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자 끌어안고 화합하는 게 정치

    입력 : 2017.11.15 03:02

    [학술연구 부문·진덕규 교수]

    "평화는 협상으로 얻을 수 없어… 지나친 민족주의는 위험… 한국, 열린 민족주의 지향해야"

    민세(民世) 안재홍 선생
    제8회 민세상 수상자 선정

    민세(民世) 안재홍(安在鴻·1891~1965·사진) 선생의 민족 통합 정신과 나라 사랑을 기리는 '민세상(民世賞)' 운영위원회(위원장 강지원 민세안재홍기념사업회장)는 지난달 20일까지 시민사회·학술단체·지방자치단체·대학 등을 대상으로 민세상 후보자를 추천받았다. 민세상 심사위원회(위원장 이세중 환경재단 이사장)는 강지원 위원장과 이세중 이사장, 손봉호 나눔국민운동본부 대표, 양상훈 조선일보 주필(이상 사회통합 부문),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 정윤재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김태익 조선일보 논설위원(이상 학술연구 부문)으로 구성됐다. 심사위원회는 사회통합 부문에 김성수 대한성공회 주교를, 학술연구 부문에 진덕규 이화여대 명예교수를 수상자로 결정했다. 민세는 일제강점기 최대 민족운동 단체인 신간회 총무간사를 지내며 좌우 합작을 주도한 민족운동가로 조선일보 주필·발행인·사장을 지냈다.


    진덕규(79) 이화여대 명예교수의 연구실은 홍대입구역 근처 번화가 빌딩에 있다. "어쩌다 밤 10시에 건물에서 나와 걷다 보면 노인은 저 하나뿐인 것 같습니다. 2003년에 여기 왔을 때만 해도 참 조용했는데…." 빠르게 바뀌어가는 세상의 거리 한복판에서, 백발이 성성한 그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 역사와 정치의 진리에 대해 오래도록 탐구하고 있었다.

    한국 정치학의 대표 연구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그는 '역사정치학적 방법론'을 통해 한국 정치의 발전을 탐구해 왔다. "정치학적 이론을 가지고 역사학에 다가서는 방법론이죠. 역사를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으로 보는 것입니다."

    진덕규 교수는“우리의 민족주의는 역사에서 분열의 요소가 된 적이 많았다”며“남을 배척하지 않고 함께 사는 민족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진덕규 교수는“우리의 민족주의는 역사에서 분열의 요소가 된 적이 많았다”며“남을 배척하지 않고 함께 사는 민족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박상훈 기자
    진 교수가 보기에 한국 근현대사에서 지배 세력과 피지배 세력은 일방적인 억압과 착취의 관계라기보다는, 이탈리아 근현대사와 유사한 후견주의(後見主義·clientalism)적인 속성이 있다. "유력자의 보호에 추종자는 충성과 복종으로 응답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정치인과 지지자 사이에 일부 남아 있는 요소이지요." 그는 지배 세력 간의 대립구도, 정치기구와 정책 결정의 전(前)근대성 역시 한국 정치의 특징이라고 본다.

    진 교수는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평생을 힘썼다. "이제 우리나라도 제도적으로는 상당히 민주주의가 앞서 있다고 해도 될 겁니다. 하지만 정치란 '적(敵)과 아방(我方·우리 편)'의 관계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아직도 많은 사람이 모르고 있습니다. 적을 섬멸하는 것은 정치가 아닌데도 말입니다." 그것이 그가 민세 안재홍 선생을 존경하는 이유 중 하나다. "민세 선생의 '다사리 정신'은 좌우를 아우르고 경쟁 세력도 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훨씬 더 열린 민족주의'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민족주의란 잠잘 때는 미인이지만 깨어나면 야수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나치게 민족주의를 고취하면 타국에 대한 배척과 증오심이 생기기 쉽지요." 민족주의란 문화적인 것을 바탕으로 정치체제와 생활양식을 구축하는 것이 돼야 하며, '우리 의식' '시민국가의 완성' '평화 확립'을 세 가지 원칙으로 세워야 한다고 진 교수는 말했다. "평화는 구걸이나 협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평화적인 존재가 돼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본조차도 감복시킬 수 있는 민족이 돼야 합니다."

    울산 출신으로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한 진 교수는 1969년부터 34년 동안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했다. 100명 넘게 듣는 대형 강의의 수강생 이름을 모두 외워 학생들을 놀라게 했다는 일화에 대해 묻자 허허 웃으며 말했다. "사실은 말이죠… 그거 다 외우느라고 엄청 많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한번 이름을 불러 주면 가슴에 오래 남는다는 것이다. "아, 선생이 별겁니까? 애들 속에서 사는 사람인 거죠!" 그는 스스로 '쉬엄쉬엄 하는 작업'이라고 말하는 대저(大著) '조선후기의 통치체제'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선정 취지] 韓 민주주의 이론적 토대 마련

    진덕규 교수는 대표적인 한국정치 연구자로서 한국 정치 발전사, 민주주의 이론, 한국 지성사 등의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냈다. '한국의 민족주의' 등 저서와 논문으로 한국 민족주의의 과거·현재·미래를 깊이 탐구해 민세 안재홍 선생의 조선학 정신을 계승 발전시켰다. 역사정치학적 방법론에 입각한 한국 정치 발전사 연구에 기여했으며,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이론적 토대를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ㅡ심사위원 신용하·정윤재·김태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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