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에도, 굳이 학교에서 '손 글씨'를 가르쳐야 하는 이유

  • 이주영 인턴

    입력 : 2017.11.13 16:30

    디지털 시대에는 직접 손으로 글씨 쓰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누구든지 펜보다는 키보드가 더 익숙하다. 그런데도 초등학교에서 계속 ‘손 글씨’를 가르칠 필요가 있을까.
    영국의 BBC 방송은 “여러 나라에서 손 글씨 수업을 없애고 대신 키보드 타이핑과 코딩 수업을 하고 있지만, 많은 전문가는 손으로 펜을 움직이는 운동 제어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뇌의 인지 발달을 돕는다고 말한다”고 11일 보도했다.

    / 게티이미지뱅크


    2012년 온라인에서 작성한 편지를 오프라인으로 배달하는 영국 우편회사 닥메일(Docmail)이 성인 2000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선 3분의2 정도만이 손 글씨로는 쇼핑목록과 같은 매우 간단한 메모만 적는다고 답했다.

    미국 인디애나주도 2011년 학교 필수 과목에서 필기체 수업을 뺐다. 학교 측은 '미래의 고용조건'에 맞춰, 6학년부터 한번 앉으면 최소 3쪽의 타이핑을 해낼 수 있는 '타이핑 기술'을 배우도록 했다. 유럽 핀란드와 인도의 학교들에서도 ‘타이핑'이나 '코딩'수업이 필수과목이 되고, ‘손 글씨’ 수업은 점차 사라진다.

    그러나 아이들이 직접 손으로 글씨를 쓰는 훈련은 키보드 타이핑보다 훨씬 ‘교육적 효과’가 높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2005년 프랑스 엑스 마르세이유 대학교가 3~5세의 아이들에게 타이핑과 손 글씨로 그룹을 나눠 관찰한 결과, 손 글씨쓰기를 한 아이들이 나중에 더 글씨를 잘 알아봤다.

    또 네덜란드 엘제비어의 신경과학 및 교육 동향에 관한 2012년 연구 결과를 보면, 아직 읽고 쓰는 것을 배우지 않았던 5세 아이들에게 손 글씨쓰기와 타이핑을 각각 배우게 하고 아이들의 뇌를 MRI(자기공명영상) 촬영해, 글자를 식별하는 과정을 측정했다.

    그 결과 손 글씨를 배운 아이는 글을 읽을 때 사용하는 뇌가 두드러지게 활성화했다. 타이핑을 한 아이의 뇌에선 이러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연구원들은 글을 쓰는 '신체 활동'이나 '움직임‘자체가 아이의 글 읽기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추론했다. 인디애나대 심리학·뇌과학 담당 카린 제임스 박사는 "(어떠한 동작을 하는) 운동 제어는 인지발달에 중요한 뇌의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노트북으로 필기할 때보다, 종이와 펜으로 상대방의 말을 받아 적을 때에 이해력과 기억력이 높다는 연구 논문도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또 손 글씨로 적으면, 같은 내용을 타이핑했을 때보다 좀 더 오래 기억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2014년 LA 소재 캘리포니아대(UCLA)의 '키보드보다 더 강력한 펜(The Pen Is Mightier Than the Keyboard)'이라는 연구에 따르면, 학생들에게 강의 내용을 각각 노트북과 펜·종이로 받아 적게 하고, 강의 내용과 관련한 사실과 개념 문제를 풀게 했다. 그랬더니 펜·종이로 필기했던 학생들은 노트북으로 필기했던 학생들보다 좀 더 깊은 내용까지 기억해냈다.

    타이핑은 손 글씨 필기보다 빠를 순 있지만, 받아 쓰는 이에 맞게 ‘개인화’한 정보가 아니라 단순한 ‘강의 기록'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UCLA 연구진은 "상대방의 말을 손으로 받아 적으면, 이 과정에서 자신이 쉽게 이해하는 다른 말로 바꾸어 쓰기도 해, 내용이 더욱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게다가 손 글씨 옹호론자들은 한 세대만 손 글씨를 배우지 않으면, 수백 년에 걸쳐 손으로 쓰인 기록물들을 결코 읽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남이 알아보기 힘든 악필(惡筆)인 사람은 시험 채점에서도 ‘불이익’을 받는 경향이 있다고, 2011년 카네기 재단의 연구에서 밝혔다.

    그러나 글자를 정확히 읽거나 쓰지 못하는 난독증(難讀症·dyslexia)을 앓는 학생들에겐 타이핑이 오히려 시험 성적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영국 난독증 협회의 연구도 있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