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세습 노리다 끝난 37년 독재… 짐바브웨가 춤을 췄다

    입력 : 2017.11.23 03:03

    [무가베 대통령 사임]

    - 김일성 추종하더니, 보고 배웠나
    김일성 만나 1인 숭배 등에 감명, 북한군에게 훈련받은 경찰 동원
    정적·고향 주민 등 3만명 학살

    - 백인 토지 몰수, 흑인에 나눠줘
    아프리카의 자원 부국에서 북한과 비슷한 최빈국 전락

    - 무가베 가고 '악어'가 오는데…
    새 대통령 음난가그와, 별명 '악어'… 무가베 뛰어넘는 독재 가능성도

    37년간 독재자로 군림해온 로버트 무가베(93) 짐바브웨 대통령이 군부 쿠데타로 가택 연금된 지 엿새 만인 21일(현지 시각) 자진 사퇴했다고 BBC 등이 보도했다. 집권 여당의 사퇴 시한 최후통첩에도 버티던 무가베는 이날 오전 의회가 탄핵 절차에 돌입하자 백기 투항했다. 탄핵안이 통과될 것이 확실시되자 전격 사임한 것이다.

    BBC에 따르면 제이컵 무덴다 짐바브웨 국회의장은 이날 오후 6시쯤 의회에서 "무가베 대통령이 사퇴 의사를 담은 사임서를 의회에 제출했다"며 "이는 즉시 효력을 발휘한다"고 선언했다. 이어 "현재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머물고 있는 에머슨 음난가그와(75) 전 부통령이 48시간 내에 귀국해 대통령직을 이양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무가베는 사임서에서 "평화로운 권력 이양을 위해 자발적으로 사임을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41세 어린 부인에게 대통령 세습하려다… - 지난해 2월 로버트 무가베(왼쪽) 대통령과 그의 41세 연하 부인 그레이스 무가베(오른쪽)가 무가베의 92번째 생일 기념행사에 참석한 모습. 무가베는 부인에게 대통령직을 물려주는 ‘부부 세습’을 시도하다가 역풍을 맞고 결국 사임했다. 집권 기간 짐바브웨 경제가 파탄 났지만 무가베와 그의 가족은 호화스러운 생활로 국민의 비판을 받았다.
    41세 어린 부인에게 대통령 세습하려다… - 지난해 2월 로버트 무가베(왼쪽) 대통령과 그의 41세 연하 부인 그레이스 무가베(오른쪽)가 무가베의 92번째 생일 기념행사에 참석한 모습. 무가베는 부인에게 대통령직을 물려주는 ‘부부 세습’을 시도하다가 역풍을 맞고 결국 사임했다. 집권 기간 짐바브웨 경제가 파탄 났지만 무가베와 그의 가족은 호화스러운 생활로 국민의 비판을 받았다. /AP 연합뉴스
    탄핵 절차를 밟던 여야 정치인들은 만세를 부르며 환호했다. TV 생중계를 본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오면서 이날 저녁 수도 하라레는 온통 축제 분위기로 변했다. 시민들은 자동차 경적을 울리고 춤을 추며 밤늦도록 무가베의 퇴진을 자축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전했다. 이번 쿠데타는 무가베 대통령이 41세 연하의 부인 그레이스(52)에게 대통령직을 물려주는 '부부 세습'을 추진하면서 촉발됐다.

    무가베는 1980년 영국 식민지에서 해방된 독립 짐바브웨의 초대 총리로 취임한 이후 37년간 헌법을 고치고 부정선거를 저지르면서 장기 집권을 해왔다. 집권 초엔 흑·백 인종 화합에 신경을 쓰는 등 온건 노선을 유지했으나 얼마 되지 않아 사회주의 독재의 길을 걸었다. 국가가 물가와 환율, 수출입을 전면 통제하는 철권통치로 '아프리카의 마오쩌둥'이란 별명이 붙었다. 1980년 집권 직후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나기도 했다. 현지 매체 '뉴 짐바브웨'는 최근 "평양을 방문한 무가베가 북한의 1인 숭배 사상과 영웅화, 군부를 활용한 정적 숙청 작업 등에 깊이 감명받은 것 같다"며 두 사람의 닮은 점을 조명하기도 했다.

    김일성 만나러 평양에 간 무가베로버트 무가베(왼쪽)가 지난 1980년 초대 총리에 오른 직후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오른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북한과 짐바브웨는 1980년 4월 외교 관계를 맺고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김일성 만나러 평양에 간 무가베 - 로버트 무가베(왼쪽)가 지난 1980년 초대 총리에 오른 직후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오른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북한과 짐바브웨는 1980년 4월 외교 관계를 맺고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유튜브

    무가베는 북한군에게 훈련받은 비밀 경찰을 동원해 자신의 정적은 물론 그의 고향 주민들까지 학살하는 무자비한 폭압 정치로 악명이 높았다. 그가 지금까지 살해한 국민은 3만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가 집권하는 동안 짐바브웨 경제는 추락했다. 영국에서 해방될 당시만 해도 짐바브웨는 아프리카의 부국이었는데 지금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북한 수준인 1100달러의 최빈국이 됐다. 지난해 물가상승률은 200%, 실업률은 90%에 달했고, 만성화된 부패로 지하경제 규모는 GDP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주력 산업인 농업이 몰락한 게 타격이 컸다. 짐바브웨는 1년 내내 농사지을 수 있는 기후로, 밀·목화 등 재배가 활발해 '아프리카의 곡창지대'로 불렸다.

    무가베 연표

    하지만 1990년대 무가베가 백인 소유 농장을 몰수해 농사·경영 경험이 없는 흑인들에게 재분배하고 가뭄 등이 겹치면서 생산량이 급감했다. 1990년 32만5000t이었던 밀 생산량은 지난해엔 2만t에 그쳤다.

    풍부한 광물자원도 정부 통제에 수출길이 막혔다. 짐바브웨는 다이아몬드 매장량 세계 2위, 백금 매장량 세계 3위, 리튬 매장량이 세계 5위에 달할 정도로 자원 부국이다. 담배 수출량은 아프리카 1위다.

    짐바브웨는 향후 성장 잠재력은 충분하다는 전망이 많다. 세계 3대 폭포로 꼽히는 빅토리아 폭포 등 관광 자원도 풍부하다. 무가베 퇴진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은 짐바브웨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2.8%에서 3.7%로 올렸다. CNN은 "무가베를 피해 남아공으로 떠났던 기술직 난민들이 되돌아오면 생산력이 더욱 향상될 것"이라고 했다.

    차기 지도자인 음난가그와 전 부통령은 군부와 집권 여당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무가베의 '오른팔'로 독재 체제의 파수꾼 역할을 해온 그가 짐바브웨의 민주주의를 복원할지는 미지수다. 짐바브웨의 개방과 무가베 일가의 처벌, 재산 환수 등에 소극적일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음난가그와 전 부통령은 주도면밀한 정치적 수완으로 '악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CNN 등은 "그가 무가베를 뛰어넘는 독재자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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