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의 진주만 공습때 전사했던 미 해군, 76년만에 신원 확인해 군인장례식

  • 김유진 인턴

    입력 : 2017.12.07 19:10

    76년 전 일본의 미국 하와이 진주만(the Pearl Harbor) 공습이 있었던 날을 하루 앞둔 6일, 당시 숨졌던 미 해군 수병의 신원이 확인돼 군인장례식을 거쳐 버지니아 주의 알링턴 국립묘지에 묻혔다. 1941년 12월7일 일본은 미 해군 전함들이 정박해 있는 진주만을 기습 공격했고, 모두 2403명의 미군과 민간인이 숨졌다.

    76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 때 '실종'처리됐던 미 해군 하워드 빈의 군인장례식이 6일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거행됐다./ U.S. NAVY

    미 보스턴 글로브에 따르면, 당시 27세였던 매사추세츠주 출신인 하워드 빈은 당시 전함 오클라호마함에서 무전병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오클라호마함은 수많은 어뢰 공격을 받아 결국 전복됐고, 빈을 포함해서 이 전함에서만 모두 429명이 전사했다.

    그런데 이때 수습된 해군들의 유해는 호놀룰루의 ‘펀치볼(Punchbowl)’이라고도 불리는 태평양 국립묘지에 함께 묻혔다. 1940년대에는 지금과 같은 DNA 검사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표식이 없으면 전사자의 신원을 파악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후 DNA 검사를 통한 신원 확인이 가능해지면서, 미국 정부는 2015년부터 이 태평양 국립묘지에 안장된 유해들을 다시 발굴해 일일이 신원 확인에 나섰다.

    하워드 빈의 경우, 살아있는 친척들과 DNA 대조 및 치열 비교, 정황 증거 등을 거쳐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워드 빈의 조카 팀 소바(57)는 “엄마는 생전에 늘 해군에서 준 성조기를 간직했다”며 “삼촌의 유해가 드디어 우리가 사는 미 동부 쪽에 안장된 것을 아셨더라면 정말 뛸 듯이 기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 국방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2차 대전 중에서 40만 명 이상의 미국인이 숨졌으며, 이 중 근 7만300명은 지금도 유해 확인이 되지 않았다”며 “하워드 빈의 이름은 그 동안 ‘펀치볼’의 실종군인 명단 기념비에 다른 2차대전 실종자들과 함께 기록됐지만, 이제 그의 이름 곁에는 ‘유해 확인(accounted for)’이라는 장미 리본이 부착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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