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알퍼의 한국 일기] 한국에서 지옥 같은 직장 생활을 그만둘 수 없는 이유

  • 팀 알퍼 칼럼니스트

    입력 : 2017.12.05 03:12

    12년 다닌 한국 직장 그만두니 자유롭기보다 그리운 건 왜일까
    상사 눈치 보고 억지 술 마시는 직장 생활은 감옥살이 같지만
    개인주의에 빠지지 않게 하고 더불어 사는 삶의 재미도 줘

    팀 알퍼 칼럼니스트
    팀 알퍼 칼럼니스트
    지난 5월 나는 한 직장에서 풀타임으로 근무하는 데에 마침표를 찍었다. 개인적 프로젝트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12년 동안 거의 매일 아침 지하철에서 누군가의 팔꿈치가 내 신장을 찌르고, 얼굴과 불과 몇 밀리미터 떨어진 남의 겨드랑이 땀 냄새를 애써 외면하며 출근해야 했던 나는 직장 생활에서 해방되어 갑작스럽게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이제 월차를 낼 때마다 수프를 구걸하는 올리버 트위스트처럼 두 손으로 결재 서류를 공손히 들고 뭔가 잘못이라도 한 듯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상사에게 다가가지 않아도 된다. 딱히 할 일이 없는데 괜히 바쁜 척 연기할 필요도 없다. 나른한 오후, 쏟아지는 잠과 씨름할 것 없이 피곤하면 얼마든 낮잠을 청할 수 있다. 나는 완전히 자유로워졌다. 바위를 던져버리고 지옥을 탈출한 현대판 시시포스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이런 자유를 진정으로 즐기고 있는 것일까? 사실 예상과 달리 한국의 직장 생활이 그립다고 말하는 나 자신이 스스로도 무척이나 놀랍다.

    얼마 전 나는 점심시간 무렵 광화문에서 양복 차림 직장인 4명을 지나쳤다.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가을 햇살을 받으며 여유롭게 사무실로 돌아가는 듯한 그들은 자신의 삶에 그럭저럭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아마도 그들은 중간쯤 되는 규모 회사에서 중간쯤 되는 연봉을 받는 중간 관리자들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의 대화가 궁금해져 속도를 늦춰 걸었다. 대화는 특별할 게 없었다. 그저 동료들에 대한 이야기, 주말에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일상적 잡담이었다. 하지만 나는 잠깐 그들과 그들의 동료애에 참을 수 없는 질투를 느꼈다.

    서양에서 업무 개념은 단지 계약일 뿐이다. 일하고 급여를 받고 퇴근하면 그만이다. 원하면 점심은 얼마든지 혼자 먹어도 되고, 회식 또한 없다. 주어진 작은 공간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자기가 맡은 일을 하다 6시가 되면 집으로 돌아간다. 반면 한국에서 직장 생활은 공동체 일부가 된다는 뜻이다. 팀 전체가 업무를 마쳐야 퇴근하고, 함께 밥 먹고 함께 술 마셔야 하고, 길고 쓸데없어 보이는 회의를 하며 함께 고생한다. 서양의 오피스가 개인적이고 고립된 지옥이라면 한국의 사무실은 모든 창문과 문이 열려 있는 개방형 지옥이다.

    [팀 알퍼의 한국 일기] 한국에서 지옥 같은 직장 생활을 그만둘 수 없는 이유
    /이철원 기자
    한국의 직장은 사회적 유기체다. 인간 사회가 초기 부족사회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랬던 것처럼 회사에선 얼굴을 맞대고 직접 의사소통한다. 종종 우리를 좌절시키고 짜증 나게 할 때도 있지만, 한국의 직장은 사회적 결속과 함께 공동체적 생활 기회를 주는 매우 소중한 역할을 한다. 사실 요즘 한국인은 서로 너무도 격리된 채 산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과 독보적 스마트폰 사용자 수, 그리고 꽤 높은 GDP를 자랑한다. 이 모든 것이 무척 좋긴 하지만 한국적 삶의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과거 한국은 공동체가 모든 일을 함께했지만 이제는 혼자 하기를 선호한다. 혼자 있어도 '왕따'로 낙인찍히지 않으며 왕따가 된들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혼자 있는 것이 멋있다고 인식된다. 남과 교류하지 않고 IT 놀이터에서 게임과 웹툰, 스마트폰에 푹 빠질 수 있다.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연애를 할 필요도 없다. 데이트 앱에서 낯선 이들과 만나면 그만이니까. 사실 웹툰, TV 드라마 캐릭터, 아바타로 가득 채워진 가상의 4차원, AR(증강 현실)의 삶은 현실의 인간관계보다 훨씬 재미있고 자극적이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면 직장인이 되는 것이다. 직장에 들어가는 것은 한국을 점령한 개인주의에 역행하겠다는 선택이다. 한국의 회사는 키보드나 터치 스크린을 만지기보다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라고 하며 아날로그적 오프라인의 생활 방식을 요구한다. 회식 자리에서 상사가 지난 주말 골프를 얼마나 잘했는지 자랑하는 것을 얼굴에 가짜 웃음이란 탈을 쓰고 듣게 한다. 내일 아침 '9시 30분' 회의를 걱정하면서도 선배가 억지로 강요하는 술을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시게 한다. 대신 상사가 늘어놓는 끝없는 자랑에 동료들과 '안물안궁'(묻지도 않았고 궁금하지도 않다)을 귓속말로 주고받으며 유대감을 느낀다. 이런 순간만큼은 기가바이트의 비디오보다도 메가픽셀의 게임보다도 통쾌하다.

    한국의 직장 생활은 감옥살이와도 같다. 보고서를 만들고 자료를 챙기느라 삶이 메마르고 우리의 꿈은 천천히 사라진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의 직장은 더불어 사는 삶의 방식이 유지될 수 있게 해 준다. 한국에서 직장이라는 감옥은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개인주의와 건강하지 않은 혼자만의 자유에 한국인들이 굴복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보루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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