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 BIZ] AI·중고 마켓·클라우드… "오타쿠의 힘으로 '유니콘' 만들었죠"

    입력 : 2017.11.25 03:01

    일본, 유니콘으로 도약 중

    지난해 유니콘은 1곳
    투자·창업에 열기 올라
    1곳 더 늘고 후보엔 20곳

    지난 20일 일본의 경제지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일본 벤처캐피털협회와 함께 '일본의 차세대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을 넘은 벤처기업)'을 조사·발표했다. 유니콘 기업 2곳과 함께 기업 가치 1000억원이 넘는 유니콘 후보 20곳이 일본을 대표하는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으로 꼽혔다. 이들은 인공지능(AI)과 클라우드(가상 서버저장) 서비스, 헬스케어,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관리, 핀테크, 생체인증 등 최첨단 테크놀로지 분야의 유망 기업이 대부분이었다. 일본은 작년까지 유니콘 기업을 1개만 배출할 정도로 '스타트업 불모지'였지만, 최근 활발한 벤처 자금 투자와 창업 열기가 이어지면서 유니콘 스타트업 육성이 가팔라지고 있다. 닛케이는 "대기업 위주였던 일본에서도 스타트업을 축(軸)으로 경제산업계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조사는 창업 20년 이내 벤처기업 중에서 고유 기술이나 사업 모델을 갖는 108개 기업을 취재해 기업 가치를 추산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프리퍼드 네트웍스 제공
    1초에 4700조번 연산하는 인공지능 개발한 스타트업

    일본의 스타트업 프리퍼드 네트웍스는 지난 10일 "1초당 4700조(兆)번의 연산이 가능한 딥러닝(심층학습)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해 전 세계 AI 기술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현재까지 구현된 AI 컴퓨터 중 가장 빠른 연산 속도다. AI 기술은 자율주행차를 비롯해 로봇 제어, 사이버 보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는데, 많은 데이터를 얼마나 빨리 처리하느냐가 AI의 성능을 좌우한다. 이 회사의 기술은 일반 AI 컴퓨터가 30분 걸려 학습할 이미지 데이터를 2배 빨리 처리한다. 닛케이는 "AI의 속도 면에서는 구글보다도 기술력이 앞서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도요타자동차는 작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가전박람회 'CES2016'에서 프리퍼드 네트웍스의 AI 프로그램을 장착한 자율주행차를 선보였다. 빠른 데이터 처리 속도를 바탕으로, 자율주행차 6대가 서로의 동선을 읽으며 충돌하지 않는 법을 스스로 학습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도쿄대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니시카와 도루(西川徹·35)가 2006년 대학원 동료 5명과 중고 PC 5대와 단돈 30만엔(약 300만원)으로 창업했다. 2010년 매출 1억엔(약 10억원)을 기록했고 매년 2~3배씩 성장해 지금은 기업 가치 2326억엔(약 2조2776억원)에 달한다. 일본의 최고 가치 유니콘이 된 것이다. 니시카와 CEO는 "나를 비롯해 중·고등학교 때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미쳐 있던 사람들이 모인 회사"라며 "AI 소프트웨어를 A부터 Z까지 직접 설계할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유전자 데이터 분석에 딥러닝을 적용해 의료와 생명공학에 진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메루카리 제공
    메루카리(mercari)는 '스마트폰 벼룩시장'으로 통한다. 야마다 신타로(山田進太郞·40) CEO가 2013년 회사를 차린 지 4년 만에 기업 가치가 1479억엔(약 1조4450억원)이 됐다. 작년 매출 122억엔(약 1190억원)을 기록했다. 누구나 물건 사진만 찍어 올리면 상품 판매자가 되고, 버튼 한 번만 누르면 물건 구매부터 결제까지 끝나는 간편한 구조가 강점이다. 야마다 CEO는 와세다대 교육학부를 나와 일본 온라인 쇼핑몰 라쿠텐에 취직해 인터넷 시장을 보고 배웠다. 그는 '고 볼드(Go Bold·대담하게 일하기)' 정신을 강조한다. 전통적인 일본 기업과는 다른 문화다. 그는 작년 11월 일본 언론 인터뷰에서 "직원들이 자유롭게 말하고 많은 일을 할 수 있어야 회사가 발전한다"며 "우리는 술 먹을 때도 '마시는 폼이 '고 볼드'(Go Bold)하게 하자'라고 말할 정도로 대담하게 행동하는 걸 강조한다"고 말했다.

    산산 제공
    산산(Sansan)은 클라우드를 활용한 명함 관리를 전문으로 내세운 스타트업이다. 게이오 대학을 나와 미쓰이물산에서 컴퓨터프로그램 개발을 맡았던 데라다 지카히로(寺田 親弘·41) CEO가 10년 전 창업했다. 명함 교환 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 사업 아이템이 주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6000개사를 파트너로 두고 있고, 골드만삭스 등 해외 큰손들도 투자에 참여했다. 이 밖에도 모바일 앱을 통한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FiNC(핑크)와 일본 최대 규모로 가상화폐 비트코인 거래소를 운영하는 '비트플라이어(Bitflyer)' 등이 차기 유니콘으로 주목받는 스타트업이다.

    日, 연간 2조원 이상 스타트업 투자에 몰려

    지금까지 일본은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자금 규모가 미국의 2∼3%에 머물고, 젊은이들이 유력 대기업 취업을 선호하는 문화가 강해 스타트업계 발달이 글로벌 시장에 비해 한참 뒤처진다는 비판을 받았다. 스타트업 조사 전문업체 CB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일본의 유니콘 기업은 메루카리 단 1곳에 불과했다. 중국은 작년 한 해 동안 새로 탄생한 유니콘 기업만 12곳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도요타·파나소닉 등 대기업도 스타트업과의 협업이나 출자에 적극 나서고, 민간 투자도 활발하다.

    그 결과 재팬벤처리서치가 비상장 스타트업 1000여 개사를 대상으로 집계한 2016년 자금 조달 액수는 전년 대비 20% 늘어난 2100억엔(약 2조502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본의 경제주간지 다이아몬드는 "좋아하는 것에 미친듯이 파고드는 '일본 오타쿠'의 힘이 AI, 로봇, 자율주행차 등 새로운 산업에 도전하는 스타트업계에서 특유의 강점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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