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때 벤 존슨 잡은 도핑 전문가 "평창 '약물과 전쟁'도 내가 선봉"

    입력 : 2017.12.08 03:02 | 수정 : 2017.12.08 09:17

    [평창 D-63]

    - 권오승 KIST 도핑센터장
    88올림픽 당시 말단 연구원이 이젠 평창 도핑 분석 총책으로
    "979(존슨 기록)·926(판정 날짜) 내 평생 잊지 못할 숫자 조합… 평창선 제2 벤 존슨 안봤으면"

    "88올림픽 당시 벤 존슨요? 전 캐나다 선수인지 아프리카 선수인지도 몰랐어요. 덩치가 얼마나 컸는지. 다리 하나가 내 몸통 전체 같은 사람이었어요."

    권오승 KIST도핑콘트롤센터장
    권오승 KIST도핑콘트롤센터장은“도핑 기술이 아무리 지능적이라도 결국은 걸린다”고 했다. /이진한 기자
    권오승(58)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도핑콘트롤센터장은 1988서울올림픽의 기억을 더듬었다. 당시 벤 존슨(캐나다)은 육상 100m에서 9초79의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그의 약물 복용 사실을 최종 확인한 인물이 당시 말단 연구원이었던 권 센터장이었다. 1차 테스트에서 이상이 발견돼 9월 26일 2차 테스트 때는 규정에 따라 벤 존슨 입회하에 바로 옆에서 시료를 분석했다. 테스트 시간은 20분 정도였다고 한다. 벤 존슨은 절망적인 표정으로 전 과정을 지켜봤다. "저도 긴장됐지만 벤 존슨의 얼굴은 완전히 굳어 있었지요."

    권 센터장은 그의 소변에서 금지 약물인 스테로이드계 '스타노조롤'을 발견했다. 이틀 전 세계기록을 세운 벤 존슨이 전 세계를 두 번째로 충격에 빠뜨린 순간이었다. 조선일보는 당시 이 사실을 9월 27일자 1면에 특종 보도했다.

    "979(벤 존슨 기록), 926(벤 존슨 양성반응 확인 날짜) 숫자 조합은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권 센터장은 웃음이 없는 인물이었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저는 운동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TV를 봐도 일반 뉴스를 보지 스포츠 뉴스는 보지 않습니다."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IOC(국제올림픽위원회)는 6일 러시아의 평창올림픽 참가 금지(선수 개별 참여만 허용) 중징계를 내렸다. 국가 주도 약물 스캔들 탓이다. 권 센터장이 이끄는 도핑콘트롤센터도 올림픽을 앞두고 초비상 상태다. 특히 지금은 WADA(세계반도핑기구)로부터 올림픽 도핑콘트롤센터 특별 공인을 받아야 하는 시점이다. "도핑콘트롤센터는 매년 WADA의 공인 인증을 받아야 합니다. 이번엔 올림픽 특별 공인을 추가로 받아야 하니 피가 마르지요."

    WADA는 KIST도핑콘트롤센터 같은 기관을 매년 인증한다. 그 과정이 무척 까다롭다. 도핑콘트롤센터는 1년에 6000여개 시료(소변과 혈액)를 분석하는데, 이 중에는 WADA가 의도적으로 약물을 넣어 보낸 '스파이 시료'도 있다. 이걸 제대로 골라내지 못하면 공인 자격을 박탈당한다. 현재 WADA 공인 랩은 24국 27개 기관뿐인데, 올해만 카자흐스탄·남아공·루마니아 등 3국의 공인이 취소됐다.

    권 센터장은 "88올림픽 때 40여개였던 WADA 금지 약물 리스트가 지금은 400여개로 늘었다"며 "자칫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한순간에 연구원들도 실업자가 된다"고 했다. WADA는 약물이 몸에서 자연 생성된 것인지 아닌지 구분까지 요구하는 까다로운 '테스트'를 요구한다.

    도핑콘트롤센터는 올림픽이 시작되면 24시간 체제에 들어간다. "시료가 도착하면 24시간 내 도핑 여부를 적발할 겁니다. 세계가 인정하는 약물 경찰 역할이지요."

    권 센터장은 "도핑 유혹은 기록 단축을 원하는 선수뿐 아니라, 이를 통해 이익을 노리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계속될 것"이라며 "88올림픽 때 벤 존슨 같은 표정을 평창올림픽에선 보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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