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윤의 맛 세상] 술 약한 한국인, 해장국 발달시켰다

    입력 : 2017.11.23 03:14

    세계 각국 속풀이 음식 다양… 英, 베이컨 같은 기름진 음식
    美는 햄버거·피자 주로 먹어… 홍콩은 육수에 묽게 쑨 쌀죽
    알코올 분해 잘 못하는 한국인, 다양한 해장국으로 숙취 해소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와인 취재를 위해 호주에 와 있다. 영국·미국·일본·홍콩 등 세계 각국 음식·술 담당 기자들과 종일 와인을 맛보며 호주를 돌고 있다. 한국에서는 송년회, 일본에선 망년회, 서양에선 크리스마스 등 술 마실 자리가 잦은 연말이 코앞. 술이라면 누구보다 해박한 이 전문가들과 자연스레 각국의 술 문화와 '행오버 푸드(hangover food)' 즉 해장 음식에 대해 이야기 나누게 됐다.

    세계 각국 속풀이 음식은 다양했다. 영국과 미국, 앵글로색슨족이 세운 두 나라는 기름진 단백질류 음식으로 해장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영국 음식·와인 담당 기자 루시는 "베이컨과 소시지, 달걀 프라이 등 기름진 아침 식사로 주로 해장한다"고 했다. 미국 와인 전문 기자 제임스는 "햄버거나 피자를 먹는다"고 말했다.

    와인 전문 홍콩 기자 넬리는 "닭 육수나 말린 광어 등 건어물을 우린 국물에 묽게 쑨 쌀죽, 송화단(까맣게 발효시킨 오리 알)을 얹어 먹는다"고 했고, 일본 와인 전문지 기자 아야는 "딱히 해장 음식이 따로 있지는 않은 것 같은데…" 하며 곰곰이 생각하다가 "미소시루(일본 된장국)를 먹는 것 같다"고 말했다. "라멘(생라면)은? 한국에선 술 마신 다음 날 라면으로 해장하는데" 하고 묻자 "라멘은 늦은 밤 술에 취해 출출할 때 먹지, 다음 날 아침 괴로운 속을 달래려 먹지는 않는다"고 했다.

    숙취와 해장은 인류가 술을 만들어 마시기 시작한 이래로 끊임없이 고민해온 주제다. 고대 그리스인도 숙취로 고생한 모양이다. 숙취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알고스(algos)'는 어원이 고통이다. 고대 로마 제국 정치가·군인이자 '박물지(博物誌)'를 쓴 학자였던 플리니우스(Plinius)는 올빼미 알을 날로 먹거나 카나리아를 튀겨 먹으면 숙취 해소에 효과가 있다고 추천했다.

    아일랜드 대(大)문호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에는 '프레이리 오이스터(prairie oyster)'라는 해장식이 나온다. 직역하면 '대초원의 굴'이니 말이 안 된다. 유리잔에 날 달걀노른자 두어 개를 터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담는다. 여기에 찝찔한 우스터셔 소스, 매운 타바코 소스, 소금, 후추를 뿌린다. 언뜻 보면 굴 같지만, 바다가 아닌 뭍에서 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1938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도 "해장에 특효"라며 전시됐을 정도로 당시에는 효과를 인정받았던 모양이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고급 호텔의 대명사인 프랑스 파리 '리츠칼튼'에서는 1938년 코카콜라와 우유를 섞은 해장 음료를 손님에게 제공했다는 기록이 있다. 코카콜라는 1886년 미국 애틀랜타의 약사 존 펨버턴이 모르핀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약으로 개발했다는 게 정설이나, 숙취 해소제로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노인과 바다'를 쓴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술고래로 유명했는데, 쓰린 속을 달래려고 토마토 주스나 맥주를 즐겨 마셨다.

    세계 각국마다 해장 음식이 있기는 하지만, 한국처럼 아예 이름부터 '해장국'이라 붙은 음식이 확고한 존재감을 갖는 나라는 드물다. 전 세계 술 담당 기자들도 "한국에 해장국이 있다는 건 알고 있다"면서도 해장국은 물론 콩나물국, 북엇국, 라면, 짬뽕 등 다양한 국물 음식이 해장을 위해 매일 아침 대량 소비된다는 사실에는 놀라워했다.

    왜 한국에선 해장국이 이토록 발달했을까. 술을 유독 즐기는 민족이라서일까. 타고난 유전인자 때문일 수 있다.

    루시는 "아시안 플러시(Asian Flush)란 표현을 아느냐"고 했다. 우리는 술 마시면 얼굴이 불콰해지는 걸 당연하게 여기지만, 서양에서는 아닌 모양이다. 처음 들었다고 했더니 설명을 시작했다. "숙취의 주요 원인은 에탄올(알코올)이 분해되면서 발생하는 독성 물질인 아세트알데하이드라고. 그런데 동아시아인 인구의 절반은 아세트알데하이드를 유난히 빨리 분해하는 반면 배출은 느린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 그래서 술 마시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홍조 현상이 다른 지역보다 유독 많아. 아시안 플러시란 말은 그래서 생겨났지."

    한마디로 한국인은 술에 약한 체질을 타고났다는 거다. 하지만 마시는 술의 양은 어느 민족보다 많다. 술병으로 고생할 수밖에 없고, 쓰린 속을 달랠 해장국이 다양하게 발달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루시는 "술이 약하다고 다 나쁜 건 아니다"고 했다. "영국에 알코올중독자가 많은 건, 술 마시고 나서 그리 괴롭지 않아서라고 해. 한국은 알코올중독이 서양처럼 심각하진 않잖아?" 숙취로 고생하는 대신 알코올중독은 덜 고민하게 됐으니, 인생 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다. 기자들은 "내일 아침 한국 해장국 맛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입맛을 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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