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경 "안전한 지정 항로 이용하라" 계도했지만… 급유선, 시간 아끼려 좁은 뱃길로 가다가 사고

입력 2017.12.05 03:31

[낚싯배 참사]

- 드러난 '法의 사각지대'
명진15호, 대형선박 기준 미달… 지정항로 택할 의무는 없어
기름 실은 배가 운항해선 안되는 통항금지구역 지정해놨지만 인천 앞바다 인근은 제외

4일 오전 인천시 옹진군 영흥대교에서 바라본 진두항 남서쪽 1.1㎞ 해상. 9t급 어선 2~3척이 나란히 지나가고 있었다. 하루 전 9.77t 낚싯배 선창1호와 336t 급유선 명진15호가 충돌해 13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되는 사고가 났던 곳이다. 이곳은 물밑 암초가 많고 조수 간만(干滿·간조와 만조) 차가 크다. 물이 빠지면 해안가로 암초가 드러날 정도였다. 이런 곳에 어떻게 기름을 가득 실은 급유선이 들어올 수 있었을까?

급유선 실제 운항 항로
사고가 난 해역은 좁은 수로(水路)다. 본지가 국립해양조사원에서 해도(海圖)를 받아 분석해봤다. 만조 때는 약 1.4㎞, 간조 때는 약 370m 정도로 해로 폭이 좁았다. 10t급 어선 3~4대가 지나다닐 정도다. 육지로 따지면 대로(大路)가 아니라 골목길인 셈이다.

사고 해역 인근에도 '지정 항로'가 있다. 영흥도 서쪽 길이다. 상선 등 큰 배는 주로 이 항로를 이용한다. 해로 폭과 수심이 충분히 확보돼있어 안전하다. 그러나 인천북항을 출항해 경기도 평택항으로 가던 급유선 명진15호는 이 길을 택하지 않고 영흥도와 선재도를 잇는 영흥대교 아래 좁은 길로 갔다. 해경 관계자는 "이 길로 가면 지정 항로로 가는 것보다 40분 정도 시간을 단축하고 그만큼 비용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이 빠지면 영흥대교 주변은 명진15호 같은 크기의 선박이 다니기 힘들다. 명진15호 같은 중형 선박이 만조 때를 이용해 고속으로 지나가곤 했다. 이 때문에 영흥도 주민들은 이 수로의 중형 선박 통행을 막아 달라는 민원을 계속 제기했다. 해경 관계자는 "중·대형 선박은 지정 항로를 이용하라고 계도했다"고 말했다. 낚싯배 선장 진정환(57)씨는 "중형 선박 항로를 제한해달라고 수차례 민원을 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은 '법의 공백'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바다에서는 운항 금지 구역이 아닌 해역은 선장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운항할 수 있다. 명진15호가 선장 판단에 따라 '영흥대교 항로'를 선택한 것도 법적으론 문제가 없다. 대형 유조선·화물선 등 해수부가 지정한 일부 선박은 '지정 항로'를 따라야 한다. 명진15호는 큰 배에 속하지 않아 지정 항로를 따라야 할 법적 의무가 없다. 명진15호 같은 중형 선박의 항로를 규제할 법이 없는 것이다. 해경은 그동안 사고 해역 주변을 지나는 중대형 선박에 대해 '지정 항로'로 운항하도록 계도해 왔다. 해경 관계자는 "명진 15호가 계도 대상이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안전을 위해 지정 항로로 가는 것이 맞는다"고 했다. 4일 오전 영흥도를 찾은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은 "우리나라 곳곳에 대형 선박과 어선이 섞이는 안전 사각지대 항로가 많다"며 "이를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급유선에는 기름이 실려 있었다. 기름 등 위험 물질을 나르는 배는 현행법상 규제를 받는다. 해수부는 기름·가스 등 위험 물질을 실은 배가 운항해서는 안 되는 '통항 금지 구역'을 지정해놨다. 충돌 사고 등이 발생했을 경우에는 기름·가스 유출 등으로 피해가 커질 수 있기 때문에 연안에서 일정 구간 떨어져서 운항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고가 난 인천 앞바다 인근은 통항 금지 구역에서 제외돼 있다. 사고를 낸 급유선 명진15호는 벙커C유 등 기름 266kL을 싣고 평택으로 가는 중이었다. 김광수 목포해양대 교수는 "기름 싣는 배는 한번 사고 나면 훨씬 위험하다. 사고 위험이 큰 구간에서 일정 t수 이상 선박은 지정 항로를 따르게 하는 등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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