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가 쓰면 아무리 황당해도 다 말이 된다. 제주도가 고립돼 악귀의 섬이 되거나('아일랜드') 서울이 붕괴되면서 생존을 위한 악다구니가 이어지고('심연의 하늘'), 멸망한 나라의 암행어사가 귀신을 부리는 마패를 들고 악을 처단('신암행어사')하는 충격적 활극 모두 이 남자가 썼다. "일본에는 사람 엉덩이가 주인공인 만화도 있다. 논리를 갖춰라. 어떤 스토리도 스토리가 될 수 있다." 만화 스토리작가 겸 프로듀서 윤인완(41)씨가 말했다.

5일 서울 서교동 와이랩에서 만난 윤인완씨는“웹툰의 경쟁 상대는 다른 웹툰이 아니라‘모든 볼거리’”라면서“문학과 TV·영화와 모든 인터넷 영상까지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윤씨는 웹툰 세 편 동시 연재, 여러 연재 웹툰을 하나로 연결하는 야심 찬 기획 '수퍼스트링'까지 발표하며 지금 웹툰계에 가장 강력한 파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출판만화도 절대 강자였다. 만화가 양경일(47)씨와 합을 맞춘 '신암행어사'(2001)는 일본에서만 판매 부수 450만부를 넘겼을 정도. 만화 강국 일본에서 한국 출판물이 쌓아올린 최고 판매 기록이다. 그런 그가 웹툰행을 택했을 때 시장은 술렁였다. "2004년부터 6년간 도쿄에 머물며 연재했다. 일본 진출도 호기심 때문이었고 웹툰 도전 역시 마찬가지다." 2014년 첫 웹툰용 기획작 '심연의 하늘'을 내놨으나 "웹툰의 문법을 따르되 모든 콘티 작업은 출판식으로 한다"고 했다. "그림을 세로로 늘어놓으면 별 내용 없어도 분량이 많아 보이는 착시가 생긴다. 연출이 탄탄하려면 여백이 귀한 출판 만화처럼 촘촘해야 한다."

웹툰으로 돌아온 '신암행어사' 주인공 문수.

주로 한국적 소재를 비틀어 전혀 다른 판타지를 창조해낸다. 지난달 완결 10년 만에 '신암행어사'가 웹툰으로 귀환했다. "과거 분량 조절 문제로 결말을 급히 내야 했는데 당초 계획대로 마무리를 보여주려 한다"면서 "일본에서 연재돼 일본 만화로 알려져 있지만 젊은 독자에게 확실한 한국 만화로 각인되고 싶다"고 말했다. 채색 및 준비 기간만 3년. "전설이 오셨다"는 독자의 환호가 웹툰 댓글 창을 달구고 있다.

2010년 만화제작사 와이랩을 세웠고, 웹툰 '패션왕' '조선왕조실톡' 등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세를 키웠다. 대표 프로듀서인 윤씨는 '테러맨' '부활남' '신석기녀' 등 제작 중인 10여 개 전작에 관여한다. "내 역할은 논문 심사하듯 스토리의 모순을 찾아내 공격하는 것이다. 일본에서 매주 연재 회의할 때 수없이 당하며 배웠다. 전체 구상을 완벽한 논리로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 물고 늘어진다. 과감하기 힘들 때 치고 나가도록 템포를 조절한다."

과감한 전개는 러시아 소설가 도스토옙스키에게서 배운 것이다. "자극받고 싶을 때마다 '죄와 벌'을 꺼내 읽는다. 주인공이 노파를 살해하는 장면에서 매번 압도당한다. 위기에 위기가 덮쳐오는 스타일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계속 밀어붙인다. "뒤에서 살인마가 쫓아온다. 유일한 탈출구를 연다. 호랑이가 있다. 겨우 탈출하면 용암이 흐른다. 웹툰은 공격적 영역이다. 독자가 '보고 있다'는 의식까지 잊게끔 몰아세워야 한다."

그의 스토리텔링 철학은 "치밀한 논리를 바탕으로 주제와 메시지와 설정이 하나로 모여야 한다"는 것이다. 데뷔작 '데자부'(1996)부터 실험은 시작됐다. 윤회를 소재로 시·공간이 다른 사계절을 배경 삼아 만화가 4명이 다른 이야기를 그리는 기획. 내년부터 본격 확장되는 프로젝트 '수퍼스트링'도 여기서 출발한다. '심연의 하늘'에 잠깐 등장한 테러리스트가 '테러맨' 주인공이 되는 식으로 10여 개의 다른 만화 속 캐릭터가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며 출연하는데, 미국 마블의 '어벤져스'를 떠올리면 쉽다. "'어벤져스'는 사실 말도 안 되는 조합이다. 아이언맨이랑 신(神)이 어울리다니. 하지만 설정이 황당해도 개연성의 아귀가 맞으니 사람들이 열광한다." 내년쯤 이정문 화백의 로봇 만화 '철인 캉타우'(1976) 리메이크도 낼 예정. 내년부터 네이버에 웹툰 전용관이 생기고, 이것들을 하나로 엮은 첫 '한국판 어벤져스'가 나온다. "처음엔 비웃어도 끝은 다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