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평창도 멋지게 치러낼 것이다

  • 이에리사 前 태릉선수촌장

    입력 : 2017.11.14 03:12

    1970년대 한국 모르던 외국인들
    88서울올림픽 이후 웃으며 환대… 2002월드컵선 신명과 화합 발견
    큰 국제대회 치르며 도약한 우리
    30년 만에 맞는 평창올림픽… 기적을 위해 다시 뛰어야 한다

    이에리사 휴먼스포츠 대표·前 태릉선수촌장
    이에리사 휴먼스포츠 대표·前 태릉선수촌장
    얼마 전 평창 동계올림픽 D-100일을 앞두고 평창·강릉으로 친척들과 나들이를 갔다. 직업이 체육인 아니랄까 봐 높이 올라가고 있는 올림픽 건축물들에 눈이 멎었다. 우람한 스키점프대, 거대한 스피드스케이팅장, 마무리 단장이 한창인 개막식장을 보면서 이 땅에서 다시 한 번 올림픽이 열린다는 실감이 났다. 아직 먼지 날리고 공사용 가림막을 쳐 놓은 곳도 있지만, 평창올림픽은 한 걸음씩 착실히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치르는 두 번째 올림픽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나는 여자 탁구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었다. 당대의 수퍼 스타였던 양영자·현정화와 함께 땀 흘리며 훈련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훈련 장소는 서울대학교였다. 올림픽 탁구 경기장이 서울대 캠퍼스 안에 있었기에 일찌감치 '현장 적응'을 하자는 것이 우리 생각이었다. 우리는 승리할 수만 있다면 0.1%라도 그 목표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 올림픽선수촌이 문을 열기 전이었고, 마땅한 숙소를 잡기도 어려워 여관 생활을 했다. 지금 올림픽 국가대표 여자 선수들이 여관에서 숙식한다면 난리가 날 테지만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여관 생활엔 곤란한 점이 많았는데, 룸메이트인 양영자와 현정화는 서로 너무 달랐다. 현정화는 더위를 많이 타서 에어컨을 틀려고 했고, 양영자는 그 반대였다. 입맛도 달라서 현정화는 고기를, 양영자는 생선을 좋아했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탁구대 앞에 서면 두 사람 호흡이 그렇게 척척 맞을 수 없었다.

    당시 프로그램엔 1주일에 두 번씩 장거리 달리기 체력 훈련이 있었다. 달리기 코스는 대학 캠퍼스 안쪽이었다. 양영자와 현정화를 데리고 달리기를 시작하면 학생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가방을 무릎 사이에 끼고 박수를 보내곤 했다. 인기 만점 젊은 여자 선수들을 보고 남학생들이 휘파람이라도 날릴 법한데, 그런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 장면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때 '국민이 우리를 이렇게 응원해 주는구나. 우리가 이렇게 품위 있는 국민이 돼가고 있구나!' 하는 감동과 자부심을 느꼈다.

    [ESSAY] 평창도 멋지게 치러낼 것이다
    /이철원 기자
    개인적으론 1970년대부터 경기 출전을 위해 해외 경험을 했으니, 우리 국민 중에선 비교적 빨리 외국 물을 먹은 셈이다. 당시 외국 사람들은 한국을 몰랐다. 특히 유럽에 가면 보이는 동양인은 죄다 일본인뿐이었다. '코리아'라고 하면 "노스(north) 코리아냐"는 반응이 돌아왔다. 남한이라는 나라 자체를 몰랐다. 우리가 나라 없는 민족도 아닌데, 왜 한국을 모를까. 일본인들은 깃발 달고 관광을 다니는데, 왜 우리나라 관광객은 없을까. 그래서였을까. 우리가 우승이라도 하면 현지 교민들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김밥과 김치를 갖다 주면서 "너희가 잘하니까 우리가 어깨를 편다"며 활짝 웃는 교포들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88서울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 외국 선수단으로부터 많은 축하 인사를 받았다. 그들은 한국이 선보인 새 아파트의 시설에 놀랐고, 실내에 비치한 휴지의 품질에도 감탄했다. 한 달도 안 되는 올림픽을 거치면서 마치 다른 나라, 다른 국민이 된 것 같았다. 도시가 깨끗하게 정돈됐고, 국민 의식도 확연히 성숙해짐을 느꼈다. 외국인을 '구경'하던 우리가 예의 바르면서도 자연스럽게 대하는 매너를 갖게 됐다. 돌이켜보면 서울올림픽을 통해 우리는 한 단계가 아니라 몇 단계를 도약했던 것 같다. 서울올림픽 이후 외국에 나가면 현지인들이 "아, 너희가 한국 사람들이냐"며 우리를 환대해줬다.

    1988년, 우리는 세계에 대한민국을 알렸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 우리는 큰 대회를 멋지게 치러내는 저력을 가진 민족이다.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 때도 우리는 그 사실을 입증했다. 세대와 지역을 넘어선 한국인의 신명과 화합을 발견했다. 우리는 대형 국제대회를 통해 우리 자신도 몰랐던 우리의 진면목을 하나씩 발견해 온 것 같다.

    이제 평창이다. 그런데 주변에서는 잘 치를 수 있겠느냐고 걱정을 많이 한다. 올림픽 열기도 아직은 생각만큼 끓어오르지 않는다. '이렇게 올림픽을 치러도 괜찮을까?' 하는 걱정도 든다. 그러나 우리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민족이다. 이번에도 세계가 주목하는 올림픽을 멋지게 치러내 우리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 대회를 통해 우리 사회의 품격과 역량을 더 높은 단계로 끌어올리는 것이 30년 만에 올림픽을 맞는 우리의 사명이다. 나는 또한 평창이 얼어붙은 남북 관계를 녹여줄 평화의 대회로 치러지기를 소망한다.

    평창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우리 내부 어딘가에 숨어 있는 저력을 끌어내야 할 때다. 남은 80여 일, 또 하나의 기적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뛰어야 한다. 미움도 반목도 의심도 모두 내려놓고 오직 대회 성공을 위해 화합하고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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