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발 이식비 지원' '文대통령, 여자 연예인과 사진 찍지 말라'…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라온 별별 청원들

  • 김혜지·노우리·배민주·송승현 인턴

    입력 : 2017.11.28 12:30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며 만든 청와대 청원게시판이 운영된 지 100일이 지났다. 청와대는 지난 8월 19일 청원 게시판을 신설하며 “청와대의 직접 소통은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철학을 지향한다”고 했다. 청원 게시판을 ‘직접 민주주의’의 장(場)으로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이 게시판에 올라온 청원은 28일 오전 9시까지 5만 2500건을 넘었다. 하루 평균 514건 이상의 청원이 쏟아진 셈이다.

    시민들이 올리는 청원은 우리 사회가 마주한 문제를 드러낸다. ‘소년법 폐지’ ‘낙태죄 폐지’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 반대’ ‘주취감형(술을 먹으면 형벌 감형) 폐지’ ‘권역외상센터에 대한 지원요청’ 같은 청원은 각각 10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았다. 사회적으로 오랜 기간 숙의하고 토론하며 해결해야 할 사안들이다. ‘조두순 출소반대’ ‘히딩크 감독 축구 대표팀 부임 촉구’ 같이 대중의 정서를 반영한 청원도 있다.

    때로 청원 게시판은 아무런 말이나 오가는 ‘말 놀이터’가 된다. 각자 세대가 안고 있는 나름의 절박한 고충을 내뱉기도 하고 소소한 잡담과 민원이 올라오기도 한다. ‘군대’나 ‘남혐/여혐’이라는 소재도 종종 올라와 남녀 대결의 공간이 될 때도 있다. 이러한 청원은 많은 지지를 받지는 못하지만 국민의 생생한 목소리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5만여개 청원 중 별난 주장들을 모아봤다.

    학생 “선생님은 패딩입는데 왜 우리는… 여학생도 바지입게 해달라”
    취준생 “국가에서 연애 비용 지급해달라”
    초등학생 “공기놀이 대회 열어주세요”

    /뉴시스

    학생들은 ‘학생인권’과 관련된 청원을 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따뜻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해 요구하는 학생들의 글과 ‘여학생들의 교복 착용을 허용해달라’는 청원이다. 자신을 ‘학생’이라고 소개한 이들은 두꺼운 겉옷을 입을 수 있는 권리, 불편한 치마 대신 교복 바지를 입을 수 있는 자신들의 권리에 대해 청원글을 통해 당당하게 목소리를 냈다.

    자신을 중학교 3학년 학생이라고 밝힌 한 학생은 “저는 제 자유에 의해 인간의 자유권을 넘지 않는 선에서 옷을 입었을 뿐인데 학교, 선도부라는 권력으로 제 자유권과 재산권을 침해했다”라며 “자유권은 인간이라면 보장되는 권리이고 재산권은 헌법 제 23조 1항에 명시돼 있는데 이 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충분한 이유 대신에 규칙을 읽어보라는 답변뿐이다”라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학교라는 사회가 학생들의 자유와 평등을 억압하고 있는데 도덕 교과에서 자유와 평등을 배운다는 사실은 정말 역설적이다”라고 했다.

    /청와대 청원게시판

    여학생들이 치마가 아닌 바지를 착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글도 눈에 띄었다. 청원인은 “여자는 여자답게 입어야 한다는 이유로 교복 바지 착용을 할 수 없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며 “여학생은 치마를 입어야 단정해보이고 학생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누군가의 선입견에서 나온 문제다. 바지를 입어도 단정하고 학생다울 수 있다”며 치마를 강요하는 교칙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다.

    ‘데이트 비용’에 부담을 느끼는 취업준비생의 목소리도 있다. 자신을 취준생이라고 밝힌 한 청원인은 “20대가 연애를 할 수 있는 비용을 국가가 부담해달라”는 내용의 청원글을 올렸다. 청원인은 “지난해 조사결과에 따르면 대학생과 직장인의 한달 데이트 비용은 각각 20만원, 25만원 이었다. 같은 조사에서 대학생 평균 용돈이 43만원인 걸 감안하면 데이트 비용 지출로 용돈 절반을 가까이 사용하고 있는 셈”이라며 “부모로부터 용돈을 지원받지 않거나 대학 등록금과 학자금을 스스로 갚아야하는 청년들은 시간과 돈이 없어 데이트를 못하는 상황이 실제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청년 수당을 지급해주는 것처럼 데이트 비용 때문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20대에게 기본 소득 개념으로 데이트 비용을 지급해준다면 어느정도 부담이 덜어질 것 같다”고 의견을 냈다.

    공기놀이를 좋아하는 한 초등학생의 귀여운 청원도 있다. 대구에 사는 한 초등학교 학생은 “초등학생 공기 대회를 열어달라”며 동심 가득한 청원글을 올렸다. 그는 “공기에 관심이 많고 공기를 좋아한다. 초등학생들이 즐길 수 있는 공기대회가 없어서 섭섭”하다며 “꼭 좀 공기대회가 생길 수 있게 해주세요. 문재인 대통령 아저씨 힘내시고 사랑합니다”라고 썼다.

    한국식 나이셈법은 불편하고 혼란… ‘적폐청산 대상’
    ‘사교육비 너무 비싸다’ ‘미혼남녀 만남의 장 만들어달라’
    고통받는 ‘탈모인’에 머리 이식 비용 지원 요청하기도

    /청와대 청원게시판

    직장인·사회인들의 청원은 보다 현실적인 문제가 많았다. 사회생활에서 중요한 ‘나이 계산법’을 바꾸자는 청원이 그런 경우다. 지난 16일 ‘한국식 나이 셈법 사라져야 합니다’란 청원을 제기한 청원인은 “한국식 나이 계산법은 법적 효력이 없고 실생활에서 불편하다. 모든 행정 문서에는 만 나이로 기재하게 되어 있다 보니 혼란만 가중된다”며 “낡은 폐습들을 없에는 것도 적폐청산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전두환 시절 ‘과외 금지령’을 떠올리게 하는 과도한 사교육 풍조에 대한 날선 비판이 담긴 청원도 있다. 한 학부모는 지난 26일 ‘예체능을 제외한 학원은 모두 불법화해주세요’라는 청원을 제기했다. 외벌이에 아이 2명을 키우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청원인은 “남들 다 다니는 학원 안보낼수도 없고 크면 클수록 학원비 부담에 너무 힘들다”며 “학원 안가면 놀 친구도 없고 저녁 늦게까지 이리저리 학원을 전전하는 우리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다. 학교에서만 공부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예체능 분야를 제외한 학원 불법화를 주장했다. 젊은 학부모들이 느끼는 사교육비 부담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연애가 고픈’ 청년들도 목소리를 냈다. 지난 17일 자신을 초등학교 교사라고 소개하며 해당 청원글을 작성한 네티즌은 “사회생활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학교에는 여교사가 많아서 남자를 만날 기회가 많지 않다”며 “저같이 결혼을 위한 경제적 기반과 마음이 있지만 이성을 만날 기회가 적어서 결혼을 하지 못하는 이들이 주변에 많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출산율 저하의 큰 원인 중 하나가 혼인율 저하 아니겠느냐. 결혼하고 싶어하는 미혼남녀에게 주기적으로 만남의 장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조선DB

    21만 3000여 탈모인(脫毛人)의 절규도 올라왔다. 탈모로 고통받는 네티즌들은 국가가 나서 고통과 부담을 덜어 달라는 청원을 계속해서 제기했다. 27일에도 ‘탈모’라는 제목으로 한 네티즌이 청원글을 올렸다. 그는 “우리나라에 탈모로 고통받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며 “탈모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머리 이식 비용을 전액이 아니어도 좋으니 지원해달라”고 부탁했다. “탈모인들도 당당히 결혼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미래에 저출산 문제도 해결할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도움을 달라”고 청원했다.

    “선비의 날 만들자”, “북진통일하자”
    ‘아무말 대잔치’식 청원도 있어

    /청와대 청원게시판

    한국의 정체성이 ‘선비’에 있다면서 ‘선비의 날’을 제정하자는 주장도 올라왔다. “우리나라의 정체성의 답은 선비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말문을 연 네티즌은 “독립투사들이 간직하고 있던 강인한 힘, 이 선비정신을 지금의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대로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이 사무라이 정신을 기리듯이 우리도 선비정신을 기리자. 달력을 보니 선비의 날만 없던데, 이 날을 기준으로 많은 선비와 관련된 행사를 진행하자”고 말했다.

    ‘선비의 날 제정’ 같은 ‘복고주의’에 반하는 청원도 있다. “제사날을 폐지하자”는 청원이다. 해당 청원을 제기한 네티즌은 “전통적인 대가족이나 집성촌 등 과거의 모습이 해체되고 1인 가구가 비약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에 제사는 시대에 역주행하는 것”이라며 “전국민이 다 양반 집안이라고 말하며 제사를 지내는 이 모습이 코미디 같다. 조상을 기리는 건 껍데기에서 벗어나 기리는 마음, 정성이면 족하다”고 주장했다.

    /공효진 인스타그램

    문재인 대통령이 예쁜 여성 연예인과 사진을 찍지 말아달라는 질투어린 청원도 있다. 이 글쓴이는 “확인해보니 문재인 대통령은 유독 여자 연예인들과 인증샷이 많다. 대개 예쁘거나 어린 걸그룹이더라. 그때만 표정이 밝으시다”며 불편을 표했다.

    ‘북진 통일을 제안한다’라는 강력한 반공(反共) 청원을 넣은 이도 있었다. 이 시민은 “대한민국 헌법 3조에 따라 억압 받고 착취받는 DMZ 이북의 대한민국 국민을 김정은 반란군 수괴로부터 구해달라”며 “지금 당장 북진해서 백두산에 태극기를 꽂아 조선노동당을 완전히 박살내자”고 주장했다.

    청원 게시판도 남녀대결의 場
    “여대 없애라” “남녀 분리 거주하자”

    /청와대 청원게시판

    최근 온라인 상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남녀대결은 청원 페이지에서도 활발하다. ‘여성 징병제 청원’이 대표적이다. 지난 8월 30일 제기된 해당 청원은 “여성들도 남성들과 동일하게 현역, 예비역, 민방위로 의무이행할 수 있게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 청원에 참여한 인원이 12만 명을 돌파하며 청원 페이지 상에서 남녀대결 이슈가 본격적으로 떠올랐다.

    여성에게 주어지는 혜택 때문에 남성이 역차별 당한다는 논리를 담은 글도 올라온다. 지난 27일 ‘여대를 남녀공학으로 전환 청원합니다’란 청원글에서도 그런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청원인은 “예전에 여성인권이 보장되지 않던 시절 여성 교육열을 높이기 위해 정부에서 설립한 게 여대”라며 “오늘날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남녀차별이 없는만큼 여대는 존립 의미를 상실했다. 오히려 의대, 약대, 로스쿨 등이 여대에 설치된 탓에 남성들은 아예 입학이 불허되는 등 또다른 형평성 논란이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청원인은 “이제는 남녀 평등 커리큘럼에 발맞춰 국내 여대들을 모두 남녀공학으로 전환해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녀간의 성대결이 격화되면서 ‘군내 위안부 재창설 청원’처럼 도를 넘은 내용의 청원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16일 올라온 해당 청원은 일본군 위안부를 본따 우리 군내 위안부를 만들자는 내용으로, 청원인은 “군인이 거의 무보수로 2년 간 의무를 이행하니 군인을 달래주기 위해 군내 위안부를 도입하자”고 주장했다. 해당 청원글은 현재 네티즌들의 비판에 삭제된 상태다.

    /조선DB

    격화하는 남녀 갈등을 보다못한 한 시민은 차라리 ‘남성과 여성의 주거 지역을 분리하자’고 청원했다. ‘남자와 여자 아예 나눠 거주시키는 방안 검토 부탁합니다’라는 글을 9월 2일 제기한 이 네티즌은 “인터넷을 보면 여자들은 남성에게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고, 남자들도 여성들에게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며 “이에 대한 해법으로 한국을 반으로 갈라 남녀를 한명도 빠짐없이 갈라놓으면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서로 ‘한남충’ ‘김치녀’ 운운하며 욕을 하니 한국남자는 외국여자를 만나면 되고, 한국여자는 외국 남성을 만나서 살면 된다. 참 합리적이고 좋은 방법 아니냐”고 했다. 그러면서 “같은 성별끼리 있으면 혐오감은 알아서 줄어들 것이며 만족감은 매우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복동의 금지·실명제 도입·반대 버튼 만들자
    청원게시판 운영 개선 의견도 청원으로…


    현재와 같이 별다른 제재 없이 청원을 올리는 데에 불만을 품고 개선점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청원 글을 올라온다. 한 네티즌은 “국민청원 금지를 청원”한다는 내용의 청원을 올렸다. “답변도 제대로 안 해주고 중복동의도 허가하고 일사부재리 무시하는 청원이 메인에 뜨다니”라고 운을 뗀 이 글쓴이는 “이럴 거면 국민청원 금지를 청원한다”고 자신의 주장을 밝혔다. 실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각 소셜미디어 계정으로 한 번씩 동의가 가능하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중복으로 한 청원에 동의를 할 수 있는 상태다. 또 조두순 출소 금지 청원이 5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서 화제가 되자 일각에서는 이러한 청원이 ‘일사부재리 원칙’을 무시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청와대 청원게시판

    또 다른 네티즌은 “국민청원 실명제” 도입을 제안했다. 그는 “국민 청원제도가 사회정의가 실현되는 국민 공론의 장이 아닌 무고의 장으로 악용되어 억울한 사례가 생겨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정당한 제안이나 주장을 실명으로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국민청원 게시판에 ‘반대’ 버튼을 만들어달라는 주장도 있었다. 글쓴이는 “많은 동의를 받은 안건일지라도 그만큼 많은 반대 의견이 뒤에 숨어있을 수 있다”며 “반대 의견을 좀 수렴하면서 같이 비교해서 본다면 좋은 방향으로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한다”고 썼다. 현재 국민 청원 게시판에는 찬성 의견을 표시하는 동의 댓글 창만 있는 상태다.

    전문가들, “시민이 말할 수 있는 기회 생겼다”
    “실효성 의심되나 숙의민주주의 위해서는 고민 더 필요”

    전문가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아직 개선해야 할 점이 있지만, 존재만으로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고 입을 모았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문재인 정부가 숙의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하려고 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시민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소 무분별한 의견이 쏟아지더라도 청와대가 책임 있는 태도를 취해서 국민 청원 제도를 잘 운영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청원 게시판 운영의 취지는 좋지만 자칫 민원 배설에만 그치지 않도록 정부가 고민해야 한다는 조언도 있었다. 이택광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청원제라는 제도의 실효성에는 다소 의구심이 있는 게 사실이다. 지금은 게시판 내에서 의견 취합을 하는 정도의 수준”이라며 “청원이 올라오고 그것이 실현되는 과정을 어떤 식으로 숙의 민주주의로 구현해 나가는지에 대해서는 청와대가 앞으로 고민할 문제”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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