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낙태죄' 폐지 청원

    입력 : 2017.11.28 03:16

    몇 년 전 유부남을 사귄 내연녀가 임신한 아기를 지우는 조건으로 50억원을 받았다가 낙태 후 유부남에게 공갈죄로 몰린 사건이 있었다. 당시 세간의 관심은 여성이 먼저 돈을 요구했는지의 공갈죄 여부였다. 그 여성은 결국 무죄를 받았다. 그러나 아기 아버지가 엄연히 불법인 낙태를 여성에게 먼저 요구한 사실은 여론의 관심 밖이었다. 그만큼 낙태법 준수 의식이 약하다는 얘기다. 낙태는 여성의 문제로만 치부된다.

    ▶우리나라는 강간에 의한 임신이나 산모 생명이 위태로워서 하는 것만 빼고 인공임신중절(낙태)은 거의 모두 불법이다. 낙태는 형법으로 다스릴 정도로 엄격하지만, 단속도 처벌도 드물다. 미성년·미혼 여성 낙태는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낙태 여성이 처벌받는 경우는 남자 친구나 남편 또는 시부모가 몰래 낙태한 사실을 문제 삼거나, 산부인과 원장에게 앙심을 품은 병원 직원의 고발에 유탄을 맞아서다. 낙태죄가 예방 효과는 없고 여성만 옥죄는 셈이다. 

    [만물상] '낙태죄' 폐지 청원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이 이른바 '셀프 낙태'를 위해 인터넷서 자연유산 유도 약물 '미프진'을 불법으로 찾는 경우가 흔하다. 이 약은 임신 유지에 필요한 호르몬 프로게스테론을 차단해 임신 중절을 시키는 강력한 안티-호르몬제다. 개발 당시 먹는 낙태약으로 화제가 됐다. 선진국서는 의사 처방을 받아 쓰이지만 국내에서는 사용이 금지돼 있다. 이 약을 구해 먹었는데도 임신이 계속된다며 산부인과를 찾는 여성이 많은 것으로 보아, 가짜 약도 판치는 모양이다.

    ▶낙태죄 폐지와 미프진 합법화를 요구하는 국민 청원에 20만명 이상이 참가하자 청와대가 임신중절 실태 조사를 하겠다고 나섰다. 낙태죄 수정에 대해 전향적인 검토를 하겠다는 뜻이다. 2010년에 이뤄진 보건복지부 조사로는 한 해 낙태 건수는 16만9000건이다. 그중 95%가 불법이라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다.

    ▶낙태 문제에서 여성 선택권과 태아생명권의 충돌은 어느 나라나 뜨거운 이슈다. 국내에도 낙태죄 폐지에 공감하는 이들도 제법 늘었다. 하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낙태를 합법화한 국가들은 한편으로 낙태를 안 하고 낳을 권리도 충분히 보장한다. 낙태 강요죄를 두어 처벌하고, 미혼모가 낳은 아이 양육비를 아기 아빠도 함께 부담토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미성년 임신부가 자퇴를 안 하고 공부를 계속할 권리도 지원한다. 피치 못할 낙태를 죄다 죄인으로 만드는 것도 보완이 필요하겠지만, 낙태를 줄이는 환경과 제도를 만드는 것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