 '사드' 문제를 어떻게 적절하게 해결할지, 한국 측이 중국 측의 전략 문제 방면 우려를 해소하려고 다음 단계에 어떠한 절실한 노력을 기울일지에 관심 있을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문제에 어떻게 답할까요? 우리 함께 청와대에 들어가 봅시다." 그들은 방송 첫머리부터 중국 앵커가 문 대통령에게 사드 문제를 따지러 가는 형식을 취했다.

곧이어 방송은 10·31 한·중 합의 내용을 간략히 설명하는 내레이션과 우리 정부가 표명한 세 가지 입장, 소위 '3불(三不)'을 대형 그래픽으로 보여줬다. ▲'사드' 추가 배치를 하지 않는다 ▲미국이 주도하는 지역 미사일 방어(MD) 체계에 가입하지 않는다 ▲한·미·일 안보 협력은 3국의 군사 동맹으로 발전하지 않는다고 쓴 자막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이어진 문 대통령 인터뷰에서 중국 앵커는 "향후 사드 문제와 관련해서 어떠한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중국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할 것인가"라며 사드 관련 질문을 거듭했다. 문 대통령은 "시간을 두면서 해결해 나가는 그런 지혜가 필요하다"며 "(우려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유의할 것"이라고 답했다.

취임 후 첫 중국 순방을 앞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일 청와대 충무실에서 중국의 CCTV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인터뷰는 11일 오후 CCTV를 통해 방송됐다.

중국 앵커가 이쯤에서 질문을 멈췄다면 중국의 무례에 대한 '분노'보다 우리의 처지에 대한 '비애'를 더 크게 느꼈을 것이다. 사드 배치라는 안보 주권상의 결정을 두고 무슨 부당한 일을 한 것처럼 중국에 추궁받게 된 데는 우리가 자초한 측면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 앵커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3불'을 열거하며 세 번째 질문을 던졌다. "CCTV를 보는 수억명의 중국 시청자에게 한국 정부의 입장,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노력하겠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 대통령에게 대놓고 '3불 맹세'를 요구한 것이다. "그것(세 가지 입장)은 결코 새로운 입장이 아니다"는 문 대통령의 대답을 CCTV는 편집 과정에서 삭제했다. 대신 내레이션으로 "양국 관계의 미래 방향은 한국 측이 관련된 '약속'을 절실하게 준수할 수 있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언론이 국가 정상에게도 집요하게 질문하는 것 자체를 무례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CCTV는 '언론'이라기보다 '선전 기관'이다. CCTV의 녜천시(

辰席) 사장은 중국 공산당 중앙선전부 부부장이면서 중국의 미디어 정책을 총괄하는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 당서기 겸 국장이다. 그 방송사 앵커의 질문은 언론의 질문이라기보다 중국 정부의 '해명 요구'로 봐야 한다.

중국은 그동안 '친성혜용'이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주변 외교 이념이라고 주장해 왔다. 주변국과 친하게 지내고(親), 성실하게 대하며(誠), 혜택을 나누고(惠), 포용하겠다(容)는 것이다. 물론 주변 외교(周邊外交)란 말 자체가 중국을 '중심'에 놓는 개념이기는 하다. 그래도 중국이 행동으로 친밀하고 포용하는 태도를 취한다면 수긍하지 못할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남의 나라 대통령을 국빈 초청해 놓고서 국영 방송사를 내세워 '사드 잡도리'를 하는 것이 정말 '친성혜용'의 태도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