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장시호

    입력 : 2017.12.08 03:16 | 수정 : 2017.12.08 11:24

    어제 아침 신문에 실린 최순실씨 조카 장시호씨의 사진 두 장이 아주 대조적이었다. 회색 재킷과 검은색 외투를 입고 법정을 향하는 장시호씨는 꼿꼿하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그러나 재판부는 그에게 검찰 구형보다 많은 2년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선고 후 장씨는 "머리가 하얘져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재판정을 나서는 그는 수갑 찬 두 손을 모은 채 눈을 떨군 모습이다.

    ▶특검에서 장씨는 '특급 도우미' '복덩이'로 불렸다. 최씨 국정 농단의 와중에 각종 이권을 취했던 그는 구속된 후 이모에게 불리한 증언과 증거물을 쏟아냈다. 반면 수사관에겐 '오빠', 여성 교도관에겐 '언니'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는 당사자만 알 것이다. 그는 올여름 구속 만기로 석방됐고 검찰은 1년 6개월의 낮은 구형을 했다. 특검 검사는 "나가면 아이 잘 키우라"고 했다고 한다. 장씨로선 법정 구속이 청천벽력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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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삼성그룹을 압박해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후원금을 내게 한 혐의로 기소된 장시호씨의 1심 선고 공판이 열렸다. 꼿꼿한 걸음걸이로 들어섰던 장씨(왼쪽 사진)가 검찰 구형보다 높은 형을 선고받은 후 수갑 찬 양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법정을 나서고 있다. /김지호 기자

    ▶마약이나 뇌물 수사 때 공범의 죄를 진술하는 조건으로 처벌을 낮춰주는 것을 '플리바게닝'이라고 한다. 미국과 캐나다·프랑스·이탈리아 같은 나라에 이 제도가 있다. 미국의 경우 검사와 피의자 간 플리바게닝은 통상 판사 앞에서 이뤄진다. 1992년 뉴욕 마피아 대부 존 고티가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오른팔 그라바노가 "고티가 19건의 살인에 간여했다"고 한 법정 증언이 결정적이었다. 검찰은 증언하면 감형해 주겠다고 그라바노를 설득했다.

    ▶한국엔 플리바게닝 제도가 없다. 하지만 실제론 존재한다. 20년 전 한보 수사 때 한보철강에 대출해 준 은행장 7명 중 일부만 기소됐을 때 그런 얘기가 나왔다. 십수 년 전 한 도지사가 30억원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을 땐 돈 준 기업인이 약식기소됐다. 최근 검찰 수사에서는 지난 정부 청와대 수석과 국정원 간부가 블랙리스트 작성하고 특수활동비 건넨 혐의가 있는데도 처벌되지 않았다. 당사자로선 증언과 처벌을 맞바꾼 셈이다.

    ▶8년 전 상영한 영화 '모범시민'에서 주인공은 괴한의 습격으로 아내와 딸을 잃는다. 범인들은 곧 잡히지만 한 명은 사형이 선고되고 나머지 한 명은 플리바게닝으로 감형돼 풀려난다. 분노한 주인공이 풀려난 범인 등에게 복수극을 펼치는 게 영화 줄거리다. 플리바게닝을 얘기할 때마다 부딪히는 게 법감정의 문제다. '이 사람을 잡기 위해 저 사람은 덮어줘도 되나' '피해자는 빠지고 범죄인과 검찰 간 형량 거래를 하는 것이 과연 법적인가' 같은 질문이다. 장씨 수감이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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