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광장의 매너

  •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입력 : 2017.12.04 03:17

    천막과 현수막, 확성기와 장터, 울분과 요구로 가득 찬 도시 공간
    정치와 정책이 해결하지 못하니 온갖 호소와 억울함이 넘쳐
    광장은 비어 있어야 쓸모 있다… 공공의 것 쓰는 매너 생각해야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영화 '킹스맨'의 대사로도 잘 알려진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Manners Maketh Man)'는 말엔 인간에 대한 문명사적 성찰이 담겨 있다. 인간을 짐승과 구분 짓는 것은 자기의 본능과 사회적 규범을 조화시킬 줄 아는 데 있다. 모두가 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산다면 세상은 엉망이 될 것이다.

    고대 로마인들은 이를 닦는 매너를 통해 문명인을 자처했다. 굴 껍데기를 곱게 갈아 말 오줌을 섞은 당시 치약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남들에게 말할 때 입 냄새가 나는 것은 야만적이라고 여겼다. 남을 향한 배려와 친절, 부드러움의 문화는 매너라는 코드를 통해 배양되고 확산되었다. 중세 유럽의 기사와 귀족들은 왕을 알현할 때 지켜야 하는 에티켓을 성공의 매너로 학습했는데, 공손함을 뜻하는 영어 'courtesy'가 궁전(court)에서 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베니스의 유리와 프랑스의 포크가 식탁에 오르면서 사람들에겐 조심스럽게, 또 조금씩 잘라서 천천히 먹는 식탁 예절이 필요해졌다. 매너를 연구한 역사가들은 식탁 예절이 확산되면서 거리의 폭력이 급격히 감소했다고 주장한다.

    함께 사는 공간에 대한 의식은 '민주주의'와 '정의'의 개념을 이해하는 근간이다.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가 직접민주주의 실험장이 되었고, 근대 저널리즘과 여론은 17세기 영국의 커피하우스라는 공공장소에서 꽃피웠으며, 수많은 광장이 혁명의 산실이 되었다. 공개장에서 표현할 자유가 인간성의 요건으로 떠올랐고, 그 안에서 모두의 행복을 극대화하기 위한 고민도 시작되었다. 서양의 학자들은 대체로 공적 공간(public space)이 자기로부터 3.6m 너머의 공간이라는 데 합의한다. 그러니까 자신의 말소리나 행동거지가 그 정도 거리까지 미칠 때는 반드시 남을 배려하는 예의와 에티켓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늘 도심을 오가며 느끼는 불편함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울긋불긋한 현수막과 확성기들은 하나같이 뭔가를 호소하고, 세월호 천막들이 몇 년째 광화문 광장 한복판을 점유하고 있다. 태극기 집회 때문에 논술 보는 학생들이 지각할까 발을 동동 구른다. 각종 장터와 전시장, 봅슬레이장까지 뚝딱 만들어지고 허물어진다. 지하철 시청역 주변은 시위대가 타고 온 관광버스나 경찰차가 꼬리를 문 주차장이 되었다. 주말의 도심 정체는 이제 거의 일상이 되다시피 했다. 이쯤 되면 현수막의 글귀나 천막 속의 내용물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그들이 얼마나 광장을 함께 사용하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있느냐이다.

    지난 6월30일 오후 민노총 조합원 2만5000여명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6·30 사회적 총파업 연대' 집회를 마치고 행진하고 있다. 이들이 세종문화회관 쪽 도로를 메운 사이 반대 방향의 차량들은 꼼짝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박상훈 기자
    다양한 울분과 요구로 얼룩진 도시의 숲을 지나며 나는 배려받지 못하는 시민의 왜소함을 느낀다. 정치가 껴안고 정책이 해결하지 못하니 늘 거리가 사람들의 문제로 그득하다. 다른 도시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내가 사는 서울의 광장들은 매너를 상실한 지 오래다. 서울의 광장은 열린 공간이 아니라 누군가의 호소와 억울함이 넘쳐나고 또 누군가는 무시하고 지나치는 외면의 공간으로 축소되고 있다. 고대 그리스 아고라에는 토론이 있었다. 서울의 광장에는 토론도, 소통도, 배려도 없다.

    비움이 필요한 공공장소는 도처에 있다. 용산 미군기지가 이전한 자리에 조성될 용산공원부지 또한 마찬가지다. 서울 복판에 빈 땅이 생긴다니 욕심내는 사람들이 줄을 잇더니 급기야 얼마 전에는 새 정부의 문화체육관광부가 그곳에 문학관을 세우겠다고 발표했다. 다행히도 서울시의 반대와 의회의 예산 삭감으로 계획에 차질을 빚게 되었지만, 공원 산책길에 느닷없는 건물을 맞닥뜨릴 뻔했다. 나는 문학도 좋아하고 장관이 쓰신 시도 좋아하지만, 공원에서 문학관에 가고 싶지는 않다. 공원은 오히려 비어 있는 것이 더 '문학적'이다. 광장과 마찬가지로 공원도 비어 있을 때 비로소 쓸모 있다.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인 세금도 그러할 것이다. 공공의 것이므로 신중하게 써야 하고, 앞을 내다보고 세대 간 공평 분배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대표적인 공공재인 전파를 사용하는 방송인에게도 같은 매너가 요구된다. 무릇 공공의 자원과 서비스를 분배해야 하는 모든 공적 임무가 그래야 할 것이다. 자신의 것으로 채우려고만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몫을 비워 놓는 배려가 필요하다. 공적 영역을 장악했다는 착각에 빠진 정치인과 정부가 세금과 자원을 제 입맛대로 아낌없이 사용하도록 정책을 설계하는 것은 참으로 매너 없는 행동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 교수는 정의란 결국 함께 사는 사회의 미덕을 키우고 공공선을 고민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도 함께 쓰는 모든 것의 매너를 생각해 볼 때다. 시민이 공개 토론에 참여할 때도 자제력이 있어야 하고, 정부는 자신의 공적 권력을 남용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은 함께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광장은 비어 있어야 광장이다. 한때 촛불도 들고 태극기도 들었으나 지금은 일상으로 복귀한, 대다수의 시민을 위해 열려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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