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통으로 상투를 푼 이순신 장군?

    입력 : 2017.11.13 03:02

    기존 번역에서 오역 5곳 수정… '개정판 교감원문 난중일기' 출간

    충무공 이순신(李舜臣·1545~1598) 장군의 '난중일기' 병신년(1596) 3월 23일 앞부분의 기존 해석은 '오경(새벽 3~5시) 초에 몸이 불편해 (몸종인) 금이를 불러 머리를 긁게 했다'는 것이었다. 몸이 불편한데 왜 머리를 긁은 것일까? 충무공의 친필 초고본을 다시 해독한 결과 기존 번역이 잘못된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이순신 연구가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은 9일 "1935년 조선사편수회가 낸 '난중일기초'에는 '기두(技頭)'라고 돼 있어 '머리를 긁다'나 '빗다'로 해석했지만, 초서로 쓰인 원문을 살펴보니 '머리를 풀다'는 뜻인 '피두(披頭)'로 기록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노 소장은 이 내용을 최근 출간한 '개정판 교감(校勘)원문 난중일기'(여해)에 실었다. '난중일기' 여러 판본을 비교한 뒤 원문을 교정한 책이다.

    '머리를 풀다'라고 기록된 1596년은 충무공이 4년 전 임진왜란 발발 직후 해전에서 연승을 거둔 뒤 전쟁이 일단 소강상태에 접어든 때였다. 하지만 적의 재침에 대비하느라 새벽에 잠 못 이룬 채 상투를 풀고 다시 매야 할 정도로 두통과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는 것이 된다. 이 무렵 충무공은 6일 연속(20~25일)으로 땀을 흘리거나 구토를 했다고 일기에 기록했다.

    노 소장은 이를 포함해 기존 '난중일기' 번역에서 모두 5곳의 오역을 바로잡았다고 밝혔다. 1597년 8월 22일 '곽란(급성 위장병)으로 인사불성이 됐다. 하기(下氣)도 통하지 않았다'는 기록의 '하기'는 '용변'이 아니라 '방귀'이며, 1593년 3월 15일의 '관덕(觀德)'은 정자의 이름이 아니라 '활쏘기 성적을 살핀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또 1593년 웅포해전 당시 전투에 참여한 의병장의 이름이 누락돼 있었는데 '삼도실기'란 책에서 임계영·최경회라고 기록된 것을 찾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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