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수영 詩의 첫 독자… '풀' 읽었을 때 참 시원했다"

    입력 : 2017.11.22 03:03

    김수영 시인 아내 김현경씨, 문인 13명 산문 모아 출간

    "시 한 편이 완성되면 남편은 '난산(難産)이다'라며 저를 불렀습니다. 저는 부엌에서 연탄불에 밥 짓다 말고 앞치마에 손을 닦고 달려가야 했습니다. 남편이 작품을 읽어주면 제가 원고지에 또박또박 옮겨 적었죠. 가끔은 '내가 시를 혼자 쓰는 게 아니다'라며 다독거리기도 했습니다."

    '자유와 저항의 시인' 김수영(1921~ 1968)은 내년에 타계 50년을 맞는다. 그의 아내 김현경(90·사진) 여사는 아직도 그와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15번 넘게 이사 다니면서도 원고, 서적, 강의 노트 등 남편 손때가 묻은 유품을 고이 간직했다. 7년째 혼자 거주하는 경기 용인의 아파트 방 한 칸을 김 시인의 체취가 살아나는 서재로 꾸며두고 있다.

    김현경 여사
    /권상은 기자
    김 여사는 책 '우리는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출판기념회를 24일 용인시청에서 연다. 김 시인의 작품을 사랑해 김 여사와 인연을 맺은 문인 13명이 쓴 산문을 모았다. 제목은 김 시인의 대표작 '거대한 뿌리'('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에서 따왔다.

    지난 20일 자택에서 만난 김 여사는 고령이지만 자세가 꼿꼿하고 기억도 또렷했다. 김 시인 작품을 읽은 첫 독자이기에 창작 시기도 꿰고 있다. 김 시인은 한 해에 시 10~13편 정도를 썼다고 한다. 유작이 된 대표작 '풀'에 대해 "교통사고 당하기 한 달 전인 1968년 5월에 쓴 작품인데, 처음 읽었을 때 참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김 시인은 원고지에 초고를 쓰지 않았다. 외국에서 보내온 잡지 봉투 뒷면 등에 좋아하는 군청색 잉크로 깨알처럼 써내려갔다. 여기저기 줄을 긋고 고친 작품을 아내에게 정서하도록 했다. 점 하나, 띄어쓰기 하나라도 틀리면 다시 써야 할 정도로 까탈스러웠다. 김 여사는 "문학에 대한 열정과 경건함이 존경스러웠다"고 했다.

    긍지가 강했고, 시대와도 불화했던 김 시인에 대해 김 여사는 "나를 조종하는 마력을 가진 유일한 사람이었다"며 "자기를 연마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품성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김 여사는 곡절 많았던 남편을 잃고서도 씩씩하게 살았다. 1974년부터 동부이촌동에서 양장점을 10년 동안 운영했고 미술 컬렉터로도 활동했다. 요즘도 김 시인 작품을 매일 되새긴다. 전집 곳곳에 메모와 책갈피가 꽂혀 있다. 김 시인이 외국 원서를 정성 들여 베낀 노트를 보며 남편을 떠올린다. 문인들을 초대해 손수 만든 음식을 대접하고 김 시인의 시를 낭송하는 모임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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