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K-POP, 영광의 순간들

10대들만 열광하는 한낱 아이돌 문화라고, 그저 흘러가는 대중가요일 뿐이라고 얕보기엔 일이 너무 커졌다.
내수용이라고만 생각했던 한국가요의 성장세는 동남아와 일본 시장을 넘어 미 대륙까지 뻗어가고 있다.

  • 구성=뉴스큐레이션팀 권혜련

    입력 2018.01.12 09:24

    이쯤되면 바다 건너 풍문처럼 들려오던 K-POP의 인기도 실감이 난다. 7인조 보이그룹 방탄소년단이 2017년 6월 빌보드 시상식에서 톱소셜아티스트 상을 수상한 것에 이어 2017년 11월 19일에는 미국의 최대 음악 시상식 AMAs(American Music Awards)의 무대에 섰다. 2017년 빌보드가 선정한 '올해의 아티스트 10'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로써 한류가 어쩌면 '두유노김치'류의 '국뽕'으로 일부 해외 팬의 취향을 일반화한 것일 수 있다는 의심이 한방에 날아갔다. 기념비적인 일련의 장면들은 당연히 한 순간에 완성된 것이 아니다. 우리의 대중음악, 그것도 아이돌 음악은 어떤 루트로 방점을 찍으며 해외로 전파된 것일까. 1세대 아이돌부터 대중음악사에 기억될 만한 나라 밖 K-POP 영광의 순간들을 훑어봤다. 


    2001년 H.O.T. 단독 콘서트 /조선DB

    H.O.T.를 '1세대 아이돌'이라고 보는 데는 이견이 없을 듯 하다. 1996년 SM엔터테인먼트에서 내놓은 H.O.T.는 현재 가요계 시장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기획형 아이돌'의 시초이자, 아이돌 팬덤 문화의 원형을 만든 5인조 보이그룹이다. 90년대 초반 10~20대들 사이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일명 '문화대통령'으로 불리었던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 후, 그 자리를 대체해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이름도 '10대들의 승리'라는 뜻을 담은 'High five Of Teenagers'. 

    /2001년 잠실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H.O.T. 콘서트 관객석. 팬덤의 상징인 하얀색으로 뒤덮인 모습이다. /조선DB
    2000년 베이징에서 열린 H.O.T.의 단독 콘서트는 국내에 '한류(韓流, K-wave)'라는 단어가 널리 퍼지는 계기가 됐다. 2000년 2월 1일 중국 베이징의 공인(工人 ·노동자)체육관에서 열린 H.O.T.의 콘서트는 관람객 1만 2천여 명을 운집하며 이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제대로 보여줬다. 최저 80위안(元·당시 환율 약1만400원)에서 최고 1000위안(당시 환율 약13만원)까지 모든 티켓이 매진됐고, 구매자의 90% 이상이 중국 청소년이었다. 중국 청소년들은 비싼 티켓을 구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으며 최대 명절인 '춘절'에 가장 갖고 싶은 선물로 H.O.T. 콘서트 티켓을 꼽았다. H.O.T.의 중국 내 인기가 문화 현상에 가까웠다는 것은 당시 중국 청소년 문화를 봐도 드러난다. 베이징 시내 번화가인 둥쓰베이다(東四北大) 거리에는 'H.O.T. 음악카페'가 생겨났으며 아직 중국에서 팬클럽이라는 개념이 생소하던 때 자생적인 팬클럽이 만들어져 활동하기 시작했다.
    /(위) 1집 앨범 '캔디' 활동 모습. 이 노래로 H.O.T.는 국민적 인기를 얻었다. (아래) 마지막 앨범 5집 'Outside Castle' /조선DB

    1999년 11월 북경청년보에서 처음 쓰기 시작한 '한류'는 본래 중국 언론에서만 중화권 내 한국의 대중문화 인기 현상을 가리킬 때 사용한 단어였다. H.O.T.의 베이징 콘서트 이후 한국 언론에서도 이 현상을 확실히 인식, 가져와 쓰기 시작했다. 혹자는 이 콘서트를 K-POP 문화의 시발점이자 현재 SM엔터테인먼트 중국 진출의 첫 걸음이라고 보기도 하며, 한국인 스스로 '한류 현상'에 대해 인지하기 시작한 시점이라고도 본다.

    데뷔 이후 국내에서만 활동했던 H.O.T.가 중화권에서 큰 인기를 얻은 것은 중국의 개방 움직임과 92년 수교 이후 해마다 열린 '한중수교기념 문화행사'의 역할이 컸다. 같은 유교 문화권이면서 먼저 자본주의와 함께 서구 문화를 자국화한 한국의 문화는 중국인들에게 친숙하면서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한국 문화를 접할 통로가 넓어지면서 자연스럽게 국내 정상을 달리고 있었던 H.O.T.를 알게 된 중국인들이 많아졌다. 1998년 6월, 1집과 2집의 곡을 추린 음반을 중국에 처음 발매하면서 이들에 대한 관심과 인기는 그룹 해체 직전에 최고조에 달했다.



    보아의 홍백가합전 출연 모습 /NHK

    2000년 '만 13세 소녀가수'라는 타이틀로 데뷔한 보아(BoA)는 이듬해 일본에 진출, 2002년 3월에 낸 일본 정규 1집 앨범  'Listen To My Heart(리슨 투 마이 하트)'로 오리콘차트에서 1위라는 쾌거를 이뤘다. 이미 같은 해 1월에 발매한 싱글에서 오리콘차트 3위를 한 바 있는 보아는 두 달 뒤 낸 동명의 정규 앨범 'Listen To My Heart'로 일본 국민 가수 아무로 나미에를 제치고 일일차트와 주간 차트를 비롯한 음반 차트에서 줄줄이 1위를 차지했다. 아이돌은 물론 한국 가수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국내 데뷔 2년이 채 되지 않은 10대의 소녀 가수가 일본 시장을 확실히 점령한 것이다.

    보아의 일본 활동은 다섯번째 싱글이자 2003년 발매한 두번째 정규 앨범 수록곡 'Valenti(발렌티)'로 정점을 찍는다. 오리콘 차트 1위 차지는 물론, 앨범의 총 판매량은 120만장을 돌파해 밀리언 셀러를 기록했다. 2002년 총 앨범 판매량(싱글, 정규 앨범, 베스트 앨범 포함)에서 일본 가수들 사이에서 당당히 6위에 이름을 올렸고 그해 연말, 일본 데뷔 1년 만에 '홍백가합전(紅白歌合戰)'에 첫 출전해 일본 대표 가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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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보아의 싱글 앨범 'Listen to My heart',(아래) 성공적인 일본 활동 이후 발매한 2집 앨범 'No.1' /조선DB

    2002년 한·일 월드컵 분위기와 맞물려 한·일 교류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기도 했다. 결승전이 치러진 일본에서 단독 초청가수로서 노래를 불렀으며 7월 프랑스 르몽드지에 '한국과 일본의 문화 가교'로 소개됐다. 르몽드는 "보아의 성공은 수십년간의 외교 노력보다 더 효과적인 양국의 가교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듬해 6월에는 일본 총리 관저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한·일 정상 만찬회에 초청됐다. 당시 초청은 일본 외무성의 요청으로 이뤄진 것으로 초청된 인물 중 한국 연예인은 보아가 유일했다.

    한국 가수의 일본 진출과 활동은 이전에도 종종 있었지만 한국 가수로서 오리콘차트 1위를 한 것은 보아가 최초였고, 이는 기획형 아이돌 가수의 첫 해외 성공 사례였다. 일본 시장 뿐 아니라 K-POP의 해외시장 개척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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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보아가 데뷔하자마자 바로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SES로 일본 진출의 실패를 경험했던 SM엔터테인먼트는 본격적으로 아시아 시장을 겨냥해 연습생을 발탁하고 트레이닝 시키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하지만 노래, 춤 뿐만 아니라 어학 실력까지 철저하게 연습해 나온 보아의 첫 한국 데뷔 앨범은 기대 이하였다. 애초 목표했던 일본 시장에서도 큰 반응을 장담하기 어려웠다. SM과 일본 매니지먼트를 맡은 에이벡스는 약 1년간 5장의 싱글 중 4장의 싱글을 20위권에 올려놓으면서 일본 시장의 특성에 맞게 보아의 컨셉트와 전략을 수정했다. 그리고 이 전략은 당시 힘있는 안무와 가창력을 갖춘 여성 솔로 가수는 드물었던 일본 가요계에 신선함을 안기며 보아(BoA)라는 아시아의 별을 탄생시켰다.



    동방신기 도쿄돔 콘서트 장면 /유투브 영상 캡처

    보아의 성공을 바탕으로 2세대 아이돌 그룹이 너도나도 일본 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이 2000년대 후반이다. 수많은 그룹이 일본에서 활동했지만 이 중 관객 동원 정도와 인기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도쿄돔 공연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그룹은 손에 꼽는다.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홈 구장으로 쓰이는 도쿄돔은 일본 가수에게도 '꿈의 무대'로 불리는 곳으로 관객석 규모가 5만명 정도이다. 공연을 한다는 것 자체에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2009년 7월 처음으로 일본 도쿄돔에서 최초로 콘서트를 연 동방신기는 이틀 연속 전회 매진을 기록하며 공연을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이전 도쿄돔에서 공연한 한국 가수로 비와 류시원이 있지만, 공연 전회를 매진시키며 관객석을 가득 채운 한국 가수는 동방신기가 최초였다. 이후 빅뱅, 장근석 등이 도쿄돔 투어 콘서트를 개최했으며 2016년 빅뱅은 '일본 돔투어 콘서트' 개최하면서 무려 도쿄돔에서만 총 15회 단독 공연을 했다. 객석 수 5만명 이상의 공연장을 15회 이상 채운다는 것은 이들이 일본 내에서 얼마나 단단한 고정 팬층을 가지고 있는지를 방증한다. 

    카라 도쿄돔 콘서트 장면 /DSP미디어

    카라, 일본 골든디스크 5관왕
    걸그룹 중에서는 카라가 최초로 도쿄돔에 입성했다. 2010년 일본에서 첫 싱글을 발매한 카라는 2011년 세번째 싱글 앨범 '제트코스터 러브(Jet Coaster Love)'로 발표 첫 주에 오리콘 주간 싱글차트 1위에 올랐다. 오리콘이 싱글음반 순위를 발표하기 시작한 1968년 1월 이후 해외 여성그룹이 첫 주에 정상을 차지한 것은 43년3개월 만에 처음이다. 카라는 한국 걸그룹 중 처음으로 오리콘 주간 싱글차트 1위에 오르는 기록도 세웠다. 일본에서 앨범을 발매한 여성가수 중 솔로와 그룹을 통틀어 주간 싱글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한 사람은 2005년 4월 보아 이후 6년 만의 일이었다.

    2012년 '일본 골드 디스크 어워즈'에서 5관왕을 차지한 카라는 2013년 1월 치러진 도쿄돔 콘서트 전석을 매진시키며 일본 내의 국민적 인기를 증명했다. 도쿄돔 공연은 한국 걸그룹은 물론 해외 여성 아티스트 중에서 카라가 최초였다. 일본 걸그룹 내에서도 AKB48이 유일하다. 다른 아이돌 그룹이 두터운 고정 팬층을 중심으로 일본 시장에 자리 잡았다면 카라는 일본 내에서 세대와 성별을 넘어 국민적 인지도를 고루 쌓은 그룹이다. 보이그룹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정 팬덤이 약한 걸그룹이라는 단점을 친숙한 일본어와 귀여운 이미지로 극복하며 인지도를 쌓았다. 이를 방증하는 사례가 '카라 현상'이다. 2011년 소속사와 멤버 간의 불화를 겪었던 카라가 해체 위기에 놓이자 일본 전역에 카라와 관련한 상품의 매출이 급상승하며, 일본 언론이 그들의 거취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일을 가리킨다.

    카라, 日 오리콘 신기록
    카라 "보라!"


    SM 타운 파리 공연 /SM엔터테인먼트

    2011년 5월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앞에 300여명의 유럽인들이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당시 2011년 6월 10일로 예정된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샤이니, f(x) 등 한국 K-POP 스타들의 공연 티켓을 구하지 못했다며 공연을 하루 더 해달라고 요구했다. 인터넷으로 판매된 공연 티켓 7000장은 발매 15분 만에 동났다. K-POP의 불모지라고 생각했던 유럽, 그것도 문화적 자부심이 높기로 유명한 파리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프랑스 언론은 물론, 해외의 K-POP에 대한 관심을 다시 한번 높였다.

    "공연 연장" 시위까지… K팝(한국가요) 유럽열풍 왜?
    (위) 루브르 앞에서 콘서트 연장을 요구하는 K-POP 팬들/폴란드 한인회. (아래) 공연을 위해 파리에 입국한 SM 소속 가수를 보기위해 공항에 나온 K-POP팬들 /SM엔터테인먼트

    공연을 이틀 앞둔 2011년 6월 8일 파리의 샤를드골공항 제2터미널 E청사 입국장에서도 프랑스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이 펼쳐졌다. 프랑스 K-POP 마니아 1000여명이 대한항공을 타고 도착할 K-POP 스타들을 맞이하기 위해 입국장을 가득 메운 채 K-POP 스타들 이름을 연호했다. 이틀 뒤 공연장에서 볼 얼굴이건만 하루라도 더 빨리 보고 싶다는 극성 팬들이 공항까지 달려나온 것이다.

    프랑스 10대 소녀 팬들은 K-POP 스타들이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2시간 30분 이상을 기다리면서도 조금도 지루해하는 기색 없이 샤이니의 '링딩동', 슈퍼주니어의 '쏘리 쏘리', 소녀시대의 '지' 같은 노래를 부르며 공항 나들이 자체를 '축제'로 즐겼다. 코리아커넥션 대표 막심 파케씨는 "300명 정도 모일 것으로 예상했는데 훨씬 더 많은 인원이 몰려 놀랐다"고 했다. 소녀 팬들의 열기에 놀란 프랑스 공항경찰대는 불상사가 빚어질 것을 우려, 경찰관 20여명을 투입해 K-POP 스타들을 에워싼 채 버스가 대기 중인 주차장까지 에스코트했다.

    유럽 최초의 K-POP 라이브 공연이었던 이 공연은 당초 1회만 공연하기로 했던 것이었다. 예매 시작 15분 만에 매진되면서 표를 구하지 못한 극성 팬 300여명이 루브르박물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바람에 공연 회차를 하루 더 늘렸다. 해당 공연은 2010-2012년 한국 방문의 해를 기념해 열린 것으로 아시아를 중심으로 진행되던 한류가 한국관광공사의 주선으로 이뤄진 이 공연을 통해 유럽이나 남미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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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9월 6일 밤(현지 시각) 미국‘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가수 싸이가 사회자인 인기배우 케빈 하트와 함께 '말춤'을 추고 있다. /로이터 뉴시스

    2000년대 중후반 아시아 시장에서 K-POP의 인기가 무르익으면서 대형 기획사들은 대표 아티스트들과 함께 미국 시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2008년 비와 보아, 세븐이 미국 시장 진출을 알렸고, 2010년에는 걸그룹 최초로 원더걸스가 미국으로 떠났다. 이들은 모두 미국 활동에서 각자 나름의 의의와 성적을 남겼지만, 한국 최정상 가수라는 명성에 비해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그나마 한국활동 때 불렀던 곡을 그대로 가져간 원더걸스 만이 빌보드 HOT 100차트에 76위에 오른 것이 가장 큰 성공이었다.

    (위) 싸이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 캡처. (아래) 강남스타일의 세계적 인기로 서울 시청 앞 축하 공연 펼친 싸이 /스포츠조선

    미국 진출의 꿈이 점점 사그러져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무렵, 가수 싸이를 중심으로 낯선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싸이가 2012년 7월 발매한 6집 앨범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의 조회수가 치솟으며 발매 한달 만에 '최근 한 달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본 동영상' 차트에서 연이틀 1위에 오른 것이다. 유튜브는 매일 한 달 전부터 해당일까지의 동영상 클릭 순위를 공개한다.

    당시 유튜브에 따르면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는 2012년 7월 15일 발표된 뒤 한달 만인 8월 14일 2900여만건의 조회 수를 기록해, 세계적인 팝스타 저스틴 비버와 니키 미나즈 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으며 전날 집계에서도 1위를 했다. 이어 미국 아이튠즈 뮤직비디오 차트에서도 한국 가수로는 처음으로 1위에 올랐다. '강남스타일'은 이날 저스틴 비버(2위)·케이티 페리(3위)·마룬5(4위)·칼리 래 젭슨(5위) 등 유명 팝스타들을 따돌리고 아이폰·아이팟 등의 다운로드 횟수 등 기준으로 매일 집계되는 뮤직비디오 차트를 석권했다. 싸이는 이를 계기로 그해 미국 뮤직비디오 시상식으로는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VMA) 시상식 본무대에서 섰다. 히트곡 '강남스타일'의 '말춤'을 선보이며 깜짝 등장해 객석의 큰 환호를 받았다.

    싸이 '강남스타일' 유튜브 세계 1위
    '강남스타일' 뮤비 한국 첫 美 아이튠즈 1위
    싸이, 美 MTV 시상식서 말춤 추며 등장

    세계 3대 팝차트로 불리는 유튜브, 아이튠스, 빌보드 가운데 이미 유튜브(한 달 기준 조회 수)와 아이튠스(다운로드 횟수)에서 각각 1위에 올랐던 가수 싸이(본명 박재상·35)의 '강남스타일'은 이중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 '핫100'에서 2위까지 올랐다. 당연히 한국인 가수로는 최고 성적이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당연 미국 시장을 겨냥하고 만든 곡이 아니었다. 2000년에 데뷔해 매번 코믹하면서 다소 충격적인 컨셉의 앨범으로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었던 싸이의 컨셉이 유투브라는 거대한 동영상 채널을 만나면서 미국인들의 'B급 코드'를 건드린 것이 주요 성공 요인이었다. 하지만 꾸준한 팬덤을 형성한 아티스트라기 보다는 단발성에 그친 신드롬에 가까웠다.



    미 AMAs에서 축하무대를 공연한 방탄소년단. 미국의 많은 뮤지션들과 현지 팬들이 환호했다. /게티이미지

    미국 진출에 성공한 싸이는 이후 발매한 음반에서 비슷한 컨셉으로 미국 시장에 다시 한번 도전했지만 '강남 스타일'만큼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대신 또 한번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 7인조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영어 약자 BTS)은 2017년 5월 22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T모바일 아레나에서 열린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서 '톱 소셜 아티스트(Top Social Artist)' 부문을 수상했다. 한국 가수 중에서는 싸이가 2013년 '강남스타일'로 '톱 스트리밍 송'의 비디오 부문을 수상한 데 이어서 두 번째이며 K-POP 아이돌 그룹 중에서는 첫 수상이다.

    미국서도 '불타오르네' 방탄소년단
    방탄소년단 "K팝의 저력, 보셨죠?
    2017 빌보드 어워드 시상식에 참석, 수상하는 방탄소년단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내 방탄소년단의 인기는 K-POP이 한번도 보지 못한 장면들을 2017년 한해에만 숱하게 만들었다. K-POP의 불모지라고 여겨졌던 미국에서 미국인들이 한국어로 쓰인 플랜카드를 들고 한국어 가사를 떼창하는 모습은 자국민이 한국은 물론 세계를 놀라게 했고, 빌보드 시상식과 지미 키멜 라이브(Jimmy Kimmel Live!)와 엘런(The Ellen DeGeneres Show)쇼 미국 3대 토크쇼의 메인 게스트로 나가 미국과 한국 대중들을 들썩이게 했다. SM이나 YG처럼 대형 기획사가 아닌 중소 신생 기획사에서 처음 만든 아이돌이 데뷔 4년만에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K-POP 스타가 된 것이다. 

    빌보드 앨범 7위 방탄소년단, 한국 가수 중 역대 최고 기록
    [단독 인터뷰] 방탄소년단 "美 3대 토크쇼 출연… 우리도 신기해요"
    BTS, 미국 토크쇼서 유창한 영어… 엄마들도 놀랐다
    (위) 미국의 3대 토크쇼 중 하나인 '지미 키멜 라이브 (Jimmy Kimmel Live!)'에 출연해 약 20여분간 미니 콘서트를 연 방탄소년단. 역시 3대 토크쇼 중 하나인 엘런 디제너러스 쇼(The Ellen DeGeneres Show)의 게스트로도 초대받았다. /방송 영상 캡처 및 유투브 캡처

    방탄소년단이 수상한 빌보드 어워드의 '톱 소셜 아티스트' 는 2011년 처음 신설된 상으로 지난 1년간 앨범과 싱글 판매량, 스트리밍과 라디오 방송 횟수, 공연 등 각종 통계와 세계 팬 투표를 합산해서 수상자를 선정한다. 수상자 선정 방식에서 알 수 있듯이 팬들과의 소통이나 교감을 중시하는 부문이다. 지금까지 미국의 팝스타 저스틴 비버가 6년 연속 수상해왔는데 방탄소년단이 두번째 수상자가 되면서 그 기록을 깼다. 시상식에 참석한 방탄소년단의 RM은 "우리의 친구 '아미(ARMY·팬 클럽 이름)' 정말 감사합니다. 이 무대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아직도 믿을 수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우리를 빛내주고 사랑해주는 세계 모든 팬 덕분에 이 상을 받았다는 점입니다"라고 영어로 소감을 밝혔다.

    2017년 가장 뜨거운 한해를 보낸 방탄소년단은 미국 빌보드지(誌)가 해마다 연말 결산으로 선정하는 '올해의 아티스트' 10위를 차지하며 이름을 올렸다. 역시 한국 가수가 빌보드의 연말 결산 리스트 중 '올해의 아티스트'에 오른 건 처음이다. 12월 31일 마지막 밤에는 미국의 대표 신년쇼 '딕 클라크스 뉴이어스 로킹 이브(DICK CLARK’S NEW YEAR’S ROCKIN EVE)'의 무대에 섰다.

    방탄소년단의 성공 비결로 가장 크게 꼽히는 것은 소셜 미디어 활용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성공에서 K-POP은 유투브라는 새로운 채널의 가능성을 확인했다면, 방탄소년단은 이를 적극 활용한 경우이다. 팀 계정 하나를 공동으로 쓰면서 믹스테이프와 커버송을 발표하는 기본적 활동 외에 1주일에 2~3개씩 꾸준히 자체 제작 콘텐츠를 내보내 팬과의 소통에 중심을 뒀다. 고정 팬층을 두텁게 만드는데 이러한 전략이 주효했다. 요리하는 모습, 애완동물과 장난치는 영상,  졸업식 등 또래처럼 일상을 보내는 모습에 팬들은 더욱 특별한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주로 유투브와 트위터의 활동에 주력한다. 방탄소년단의 트위터 팔로워 수는 지난해 11월 한국인 최초로 1천만명이 돌파했으며 2017년 한해동안 가장 많이 트윗된 계정으로 꼽혔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보다 많은 수치이다. 디지털, 모바일 영상 세대의 새로운 성공방식을 보여준 사례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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