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에 왜 꽃을 심고 장작을 패는가

조선일보
입력 2017.11.17 03:01

노르웨이 언론인 뮈팅 나무 베서 장작 만드는 全 과정 추적 취재
에버랜드 정원사 박원순 美 롱우드가든서 보낸 1년 "식물 기르는 것은 본능"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 인간의 본질 물어

노르웨이의 나무 / 나는 가드너입니다

노르웨이의 나무
라르스 뮈팅 지음
노승영 옮김|열린책들
280쪽|1만5800원

나는 가드너입니다
박원순 지음·사진
민음사|288쪽
1만7500원

아득한 속도로 발달하는 현대사회에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지구는 365일에 걸쳐 태양을 한 바퀴 돈다. 인간은 봄꽃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고, 한겨울에는 불을 쬐며 몸을 녹이고 싶다. 북유럽에서 장작을 패고 쌓고 말리는 법을 설명한 '노르웨이의 나무',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롱우드가든에서 정원사가 되기 위해 사계절을 보낸 '나는 가드너입니다'는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장작 패기의 모든 것'과 '정원과 식물 찬가'. 얼핏 실용서로 보이지만, 그렇게 꼬리표를 붙이기가 미안하다. 인간의 원초적 모습을 이렇게 우아하고 매력적으로 그려낸 실용서라니.

미국 롱우드가든에 전시된 ‘천송이국화’는 원예사들이 밤낮없이 꼬박 1년을 걸쳐 돌본 결과물이다.
미국 롱우드가든에 전시된 ‘천송이국화’는 원예사들이 밤낮없이 꼬박 1년을 걸쳐 돌본 결과물이다./민음사
먼저 '노르웨이의 나무'. 노르웨이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인 라르스 뮈팅(49)이 2011년 썼다. 19개 언어로 번역됐고, 지금까지 63만부가 팔렸다. "장작은 팰 때 한 번, 태울 때 또 한 번 몸을 데운다"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은 이 책이 유럽에서 이례적인 인기를 누렸던 이유를 간명하게 설명한다.

노르웨이는 1인당 평균 1년에 장작 300㎏를 태우는 나라. "적으면 오들오들 떨 것이요, 너무 적으면 목숨을 잃을 것이다"라는 잠언은 한국인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 같다. 장작에 대해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더 흥미롭다. 장작은 친환경 연료이고, 노르웨이에서 한겨울 전력이 끊겼을 때 가장 확실한 생존 방식은 땔나무이며, 이들은 초고속 인터넷이 설치된 주택에 장작 난로를 설치하고 산다.

"장작 패기는 수천 년 동안 전쟁터에서 가장 효과적인 무기였던 날카롭게 세운 날을 힘껏 휘두르는 일 아니던가. 현대인의 삶에서는 이에 비길 만한 기회를 찾기 어렵다. 하루는 버젓한 폭력 행위에 종사하고 이튿날은 그 결실을 누리되 누구에게도 어떤 피해도 입히지 않는다." 때리고 부수며 스트레스를 푸는 '스트레스 해소방'이 올 들어 20대 사이에서 인기였다. 지금이라도 도끼를 들고 나무를 패고 싶어지는 위트 있는 문장도 여럿이다.

쌓아둔 장작더미에 그린 노르웨이 국왕 하랄 5세와 왕비의 얼굴. 노르웨이는 산유국이지만 장작 소모량은 40년 전보다 10배 늘었다.
쌓아둔 장작더미에 그린 노르웨이 국왕 하랄 5세와 왕비의 얼굴. 노르웨이는 산유국이지만 장작 소모량은 40년 전보다 10배 늘었다./열린책들
다소 마초적인 북유럽 장작 패기에서 조금은 말랑말랑한, 그러나 고되기는 매한가지인 가드닝으로 넘어온다. 필자는 에버랜드에서 사계절 꽃축제를 기획하는 박원순(44)씨. 처음에는 출판사 편집자였고, 원예의 매력에 빠져 제주도 여미지 식물원으로 자기 소개서를 넣었고, 다음에는 미국 최고 원예교육기관 중 하나로 꼽히는 펜실베이니아주 롱우드가든 국제 정원사 양성 과정을 마쳤다. '나는 가드너입니다'는 롱우드가든에서의 1년간의 수업과 일상 스케치. 페레니얼가든, 고사리정원, 천송이 국화의 정원, 오랑주리 등 그곳에 있는 정원 10곳의 무대 뒤를 소개하고 설명한다. 계절별 일기는 그 아름다움을 완성하기 위해 새벽 5시면 일어나야 하는 무대 뒤 가드너의 삶을 담담하게 스케치한다.

줄기 하나에서 가지를 치고 결국 천(千) 송이 꽃을 피워내는 천송이 국화는 자라는 데 꼬박 1년이 필요하다. 전시 당일의 개화(開花)를 위해, 잔인하지만 빛을 계속 노출해야 한다. 1000개의 가지가 각각 꽃 한 송이만 틔우도록 나머지 꽃봉오리는 제거한다. 만개하고 2~3주면 질 꽃에 들이는 노력이다. 가드닝 문외한도 한 발짝씩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빠져든다. 이유는 뭘까. "세상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지만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삶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긴 어렵다. 식물을 기른다는 원초적인 본능도 그중 하나다."

기자(소설가)와 편집자. 머리로 일했던 두 저자는 몸으로 일한 경험을 책으로 썼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간이 잊고 있던 원초적 세계를 발견했다. 책은 그 즐거움의 기록이다. "장작을 팰 때는 마음을 비울 수 있습니다."(뮈팅) "우리는 태초부터 가드너였을지 모른다."(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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