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들어갈지 말지는 주민이 알아서"… 정부, 사후 매뉴얼도 없다

    입력 : 2017.11.18 03:11 | 수정 : 2017.11.18 05:25

    [포항 지진 파장] 포항 주민들, 무대책에 또 운다

    - 당국, 수박 겉핥기 대응
    "공무원이 스티커만 붙여놨지, 어떻게 하란 말이 없어요"
    정밀진단은 집주인이 부담해야

    - 일본은 매뉴얼대로 착착
    지진 땐 바로 주거지부터 확보… 이재민 수만명에도 큰 혼란 없어

    "도대체 집에는 언제 돌아갈 수 있나요."

    지진 발생 사흘째인 17일 경북 포항 시내 대피소 곳곳에서는 이재민 수백명이 불안에 떨고 있었다. 언제 귀가할 수 있을지, 집에서 계속 살 수는 있을지 알 수 없어 답답하다는 이가 많았다. 이날 오후 1시 30분쯤 포항시 흥해읍사무소는 피해 내용을 신고하러 수십명이 몰려들었다. 접수대 옆에서는 전화기가 쉴 새 없이 울렸다. 80대 할머니들을 태우고 온 택시 기사 김기창(67)씨는 "집 근처 밭에 있던 6평짜리 컨테이너에서 식구 16명이 같이 잤다"며 "공무원들이 나와서 피해 본 집 사진을 찍어갔는데 이후에 아무런 말이 없다. 불안해서 다시 들어갈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2시 대피소 중 하나인 북구 대도중학교에는 이재민 150여명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내일 이곳에서 6㎞가량 떨어진 교회로 옮겨야 한다. 지친 표정으로 앉아 있던 주민 김순희(62)씨는 "집이 안전한지 알 수가 없어서 못 가겠고, 멀리 떨어진 교회로 가자니 걱정된다. 언제 집에 돌아갈 수 있는지 혹시 아느냐"고 물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 17일 포항시 북구 흥해실내체육관에서 머물고 있는 한 이재민이 어린 딸을 담요로 감싸 끌어안고 있다. 엄마와 딸은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에 마스크를 꼈다. 이날 체육관에는 “언제 집에 갈 수 있냐”며 부모를 보채는 어린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 17일 포항시 북구 흥해실내체육관에서 머물고 있는 한 이재민이 어린 딸을 담요로 감싸 끌어안고 있다. 엄마와 딸은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에 마스크를 꼈다. 이날 체육관에는 “언제 집에 갈 수 있냐”며 부모를 보채는 어린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연합뉴스
    행정안전부는 대피한 주민들이 귀가할 시기를 알아서 판단하라는 입장이다. 포항시 재난대책본부 관계자는 "주민 거주지는 개인 건물이기 때문에 당국이 나서서 들어가라 말라 할 일이 아니다"고 했다. 지진 피해 주민의 거주지 확보 등에 관한 매뉴얼이 없는 것이다. 17일 국토교통부에서 이재민에게 주택 160채를 긴급 지원하겠다고 했으나 전체 이재민 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지진 피해를 본 건물의 위험도는 지방자치단체 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평가단을 구성해 알려주게 돼 있다. 하지만 이주 여부는 주민이 알아서 해야 한다. 포항시는 17일 10팀 36명으로 위험도 평가단을 구성해 피해 건축물 1500곳 평가에 나섰다. 건축사와 건축 공무원이 한 조가 돼 초록(사용 가능), 노랑(사용 제한), 빨강(위험) 딱지를 붙인다. 그러나 평가단이 외관을 보고 판단할 뿐 이후 어떻게 할지는 오로지 주민 판단에 맡긴다. 사용 제한이나 위험 등급이 나와도 보수할지 말지 결정은 소유주 몫이다. 눈으로 외관을 확인하는 이상의 정밀 검사를 받으려면 건물 소유주가 비용을 전액 부담해야 한다.

    행안부 측은 "사유 시설에 대해선 재난 지원금 이외엔 대책이 없다"고 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행정안전부에서 담당하는 응급 복구는 도로나 담장 등 공공 시설물이 무너진 경우"라면서 "사유 시설물 피해는 주민들이 자원봉사 도움을 받아서 스스로 복구하는 게 대부분"이라고 했다.

    주민이 알아서 하라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지진 당일 곧바로 당국이 나서서 주거 확보에 착수한다. 지진 대응 매뉴얼이 갖춰진 덕이다. 지난해 4월 구마모토현에서 규모 6.5 지진이 발생하자 국토교통성은 발생과 동시에 중앙 비상대책본부를 설치하고 긴급 재해 대책 파견대를 보냈다. 구마모토현은 지진이 드물던 지역이지만 지침대로 신속한 대응이 가능했다. 주민 수만명이 대피소에 머물렀으나 포항과 같은 혼란은 없었다. 국토교통성이 현지 숙박 업소, 부동산 업계, 전국 지자체에 협조를 요청해 이재민이 들어갈 민간·공공 임대주택, 응급 가설 주택, 빈집 등을 1만채 이상 확보했다. 피해를 본 건물의 안전 점검을 마치고 주의가 필요하거나 위험한 건물을 확인한 후 해당 주택 거주자에게는 안전 보수를 마칠 때까지 국토교통성이 확보해 놓은 집에 머무르도록 했다.

    조원철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는 "피해를 본 건물의 위험도를 눈으로만 평가하면 정확성이 없을 뿐 아니라 일본에 비해 시설물 안전 평가 기준도 낮아 안전성을 100% 보장할 수 없다"며 "정부 관리자들을 위한 명확한 지침뿐 아니라 시민을 위한 간단 명료한 지침도 개발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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