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온라인게임 해킹 '로열티'로 北공작원에 수억원 갖다바친 게임업자…국보법 위반으로 징역 3년

    입력 : 2017.12.06 14:49 | 수정 : 2017.12.06 17:48

    /조선DB

    북한 조선노동당 산하 해킹프로그램 개발 기관에서 만든 ‘리니지’, ‘서든어택’ 등 인기 온라인 게임용 ‘핵 파일(게임을 손쉽게 해주는 불법 파일)’을 게임 이용자들에게 판매한 뒤, 북한 공작원이 지정한 계좌로 억대의 돈을 송금한 한국인 게임업자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북한 해커들이 만든 온라인 게임 핵 파일 유통 사례가 적발된 적은 있었지만, 북한 공작원과 접촉하며 장기간 돈까지 송금해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된 사례가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8부(재판장 김성대)는 최근 국가보안법(회합·통신·편의제공), 정보통신망법, 전자금융거래법 등 위반 혐의로 기소된 허모(34)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고 6일 밝혔다.

    판결문에 따르면 허씨는 2008년부터 온라인 게임 ‘핵 파일’을 취급해온 판매업자로, 2010년 9월 중국에서 북한 ‘릉라도 정보센터’ 소속 공작원들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릉라도정보센터는 북한의 통치자금을 조성·공급하는 조선노동당 산하 39호실 직속 ‘조선릉라도무역총회사’의 산하기관으로 본사는 평양에, 지사는 중국 항주·단동 등지에 있다. 이 센터는 디도스 공격 등에 활용할 수 있는 온라인 게임 핵 파일을 제작·판매해 북한 김정은의 통치자금을 마련하는 창구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허씨는 2013년부터 릉라도센터 소속 공작원으로부터 ‘엔씨소프트’의 인기 온라인 게임 ‘리니지’에 사용할 수 있는 자동 사냥 프로그램을 받아 다수 게임 이용자들에게 판매했다. 리니지는 전세계적으로 누적 가입자수가 4000만명이 넘는 한국의 대표적 인기 온라인 게임이다. 자동 사냥 프로그램이란 이용자가 게임 속 캐릭터를 직접 조작하지 않아도 캐릭터가 자동으로 게임 속 괴물 등과 싸워 아이템 등을 취득할 수 있게 해주는 핵 파일이다. 허씨는 판매 대금의 60%를 북한 공작원이 지정하는 계좌에 송금했다.

    허씨는 이후 훨씬 적극적으로 ‘핵 파일 사업’에 가담했다. 2015 년 허씨는 릉라도센터 공작원 A씨와 ‘넥슨코리아’의 온라인 게임 ‘서든어택’에 사용할 수 있는 자동사냥 프로그램 ‘뱅월핵’을 제작·배포한 뒤, 그 프로그램에 접속할 수 있는 계정(아이디와 비밀번호)을 다수 만들어 판매하기로 공모했다. 핵 파일의 단순 유통에 그치지 않고 기획·제작에도 관여한 것이다. ‘뱅월핵’이라는 명칭과 계정의 단가(4만5000~5만원)도 A 공작원과 협의해서 정했다. 서든어택도 동시접속자 수가 최대 35만명에 이르는 인기 게임이다.

    이후 작년까지 약 10개월 동안 허씨는 뱅월핵 판매 대금의 80%를 ‘로열티’ 명목으로 A 공작원이 지정하는 중국 계좌에 매주 월요일마다 입금했다. 그 총액은 2억 4700여만원에 달했다.


    北 공작원이 “받은 돈 나라에 바친다”

    이 과정에서 허씨는 A 공작원과 중국 메신저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A 공작원이 북한을 위해 일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법원에 제출된 이들 대화 기록에 따르면, 작년 4월 A 공작원이 ‘뱅월핵’ 서비스를 중단하고 북한으로 귀국한다고 하자 허씨는 “사장님이 귀국하시면 다시 못 나올 가능성도 있지 않냐”며 불안해 했다. 그러면서 “북조선 쪽에 연락망을 줄 수 있냐”며 “어차피 (중국인인) 저희 직원이 전화하는 것이니 염려하지 말라”고 말했다.

    또 다른 대화 기록에 따르면, ‘뱅월핵’ 제작 초기에 판매 단가를 정하는 과정에서 A 공작원은 허씨에게 “우리쪽은, 만약 사장님한테서 50웬(위안)을 받는다 하면 40웬은 나라에 바친다”고 말했다. 핵 파일 판매대금이 북한 당국으로 흘러들어간다는 것을 명확히 밝힌 것이다. 그럼에도 허씨는 그와 계속 협력해 억대의 돈을 입금했다.

    ‘북한발(發) 핵 파일 유통’ 사건은 과거에도 있었다. 2011년 서울남부지법은 북한 해커들로부터 ‘리니지’, ‘아이온’ 등 온라인 게임 핵 파일을 받아 중국과 국내 이용자들에게 유통시킨 혐의(정보통신망법 등 위반)로 기소된 정모(49)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다만 당시에 북한 공작원에 넘어간 것으로 확인된 금액은 수백만원이었으며 국가보안법이 적용되지도 않았다.

    이번 사건에선 수억원의 현금이 북한으로 넘어갔으며, 북한 공작원과의 구체적인 대화 내용과 핵 파일의 파일명(名)까지 드러났다. 릉라도정보센터 공작원과 직접 접촉해 ‘핵 파일’을 기획·제작하고 유통까지 시킨 정황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인(허씨)은 피고인이 지급한 대금이 대부분 북한 당국에 전달될 것임을 알면서도 북한 릉라도정보센터 소속 인물과 통신을 하고 금품을 수수하고 편의를 제공했다”며 “(판매) 대금으로 송금한 금액이 적지 않을 뿐만 아니라 피고인이 뱅월핵 프로그램을 불특정 다수의 사용자들에게 판매하기까지 한 점에 비춰보면 이 사건 범행의 죄질이 매우 중하다”며 이같이 판시했다.

    허씨 측은 이번 판결에 대해 대법원에 상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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