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적폐 청산'은 예수式으로…

  • 송태호 송내과의원 원장·의학박사

    입력 : 2017.11.18 03:01

    [송태호의 의사도 사람]

    관행적으로 이어져온 대학 병원 내 폭력 여전…
    "너희 중 죄 없는 자가 간음한 여인 돌로 치라"처럼
    누구나 수긍하는 방식 없을까

    내가 중·고교를 다닌 1980년대는 학교에서 공공연히 체벌이 허용됐다. 중학교 2학년 때 시험 성적이 나오는 날이면 담임 선생님은 우리를 모두 체육관에 모아놓고 등수가 떨어진 사람을 불러내 '빠따'를 쳤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도 지난번보다 성적이 떨어지면 영락없이 빠따를 맞았다. 내가 1등을 했을 때도 자랑스러운 마음에 앞서 '다음 시험에도 1등을 해야 빠따를 안 맞을 텐데' 하고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의사 생활을 시작한 1990년대 병원에는 여전히 폭력이 있었다. 인턴 때는 맞은 적이 없다. 잘못한 일은 있었겠지만 잠시 거쳐가는 사람에게 크게 야단치지 않는 분위기도 한몫했다. 대신 내 바로 위 전공의가 야단을 맞았다. 당시에도 레지던트들은 상급자들(교수와 선배 레지던트)에게 폭력을 당하곤 했다. 내가 레지던트가 된 뒤 '단체 집합'은 거의 없어졌다. 하지만 의사 개인의 성격에 따라 폭력이 남아있었다. 교수와 함께 회진을 돌다가 무엇인가 잘못이 발견되면 교수는 회진을 중단하고 의국 사무실로 들어갔다. 학생들과 인턴은 레지던트가 호된 질책을 당하는 소리를 사무실 밖에서 꼼짝없이 듣고 있어야 했다. 질책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레지던트 생활 내내 질책이 계속됐다. 인간적인 모욕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리적 폭력이 없었는데도 모욕을 견디지 못해 수련을 포기한 의사도 있었다.

    인간의 생명을 책임지는 대학병원이라 기합이 센 것이라고 자위하기도 했다. 적어도 나는 맞은 적이 없었다. 오죽하면 손찌검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적어도 내가 수석 전공의가 되면 폭력을 없애겠다고 맹세를 했고 동기들과도 그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연차 전공의들이 수석이 됐을 때, 적어도 우리 의국 내에서는 폭력이 사라졌다. 어떻게 보면 내가 손해를 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랫사람들의 잘못이 갑자기 없어지진 않았다. 윗사람에게서 받은 질책을 내 선에서 끝내고 아랫사람은 좋은 말로 타일렀기에 악습을 없앨 수 있었다. 지금도 몇몇 대학병원에 폭력이 남아있다니 착잡할 뿐이다. 후배들에게 주먹을 휘두른 의사는 분명히 선배들에게서 얻어맞은 사람일 것이다. 나쁜 것을 물려받아 그대로 후배에게 물려주고 있는 셈이다.

    온 사회가 '적폐 청산'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적폐라고 지적된 일들은 나쁜 관행이 누적된 것이 많다. 심하게 시집살이를 한 며느리일수록 나중에 더 나쁜 시어머니가 된다는 옛말이 있다. 누군가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않으면 그런 일들은 영원히 계속된다. 고리를 끊는다는 것은 자기가 당한 수모를 털어내고 앞으로는 같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적폐 청산'은 자신이 당한 것을 고스란히 갚아주는 모양새다. 이런 식이라면 지금 당한 사람들이 훗날 또 다른 적폐를 청산하겠다고 덤빌 것이다. 예수는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려는 군중에게 "너희 중 죄 없는 자가 이 여인을 돌로 치라"고 했다. 적폐는 그런 식으로 청산해야만 하는 것이다. 언제까지 과거에 얽매여 같은 잘못을 반복할 것인지, 뉴스를 읽을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다. 어디 이런 답답증을 명쾌하게 풀어줄 내과의사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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