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매리, 지층의 시간을 들춰내다

      입력 : 2017.11.10 20:26 | 수정 : 2017.11.10 20:27

      수백년된 탯자리의 은행나무의 가지와 뿌리들. 이주외국인이 발굴지에서 그들의 역사를 구술하고 있다.
      월남사터 개인사로부터 시작
      동족간 참화, 이주, 전쟁 등
      인류적 차원까지 주제 넓혀
      19일까지 광주하정웅미술관
      ‘지층의 시간’전 열어
      광주광역시=권경안 기자

      작가 이매리씨의 본적지는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931번지다. 절터에 남은 삼층석탑이 보물 298호인 곳. 월출산 남쪽 자락에 잡았다해서 월남사지(月南寺址)로 불린다. 2012년부터 절터 발굴작업이 계속되었고, 석탑마저 해체되고 있다. 다른 한쪽 석탑이 있었던 곳이 그의 외할아버지가 살던 집터였다. 작가는 광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하지만, 어린 시절 친가와 외가가 모두 월남리 한 마을이었던 연유로 그에게는 이 절터가 특별한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뛰어놀며 듣고 보았던 모든 것들이 그의 예술세계에는 큰 과제로 남았다.

      이 작가는 지금 ‘Poetry Delivery 2017-지층의 시간’전을 열고 있다. 오는 19일가지 계속된다.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미술관(재일교포 예술작품 기증자 하정웅씨를 기리는 뜻에서 상록미술관을 개칭)이다. 과거 지방청와대라 불렸던 이곳은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와 갤러리로 변신했다. 단풍이 물들어 전시회장은 제철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갤러리 앞 잔디밭 한쪽에 서 있는 두 은행나무. 그 앞에 전문발굴자들이 일정한 공간을 발굴, 그 위는 유리로 덮었다. 3개의 지층이 옆으로 드러나 보이고, 그 안에서 출토된 돌들은 한 쪽으로 모아져 있었다.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땅이 우리도 모르는 세월의 두께와 함께 쌓인 시간의 흔적들이라는 점을 시시하는 듯했다. 그는 지층에서 무엇을 끌어내려는 것일까.

      그가 어렸을 때부터 보아왔던 수백년된 월남사터 은행나무가 갤러리에 있었다. 발굴하면서 지표면에 스러진 나뭇가지들을 흘려보낼 수 없었다. 언젠가는 지층속으로 들어가겠지만, 그가 건져낸 나뭇가지와 뿌리들은 전시관의 한 중심에 모아져 있었다. 작가는 발굴터를 보며 “내 기억의 장소는 소멸되어가는 중”이라며 “지층의 기억이 들춰지면서 또 다른 세상이 열리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내 발밑의 땅은 천년 전에 존재했던 삶의 모습과 사람들의 흔적을 기억하고 있었고, 한 겹 한 겹 과거의 흔적을 드러내고 있었다”고 말했다.

      월남사터를 알게 해주는 드론으로 촬영한 갖가지 발굴모습들. 절터에서 발굴된 토기들. 그곳의 지층을 파헤진 발굴조사보사보고서들. 월남사터에서 나온 와편들, 벽면에 붙혀진 발굴보고서는 그가 펼칠 작품들의 현장성을 부각하고 있었다. 개인의 문제를 인류 시원의 차원까지 확장, 중동지역에서 생성한 한 종교로서의 성서(창세기)를 히브리어, 라틴어, 영어로 써내려간 금색글씨, 그리고 같은 크기의 검정색 평면은 탄생과 소멸을 말하는 듯 했다. 인간의 근본문제를 과감히 고민해보겠다는 뜻으로 읽혀졌다. 그의 작품은 작가 개인사로부터 출발하고 있었다.

      작가의 친가 외가는 여순사건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집들이 불타고 사람들도 사라졌다. ‘마을로 간 동족전쟁’의 참담한 결과였다.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은 전국 각지의 마을에서도 폭발했다. 가해와 피해의 악순환이 그 짧은 시기에 펼쳐졌다. 어머니로부터 수없이 전해들었던 집안과 마을의 역사가 성장할수록 그의 어깨를 짓눌렀고, 가슴속에선 ‘어떤 형식으로든지 예술적인 차원에서 풀어헤쳐보고 싶은’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고 했다.

      그의 외조부 묘소는 경기도 연천에 있다. 큰 외삼촌이 마을을 떠나 누대에 걸쳐 살았던 고향을 뒤로 했던 가족사의 이면이 서려있다. 월남사터에서 연천 묘소까지 이어지는, 거꾸로 멀어지는 도로의 뒷모습(거리상 300㎞를 넘는다)은 가족사의 연원으로부터 시작하는 비극적 전개를 암시하듯, 거꾸로된 동영상 렌즈를 통해 보여준다. 이주의 단초가 여기서 제공된다. 그의 관심사가 확장하는 국면이다.

      그 옆 벽면의 미디어(비디오) 아트작품에서는 세계 각국으로부터 한국으로 이주한 노동자들이 그들의 아픈 이주사를 구술하고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들은 각국의 민족시들을 낭송하고 있었다. 작가 개인의 추체험이 외국인들에 대한 동감으로 표출되고 있었다. 그 ‘(외국인)타인들’도 이주의 측면에서 충분히 공감한다는 표시였다. 전쟁과 민족간 핍박, 이산의 아픔을 갖고 있는 외국인들도 자신들의 얘기를 풀어놓는다. 분쟁지역에서 온 아프카니스탄, 파키스탄 등에서 온 이들이 월남사터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작가는 “작업을 통해서 인생을 발굴한 것 같다”고 했다. 2차원 회화작품과 사진, 3차원의 발굴과 설치미술, 영상(미디어 아트)까지 다양한 형식으로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다. 한 작가가 선보이는 다양한 형식을 즐기는 것도 재미다. 고고학과 인류학적인 접근도 신선하다. 드론을 동원, 입체감도 살리고 있다. 개인적 차원의 생애적 문제를 보편적인 인류의 차원까지 끌어올려 보여주는 그의 고민은 얼핏 과도하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시도는 매우 보기드문 사례다. 앞으로 그의 고민과 차원이 훨씬 깊어지고 넓어지리라는 기대감이 일어난다.

      작가는 10대 시절부터 국중효 전 목포대교수의 제자로 화단에서 성장했다. 그는 조선대 미대에서 박사학위를 했고, 다양하고 실험적인 작품들을 꾸준하게 발표하고 있다.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월남사터는 3층석탑과 석비가 남았던 폐사지다. 절터에 남은 석비가 고려시대 신앙결사의 중심이었던 수선사 제2세 진각국사 혜심(1178~1234)을 기록하고 있다. 석탑은 백제시대양식을 계승했고, 절은 고려시대 초기에 세워졌다가, 조선중기 전쟁(임진왜란,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폐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가의 선조는 광주에서 터를 잡았으나, 조선시대 4대 사화(士禍)를 거치면서 강진으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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