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사거리 눈내리는 마을

    입력 : 2017.12.09 03:01

    [마감날 문득]

    대구 출신 후배가 대학 시절 이화여대 여학생이랑 미팅을 했다. 역시 대구 출신인 주선자는 장소를 '이대 앞 사거리 눈내리는 마을'이란 카페라고 알려줬다. 서울 지리 모르는 척하기 싫어 이대 앞 사거리에 일찌감치 나가 '눈내리는 마을'을 찾아봤으나 발견할 수 없었다. 그 시각 이대 여학생은 '샤갈의 눈내리는 마을'에서 30분을 기다리다 집에 갔다.

    후배는 "그때 그 여학생이 꽤 괜찮았다던데…" 하며 "인생이 어느 한순간 실수로 완전히 다른 길로 가는가 보다"라고 했다. 나는 "그건 실수가 아니라 샤갈과 사거리를 헷갈린 네 무지의 소치"라고 말해주었다. 후배는 고개를 끄덕인 뒤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더니 돌아오지 않았다.

    샤갈과 사거리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그 후배가 말한 게 또 있었다. "대구 아아들이 받아쓰기에서 제일 많이 틀리는 게 뭔지 압니꺼" 하더니 '끄덕이다'라고 했다. '꺼덕이다'인지 '꺼득이다'인지, '끄득이다'인지 '끄덕이다'인지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다. 주관식 받아쓰기 문제가 사지선다형 객관식이 되는 것이다. 그는 '금을 긋다'도 아주 까다롭다고 했다. '끄덕이다'를 틀려본 경험 때문에 '금'과 '긋다' 중 하나는 분명히 'ㅓ' 발음이 날 터인데 그게 '검'인지 '것다'인지 알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금을 긋다'는 그들에게 '검을 긋다'와 '금을 것다' 둘 중 하나를 고르는 문제로 둔갑했다. 그 둘 모두 틀렸기 때문에 무조건 그 문제를 틀릴 수밖에 없다.

    이 작은 나라에 그렇게 많은 사투리가 있다는 것도 흥미롭지만, 알아들을 수 없고 받아쓸 수 없을 만큼 쪼개져 있다는 사실도 믿기 어렵다. 어쩌면 산과 강으로 이 좁은 땅이 자잘하게 나뉘어 있다 보니 사투리가 배타적으로 발달한 게 아닌가 싶다. 고대(古代)부터 나라를 가르고 쪼개면서 없던 사투리를 만들어서 통치 수단으로 삼았는지도 모른다.

    후배는 한참 뒤 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이기 마, 여자들은 그래도 잘 고치던데, 내는 안 고치집니다" 했다. "됐으니까, 가자" 하고 일어서는데 그가 말했다. "행님, 내 발음이 아직도 섑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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