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발생한 포항 강진의 피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물들이 있다. 1층 주차장 기둥이 엿가락처럼 휘고 끊어진 장성동의 4층 빌딩, 건물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흥해읍의 한 아파트, 외벽 벽돌이 우르르 떨어진 한동대 건물이다. 취재진이 건축 구조·내진 설계 전문가인 김승직 계명대 교수와 신경재 경북대 교수, 그리고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관계자들과 함께 현장에서 피해 상황을 확인했다.

16일 진앙에서 2㎞쯤 떨어진 포항 흥해읍 대성아파트. 1987년 완공된 5층짜리 이 아파트 여섯 동(棟) 중 하나가 북쪽으로 15㎝가량(지표 부근 기준) 기울어져 있었다. 1층 베란다 쪽 하단부는 콘크리트가 떨어져 나가면서 30㎝가 넘는 틈이 생겼다. 듬성듬성 철근 두세 가닥이 튀어나와 있었다. 다른 다섯 동의 외벽에도 큰 균열이 가 있었다. 신 교수는 "아파트 내부에 기둥이 없다. 내부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려고 벽으로만 하중을 견디도록 설계한 것"이라고 했다. 이런 구조라면 벽이 튼튼해야 한다. 하지만 내부 벽에도 손이 쑥 들어갈 만큼 커다란 균열이 곳곳에 나 있었다.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정광량 회장은 "가로 철근 없이 세로 철근만 세우는 기본 공사만 했다. 외벽도 15㎝로 얇다"고 했다. 틈 사이로 튀어나온 철근 뒤에 빈 공간이 보였다. 철근과 콘크리트로 채워지지 않은 것이다. 내진 설계가 의무화된 건 이 아파트 완공 이듬해인 1988년부터다. 지진이 발생한 포항 북구에만 내진 설계가 안 된 아파트가 39곳에 이른다.

주민들은 어쩌나 - 15일 발생한 강진으로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에 있는 5층짜리 대성아파트 한 동(棟)이 마치 이탈리아에 있는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져 있다(왼쪽). 건물 외벽에는 사람 손이 들어갈 정도의 균열이 생겼다. 붕괴 위험으로 건물 출입이 완전 통제됐고, 주민들은 인근 체육관으로 대피해 있다.

새 아파트도 지진에 취약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작년 6월 입주를 시작한 양덕동의 21층 높이 아파트도 외벽에 지그재그로 금이 가 외장 시멘트가 떨어졌다. 신 교수는 "구조적으로 큰 문제는 없지만, 외장 타일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타일이 주민 머리 위로 떨어지면 피해가 발생한다"고 했다. 이 아파트 출입문 앞엔 전날 관리사무소가 붙인 '우리 아파트는 내진 1등급'이란 안내문이 있었다.

16일 현장을 둘러본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상황이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하도록 국무회의에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포항 지진 규모(5.4)는 작년 경주 지진(5.8) 때보다 작았으나 진원지 깊이가 9㎞로 얕아 충격이 지표면으로 그대로 전달돼 피해가 컸다는 분석이다. 포항에서 강진 피해를 입은 건물들은 당초 설계 자체가 잘못된 곳들이 많았다. 부실시공 등 고질적 병폐도 지진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됐다.

◇"필로티 건물 내진 설계 부실"

16일 포항 장성동의 한 4층 빌딩. 1층을 주차장으로 만들고 2층부터 건물이 올라가는 '필로티 공법'으로 2011년 지은 것이다. 건물을 지탱하는 기둥 8개 중 3개가 철근을 드러낸 채 구부러져 있었다. 속이 드러난 기둥 속엔 세로로 넣은 철근 외에 가로 방향 철근(횡근)이 보였다. 김 교수는 "이번 포항 같은 지진을 견디려면 횡근 간격이 기둥 두께보다 촘촘해야 한다"고 했다. 취재진이 자로 재어본 결과, 정사각형 기둥은 두께가 약 30㎝, 횡근 간격은 이보다 넓은 32~33㎝ 정도였다.

위태로운 필로티 건물 - 지난 15일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강진으로 장성동 원룸 단지 내 필로티 공법으로 지은 건물 기둥이 부서지고 철근이 휘어져 있다. 16일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관계자들이 건물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문제는 또 있었다. 기둥을 둘러싼 콘크리트 두께는 10㎝ 정도 됐다. 김 교수는 "콘크리트가 두껍다는 건 그만큼 철근이 박힌 기둥 중심부가 얇다는 말"이라고 했다. 그는 "제대로 된 건물이라면 강진이 발생했을 때 기둥 위아래 경계 부분에 균열이 생기지, 이 건물처럼 기둥 중간이 파손되지 않는다"고 했다.

필로티 공법은 원래 지진에 취약하다. 그나마 지진을 견디려면 1층부터 건물 꼭대기까지 기둥으로 연결돼 있어야 한다. 하지만 국내에선 대부분 1층에만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벽면으로 된 건물을 얹힌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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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진설계란?]

지진으로 손상된 필로티 건물은 이곳만이 아니었다. 장성동 원룸 단지 내 또 다른 4층 건물의 기둥은 9개 모두 금이 가거나 콘크리트 파편이 떨어져 나와 철근 다발이 보였다. 기둥 안쪽을 보니 가로세로 1m 크기의 'X'자 균열이 있었다. 김 교수는 "이런 균열은 가로로 금이 간 것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했다. 여진 등 다시 강한 충격을 받으면 콘크리트가 유리처럼 갑자기 부서져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이곳 원룸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방식으로 지어졌다. 여진이 오면 언제든지 같은 피해가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외벽 벽돌 공사 부실로 와르르

강의동 외벽 벽돌이 무너져 내린 한동대는 조적 작업 부실을 지적받았다. 16일 5층짜리 강의실 건물인 느헤미야홀 측면에는 4~5층 높이 벽면에 쌓아올린 벽돌이 다 떨어져 나가 있었다. 신 교수는 "구조체를 보면 철근이 삐죽삐죽 나와 있다. 이 철근에 벽돌을 제대로 연결하지 못했다"며 "벽돌 쌓는 사람들의 숙련도가 떨어지거나 전문가들이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이런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캠퍼스 군데군데 누군가 칼로 잘라낸 듯 벽에서 떨어져 나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벽돌 무더기가 보였다. 벽돌을 건물 벽에 붙일 때 접착제를 가장자리에만 발라 벌어진 일이다. 신 교수를 비롯한 조사단은 "어떻게 이렇게 공사를 했나. 정말 심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도서관 건물, 제1공학관, 학생회관 등이 부실한 조적 공사로 인해 벽면의 벽돌이 떨어져 나갔다. 신 교수는 "지진이 발생하면 창틀에 변형이 생길 수 있는데, 이때 유리창이 건물과 닿지 않도록 여유를 두고 만들지 않으면 창문이 쉽게 깨져 아래에 있는 사람이 다칠 수 있다"고 했다. 별관 건물 지하 1층 보일러에서는 기름이 새고 있었다.

한동대는 1995년 개교했다. 반면 1986년 개교한 포스텍(POSTEC)은 지진 당일 집기류가 떨어지고 일부 강의동에서 정전 사고가 일어나는 데 그쳤다. 신 교수는 "한동대가 진앙에서 가까운 점도 있었지만, 마감 공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크게 무너진 것처럼 보였다"고 지적했다. 건물 내부 벽면이 깨져 2m가량 사선으로 균열이 된 곳도 있었다. 한국시설안전공단 강영종 이사장은 "외벽뿐 아니라 본체에도 문제가 있는 건물들이 보인다. 정밀 진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