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의 SK랩북] 백인식, 장애 극복한 야구인생 제2막

  • OSEN

    입력 : 2017.11.15 07:35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죠”

    SK 투수들은 최근 샤워실에서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한 투수가 한 손으로만 얼굴을 씻고 있었다. 오른팔이 얼굴에 닿지 않았다. 처음에는 농담 섞인 놀림도 나왔지만, 이내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박종훈은 “세수를 하는 장면이 너무 이상했다”고 털어놨다. 김태훈은 “보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다”고 떠올렸다. 선수들의 시선은 사이드암 백인식(30)에 고정되어 있었다.

    백인식은 오른쪽 팔꿈치에 네 번이나 칼을 댔다. 그 결과 일상생활이 불편할 정도로 후유증에 시달린다. 오른팔의 가용 각도가 정상인보다 훨씬 좁다. 세수를 제대로 못 할 정도다. 백인식은 “팔이 얼굴에 닿지 않는다. 한 손으로 세수를 하기도 하는데 오른팔이 올라오지 않으니 아무래도 불편했다”면서 “나는 이제 적응이 돼 덜 불편한데, 오히려 주위에서 보는 사람이 더 불편해 하는 것 같다”고 멋쩍게 웃었다. 야구 인생의 시련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스토리다.

    네 번의 수술, 다섯 번의 복귀

    투구는 동작 자체가 인체의 정상적인 흐름을 완전히 역행하는 행위다. 자연히 투구가 계속될수록 몸은 망가진다. 그래서 그런지 투수들에게 있어 팔꿈치 수술이 특별한 시대는 지났다. 많은 선수들이 너덜너덜해진 팔꿈치에 칼을 대고 미래를 기약한다. 다만 그 수술이 끊이지 않는 케이스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 정도로 심각한 사례도 많지 않을뿐더러, 그렇게 수술을 하면 그대로 은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서다.

    그런데 백인식은 무려 네 번이나 수술대에 올랐다. 처음은 팔꿈치인대접합수술(토미존 서저리)였다. 고등학교 때 받았다. 한 번으로 끝날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2014년 좋은 활약을 선보인 백인식은 팀 선발진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그런데 2015년 5월, 또 팔꿈치가 아팠다. 통증을 참고 던지면서 버텨보려고 했으나 기약이 없었다. 팔꿈치 인대는 다시 망가진 상황이었다. 고등학교 때 ‘갈아 낀’ 새 인대는 11년이 한계였다.

    백인식은 2015년 9월 팔꿈치에 웃자란 뼈를 깎아냈다. 그리고 10일 다시 토미존 서저리 수술대에 올랐다. 재활에만 1년이 걸리는 수술이었다. 그런데 그 수술도 백인식의 팔꿈치에 완벽한 생명을 불어넣지 못했다. 1년을 재활했지만, 다시 뼛조각이 발견됐다. 그렇게 지난해 가을 다시 수술이 결정됐다. 웃자란 뼈를 다시 깎고, 뼛조각도 제거했다. 복귀가 최소 반년 더 늦어졌다. 대신 팔꿈치에 기나긴 수술의 흔적이 하나 더 추가됐다. 주위에서는 “장애인증도 발급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할 정도로 상태는 좋지 않았다.

    그렇게 꼬박 2년 반 동안 재활에 매달렸던 백인식이다. 백인식은 “재활이 길어지면 삶이 미쳐가는 기분이다. 구석에 박혀 매일 똑같은 운동만 해야 했다”고 담담하게 떠올렸다. 답답한 마음에 트레이닝실에 몰래 숨어 잠을 청하는 경우도 있었다. 동료 투수들이 공을 던지는 모습을 보면 속이 상했기 때문이다. 아예 야구장 근처로는 가지 않으려고 할 시기도 있었다. 백인식은 “그게 유일한 낙이었다”고 말했다.

    그랬던 백인식은 인고의 시간과 장애를 딛고 복귀에 성공했다. 힘들었던 재활 기간을 알기에 주위의 축하는 더 크고, 또 잔잔했다. 8월에 첫 선을 보인 백인식은 정규시즌 11경기에서 18⅔이닝을 던지며 2세이브 2홀드, 평균자책점 2.41의 좋은 성적을 내며 팀 필승조에 합류했다. 세수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오른팔은, 각고의 노력 끝에 145㎞ 이상을 던질 수 있게끔 강해져 있었다. 백인식은 “1군 복귀 후 구속이 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도 신기하다”고 웃었다.

    마지막 기회, 야구인생 2막이 시작됐다

    2년 반을 날렸다. 야구인생의 전성기가 찾아올 시점이라 더 아쉬웠다. 그러나 얻은 것도 많았다고 떠올리는 백인식이다. 백인식은 “재활 기간이 길었지만 허투루 보낸 건 아닌 것 같다. 개인적으로 얻은 것이 많았다고 생각한다”면서 “심리적으로 조금 더 성숙해졌고 몸 관리 노하우도 많이 쌓았다”고 말한다. 식단도 체계적으로 유지하고, 술도 입에 대지 않는다. 아팠을 때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백인식의 노력은 필사적이다.

    무엇보다 마음을 많이 비웠다. 2년 반의 시간은, 역설적으로 어깨와 심장에 걸리던 부담감을 덜어냈다. 백인식은 “그 전에는 한 경기만 못 던져도 세상이 다 무너진 것처럼 자책하고, 또 기가 죽고 그랬다. 지금은 오래 쉬어서 그런지 그런 게 없다. 좀 못 던져도 ‘내일 안 아프면 되지’라는 생각이다”고 했다. 잠시 좀 더 생각을 이어가던 백인식은 “공을 던질 수 있다는 자체에 감사한다”고 말을 맺었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는 백인식이다. 백인식은 “이제 왼팔에서 뗄 인대도 없다. 한 번 더 인대가 끊어지면 무릎에서 떼야 한다”고 미소 짓는다. 웃음을 잃지는 않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선수 인생. 그래서 매 경기 더 최선을 다한다는 각오다. 20대 당시보다 절박함이 더 커졌다. 기회도 왔다. 구단은 올해 고무적인 성과를 낸 백인식을 내년 필승조 요원으로 간주하고 있다. 지난달 27일부터 시작된 가고시마 마무리캠프에서도 좋은 구위를 유지 중이다.

    NC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이 아쉬웠다고 말하는 백인식은 “아픈 곳은 없이 괜찮다. 처음에는 팔이 조금 불편하기도 했는데 시즌이 끝나고 한 번 쉬는 동안 괜찮아졌다. 지금은 일정을 다 예정대로 소화하고 있다. 남들보다 피칭 늦게 시작하기는 했지만 이미 세 번의 불펜 피칭을 했다.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다”고 자평했다. 선발이 아닌, 불펜으로 시즌을 준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게 백인식의 설명이다. 그만큼 마음가짐도 새롭다.

    새로운 루틴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백인식은 “선발로 준비하다가 아예 불펜으로 준비를 한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그래서 구종을 추가한다기보다 가지고 있는 것을 좀 더 확실하게 만들려 한다. 주자가 있는 상황에 많이 나갈 것 같아 퀵모션에서도 힘 있는 공을 던질 수 있게 신경 쓰고 있다”면서 “선발로 나갔을 때는 길게 보고 던지니까 맞혀 잡는 게 가능했다. 중간에 나가보니 맞혀 잡는 피칭이 안 되더라. 매번 전력투구를 해야 한다. 그게 좀 어려운 것 같다”며 주안점을 밝혔다.

    다시 시작하는 첫 걸음이 나쁘지 않다. 환경도, 마음가짐도 새롭다. 백인식은 “지금껏 이 시기에 재활로 준비를 했는데, 올해는 스프링캠프를 준비하는 상황이다. 모든 것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고 의욕을 드러냈다. “이제 내년이면 32살이다. 11년 만에 인대접합수술을 다시 했다. 그러니 10년은 인대가 더 버텨줄 수 있을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웃는 백인식. 장애를 극복한 한 투수의 야구인생 제2막이 힘차게 시작됐다. /SK 담당기자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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