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사회] 구속 남발 막는 영장 보석 도입하자

    입력 : 2017.12.08 03:15

    검찰, 구속 위주 수사 관행… 피의자는 방어권 보장 안 돼
    영장 발부하되 주거 제한 등 조건부 보석 제도 도입을

    이명진 논설위원
    이명진 논설위원

    법원과 검찰의 구속영장 갈등은 뿌리가 깊다. 국민 관심이 큰 수사 때마다 거의 어김없이 불거졌다. 2006년 대검 중수부가 론스타 사건을 수사할 때는 서로 '인분(人糞)' 얘기까지 입에 올리며 멱살잡이 직전까지 갔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지역 법원을 순시하며 판사들에게 '영장 기각'을 독려하자 정상명 검찰총장도 지방을 돌며 "이 뭐꼬?" 하고 맞불을 놨다.

    검사들 불만은 대략 이렇다. '범죄 혐의가 중대한데 법원이 주관적으로 판단해 기각한다. 영장이 무슨 로또냐.' 법원은 이렇게 반박한다. '범죄가 중대하다는 것 자체가 검사의 주관이다. 증거인멸·도주 우려 없으면 불구속이 원칙 아닌가.'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양측의 다툼에 피해 보는 건 사건 당사자인 국민이다.

    사실 우리 검찰처럼 구속에 목매는 검찰은 세상에 없다. 검사 세계에서 구속을 뜻하는 은어(隱語)가 '골인'이다. 구속은 수사 방해를 막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데 목표 그 자체가 돼 있다. 영장이 기각되면 몇 번이고 다시 청구해 끝내 피의자를 구속하면 강골(强骨) 검사로 치켜세운다. 구속할 때까지 눈에 불을 켜고 새 혐의를 찾아 먼지떨이 수사를 한다. 포승에 묶이면 평생 쌓은 명예는 회복이 불가능해지고 자존감도 무너진다. 검사에게 매일 불려 다니다 보면 어제 무슨 얘길 했는지도 아득해진다. 자포자기식 자백이 속출하고 검찰은 재판에서 유리한 위치에 선다. 검찰이 수십 년간 구속 위주 수사 관행을 유지해 온 이유다.

    알고 지내던 검사가 씩씩거리며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온 적이 있었다. 수백억 회삿돈을 횡령한 건설업자의 로비 혐의를 수사하려고 청구한 영장이 납득 못 할 사유로 기각됐다는 것이다. 기각 사유를 보니 정말 그랬다. 업자가 구속되면 회사 경영에 차질이 생긴다는 거였다. '판사 맘대로'라는 검찰의 항변 역시 근거가 없지 않다.

    박근혜 정부 시절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과 함께 국가정보원의 불법사찰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최윤수 전 국정원 2차장이 2일 오전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경기도 의왕 서울 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적폐 수사 과정에서 검찰 수사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먼저 수사받은 사람이 극단적 선택이라도 할까 봐 전화한 걸 '증거인멸 시도'로 몰아갔다. 한때 나라 안보를 책임졌던 사람들을 조폭 다루듯 포승에 줄줄이 엮어 포토라인에 세웠다. 판사들은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고 영장 발부 도장을 찍어줬다. 영장 기각 판사에 대한 테러는 이제 일상(日常)이 됐다. 적폐 수사가 끝난다고 이런 일들이 사라질까.

    영장재판 제도를 근본적으로 수술하는 데서 해법을 찾아보자는 목소리가 최근 법조계에서 커지고 있다. 1997년 도입된 영장실질심사로 연간 14만명이던 구속자가 3만명 안팎으로 줄었다. 그러나 검찰과 피의자의 정보 불균형 등 여전히 많은 문제가 있다. 검찰은 영장 판사에게 통화 추적 내용, 압수수색 증거, 참고인 진술서까지 산더미 같은 수사기록을 들이댄다. 피의자는 달랑 영장 사본만 받는다. 변호인 선임은 영장실질심사 하루나 이틀 전 하는 경우가 잦다. 방어권이 제대로 보장된다고 보기 어렵다. 구속적부심이라는 사후(事後) 구제 절차가 있지만, 적부심 석방은 구속자의 1% 남짓에 불과해 풍토 자체를 바꿀 수 없다.

    미국·영국처럼 우리도 영장보석(조건부 영장 발부)을 도입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영장을 발부하되 각종 조건을 달아 일단 보석(保釋)으로 풀어주는 것이다. 보증금 외에 주거 제한, 사건 관련자 접촉 금지, 제3자의 보증, 출국 금지, 수사기관에 정기 보고, 교육 이수 등 다양한 조건을 걸면 증거인멸·도주 우려나 재판 불출석을 막을 수 있다. 신체 자유와 방어권 제한을 최소화하면서도 사실상 구속 대체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영장보석을 도입한다면 검찰에는 영장 기각에 대한 항고권을 줘야 한다. 상급심 판례가 쌓이면 법원의 영장 발부·기각 기준이 구체화돼 예측 가능성이 커진다.

    영장보석은 2006년 정부가 법안을 국회에 냈지만 검찰 반발로 무산됐고, 2011년 양승태 대법원장이 제안했지만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검찰·법원에 맡겨둘 일이 아니다. 이참에 국회가 논의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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