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 in 골프] 첫우승 지한솔, 멈추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

    입력 : 2017.11.13 16:03

    제공=KLPGA/박준석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란 말이 있다.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는 불교 화엄경의 중심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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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효대사가 중국으로 가던 중 어둠 속에 해골에 고인 물을 시원하게 마시고 얻은 큰 깨달음의 경지. 돌고돌아 결국 모든 건 마음 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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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일 막을 내린 KLPGA 시즌 최종전 ADT캡스 챔피언십에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한 지한솔(21) 프로. 그는 재능 있고 성실한 선수다. 타고난 소질에 노력이 합쳐지니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다. 아마추어 시절 각종 대회를 휩쓸며 승승장구했다. 상비군을 거쳐 국가대표를 지냈다. 지난 2014년 큰 기대와 함께 화려하게 프로 무대에 입문했다. 계약금도 2억2000만 원으로 당해 신인 최고 대우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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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시간이 문제일 뿐 우승도 따논 당상 같았다. 하지만 세상만사, 뜻대로 되지만은 않았다. 루키 시즌이던 2015년 두산 매치플레이 챔피언십 결승에서 전인지(23)에게 신인다운 패기로 맞서며 뒷심을 발휘했으나 단 한 홀 차로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후 지한솔에게 우승은 어느덧 눈 앞에서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는 신기루가 돼버렸다. 지난 해 초반 달랏 챔피언십과 월드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도 우승에 도전했지만 최종 결과는 공동 2위였다.
    2년 간 우승이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서서히 마음에 스며들었다. 슬슬 부담이 됐다. 마치 아홉수에 걸린 선수가 슬럼프를 겪듯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마음의 짐은 올시즌 내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솔직히 이번 시즌이 너무 힘들었어요." 마지막 대회 극적 우승 전까지 만해도 입 밖에 꺼내기 조차 힘들었던 말이었다. "3년차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도 많이 들고, 적잖은 부담이 있었죠."
    최고 대우를 해준 소속팀 호반건설과의 계약이 끝나가는 시점이라 더욱 그랬다. 시종일관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 하던 지한솔은 계약금과 재계약 이야기를 하다 그만 목이 메었다. "계약금 많이 받긴 했죠. 재계약 단계여서 올해… (목이 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 부담이 많았어요."
    또래 다른 선수들이 우승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지한솔은 동갑내기 친구 오지현은 2년 전 지한솔과 같은 ADT캡스 챔피언십에서 첫 우승을 한 뒤 지난해 비씨카드·한경 레이디스컵에서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리며 스타덤에 올랐다. "(오)지현이도 이 대회에서 첫 우승 했잖아요. 저도 내년에는 메이저 우승 해야죠. 똑같이 따라서… 하하" 이런 말을 스스럼 없이 하는건 비로소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다는 방증이다.
    절정의 3년 차 부담감, 성적에도 반영됐다. 우승 전까지 교촌 허니 레이디스 오픈에서 3위가 최고 성적이었다. 이번 대회 전까지만 보면 데뷔 후 가장 좋지 않았던 시즌. "전체적으로 실망을 많이 했어요. 스스로 불만이 많았던 거 같아요, 퍼터가 사정거리 안에 들어와도 넣지를 못했죠."
    죽어라 하고 연습도 해봤다. 하지만 잘 하면 잘 할수록 점점 더 꼬여만 갔다. 그러던 어느날 지한솔은 조급하게 앞으로만 향하던 발걸음을 문득 멈춰 세웠다. 너무 잘 하려는 마음을 툭 던져버렸다. "원래 제가 마음대로 잘 안되면 죽어라 연습하는 스타일인데요. 연습에 너무 몰두하지 않고 영화도 보고 그냥 하고 싶은 것도 하면서 그런 시간들을 보냈던 거 같아요. 마음이 좀 편안해졌죠. 그러다보니 이번 대회부터 좀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부담백배의 골프와 즐기는 골프. 그 차이는 하늘과 땅이었다. 바뀐 마인드가 이번 대회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그는 최종라운드 챔피언조에서 동반 플레이 한 선배 김지현2(26)의 맹추격을 받았다. 급기야 14번 홀에서 역전을 당했다. 그토록 갈망했던 우승이 또 한번 눈 앞에서 날아갈 수 있는 상황. 경쟁 상대는 이미 2차례 우승 경험자였다. 하지만 지한솔은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역전을 당한 직후부터 괴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15,16,17번 3홀 연속 버디. 재역전 우승에 쐐기를 박는 순간이었다.
    "지현 언니랑 시소전을 벌일 때 긴장은 됐는데 제 샷이 괜찮아 자신있게 했던거 같아요. 14번홀에서 한타 뒤지고 난 뒤에 오히려 따라잡는게 마음이 더 편해지더라구요.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기보다는 하루가 더 있다고 생각했어요. 마음이 편했죠. "
    집착을 버리고 마음을 컨트롤 하니 골프가 즐거워졌다. 학수고대 하던 첫 우승도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그런데 지한솔은 어떻게 마지막 대회를 앞두고 마음을 바꿀 수 있게 된걸까? "계기가 있었죠. 그런데 그건 저만 아는 비밀이에요." 궁금했지만 더 이상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지나간 것보다 중요한 것은 다가올 것들, 마음의 조화를 깨달은 지한솔의 내년이 더욱 기대된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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