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얼굴은 한국인… 생활은 지구인… 내 생각은 프랑스인

    입력 : 2017.11.11 03:01

    [송혜진 기자의 느낌] '행복한 이방인'… 韓佛 친선회장 조아킴 손 포르제 의원

    입양아 출신 프랑스 하원의원의 거울 앞 고백

    생후 3개월 마포에 버려져
    1984년 프랑스 변호사 가정에 입양
    피아노·쿵후·유도·태권도·의학… 하고 싶은 것 맘껏 할수 있는 환경서 자라

    의사·하프시코드 연주자로 성장
    친부모님이 날 사랑하고 아껴서 더 좋은 곳 보내려고 버렸을 거라 생각

    "결점이 장점 만들어… 콤플렉스에 얽매이기엔 인생 짧죠"

    정치는 딱 10년만
    의사로 사는 것 보다 더 많은 사람 돕고 싶어
    마크롱 부탁에 출마 결심

    흠이 많아 높이 도약
    결점 많아 노력 많이 해 그래서 도약 기회 마련

    상처를 낫게 하는 건 사랑
    한국 여성 만나 결혼… 아내 성 따서 손재덕
    가족이란 울타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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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울에 비친 이 남자 모습은 영락없는 한국인이다. 조아킴 손 포르제 프랑스 하원 의원은 “거울 속 내 얼굴을 볼 때면 나의 뿌리인 한국이 떠오르곤 했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프랑스로 입양돼 자란 내 이력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웃음 짓는 얼굴에 그늘이라곤 없었다. / 고운호 기자
    "내가 유독 남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남들이 조금 다르게 볼 거라는 건 잘 안다. 나 스스로 더할 나위 없는 프랑스 사람이라고 느끼지만 욕실 거울엔 동양인 얼굴이 비친다… 우리는 그렇게 종종 과거의 기억과 조우한다. 꼭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이를 통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온전한 정체성을 구축해 나가고 있을 테니까."

    [송혜진 기자의 느낌] '행복한 이방인'… 韓佛 친선회장 조아킴 손 포르제 의원
    마크롱(오른쪽) 대통령과 함께 선 조아킴 손 포르제 프랑스 하원 의원. / 조아킴 손 포르제 제공
    프랑스 하원 의원 조아킴 손 포르제(34)가 2016년 1월 프랑스 한 비정부기구 뉴스레터에 기고한 내용 중 일부다. 포르제는 한국계 프랑스인이다. 1983년 7월 서울 마포 한 골목길에 버려진 그를 경찰이 발견했다. 생후 3개월 된 아기였다. 옷 안에는 '83년 4월 15일'이라고 쓴 쪽지가 들어 있었다. 경찰서에서 하룻밤을 보냈고 다음 날 보육원으로 보내졌다. 아기는 이후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1984년 1월 프랑스 중동부 도시 디종으로 입양됐다. 당시 입양 서류에 적힌 그의 이름은 '김재덕'이었다. 변호사인 아버지와 주부인 어머니는 그에게 조아킴이라는 프랑스 이름을 지어 주었다.

    34년이 흘렀다. 버려졌던 아기는 스위스 로잔대학 신경방사선과 의사이자 하프시코드 연주자로 자라났다. 이름은 그사이 조아킴 손 포르제로 바뀌었다. 2014년 8월 결혼한 한국인 아내 손정수(32) 이름에서 성을 따 붙인 것이다. 한국 이름도 '손재덕'으로 바꿨다. 올해 6월엔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레퓌블리크 앙마르슈(전진하는 공화국)' 소속으로 해외 선거구인 스위스·리히텐슈타인 지역구에 출마, 74.88%의 표를 얻으면서 하원 의원에 당선됐다. 프랑스는 하원 전체 의석수 가운데 11석이 해외 선거구로 배정돼 있다.

    조아킴 손 포르제를 서울에서 만난 건 지난달 말이었다. 한불친선회장 자격으로 한국에 왔다고 했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그는 '일정이 빽빽하니 오전 8시 45분 서울 대학로에서 만나자'고 했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든 아침이었다. 감색 트렌치코트를 입은 포르제는 만나자마자 손을 내밀며 서툰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했다. 서울 동대문 처가에서 오는 길이라고 했다. 인터뷰는 불어와 영어로 진행됐다.

    거울 속의 나, 손재덕

    ―서울이 처음은 아니시겠죠.

    "그럼요. 자주 왔어요. 아내와 장거리 연애할 때 스위스에서 비행기 타고 날아온 적이 있었죠. 그 이후로도 올 기회가 적지 않았고요. 이곳 사람들이 다 저처럼 생겨서 친근합니다. 서울 분들도 저를 친근하게 바라보는 것 같아요. 제가 막상 입을 열면 '앗, 외국인이었네' 하는 표정이 되지만요(웃음)."

    ―영락없는 한국인 얼굴을 지닌 영락없는 파리지앵인 거겠죠.

    "그렇죠. 파리에선 제 얼굴을 보고 사람들이 외국인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가 말을 시작하면 '아, 프랑스 사람이었구나' 하죠. 이곳에선 그 반대인 거고요. 그렇게 양쪽을 왔다 갔다 하다 보면 보통 사람보다 '나는 누굴까'에 대한 생각을 아무래도 더 많이 하게 되죠.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 생각을 꽤 많이 했어요. 이젠 그 답을 찾았지만요."

    ―당신은 그럼 누구인가요.

    "얼굴은 한국인, 생각은 프랑스인, 생활 반경은 지구인이죠. 과학과 수학, 음악과 정치에 관심이 많고, 궁극적으로는 세상 모든 것에 호기심이 넘치는 사람이죠. 무엇보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란 행운아입니다. 레이블(lable)이 제법 길죠. 그래서 남다르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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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2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시리아 난민 돕기 공연을 연 포르제. 하프시코드를 연주했다. / 조아킴 손 포르제 제공
    조아킴의 부모는 세 남매를 모두 외국에서 입양해 키웠다. 세 아이 출신국이 모두 다르다고 했다. 조아킴이 어릴 때는 정규 학교에 보내는 대신 홈스쿨링(가정에서 가르치는 것)을 했다. 학교 교실에 갇혀 지내는 대신 자연에서 맘껏 뛰어놀도록 했다. 조아킴은 새와 풀벌레에 열광했다. 조류학 서적을 쌓아 놓고 탐독했다. 다섯 살엔 누이와 함께 피아노를 쳤다. 누이는 반복 훈련을 통해 연주를 익혀야 하는 피아노 수업에 금방 싫증 냈지만 그는 달랐다. 연주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중학교까지 피아노 연주 전문교육을 받았다. 열 살 무렵엔 무술에 심취했다. 쿵후·유도·태권도에 빠져들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엔 의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피아노도 쿵후도 모두 몸을 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메디컬 스쿨로 옮겼고 그랑제콜(대학)인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는 인지과학을 전공했다. 2008년부터는 스위스 로잔대학 병원에서 신경방사선과 의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갖가지 분야에 관심을 가졌던 건 키워주신 부모님 영향인가요.

    "글쎄요, 그건 아닐 겁니다. 전 열 살 무렵부터 굉장히 독립적으로 자랐거든요. 혼자 궁금한 분야를 찾아냈고 스스로 파고들었죠. 그 덕에 강하고 단단하게 컸다고 자부해요.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는 성격 때문에 남에게 상처를 줄 때도 있었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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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위스 로잔 대학에서 의사로 일하는 포르제(왼쪽). 요즘도 그는 일주일에 하루는 병원에서 일한다. 아내 손정수씨와 딸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던 모습(오른쪽). 포르제는 “이들 이 나의 빈 곳을 채워줬다”고 말한다. / 조아킴 손 포르제 제공

    ―상처를 줬다고요?

    "그럼요. 자립심이 강한 성격이라는 건 그만큼 누군가와 빨리 헤어지고 싶어 한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그건 부모님이 될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어요. 세상 일엔 언제나 양면이 있습니다. 강함과 약함은 늘 함께 붙어 다니죠. 제 인생이 그렇고, 우리 모두의 인생이 또 그렇겠죠(웃음)."

    흠이 많아 도약할 수 있었다

    조아킴이 한국을 처음 방문했던 건 2009년이다. 친부모를 찾고 싶어서였다. 부모가 입양할 때 받았다는 홀트아동복지회 서류를 들고 이곳저곳을 헤맸다. 서류엔 아쉽게도 빈 곳이 너무 많았다. 김재덕이라는 이름을 누가 지은 건지조차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친부모 흔적을 찾지 못하고 스위스로 돌아갔다.

    ―그 이후로는 친부모님을 찾지 않았나요.

    "그럴 여유가 없었어요. 일이 너무 바빴죠. 그 이후로도 종종 그때를 떠올려 봤어요. 이젠 이런 생각을 합니다. '굳이 친부모님을 애타게 찾아 나설 필요가 있을까. 나는 이제 내가 누구인지 선명하게 알고 있지 않은가' 하고요. 누군가가 친부모님을 찾아주신다면 물론 기꺼이 만나겠지만 억지로 제 시간과 에너지를 써가며 찾아 헤맬 필요까진 없는 것 같아요. 그동안 더 열심히 충실히 제 인생을 사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친부모님의 사정이 궁금하지 않나요.

    "어릴 때 버려졌던 이유는 알 수가 없죠. 부모님이 가난했을 수도 있고 또 다른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겠죠. 그래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결국 절 사랑하고 아껴서 지금보다 더 나은 어딘가로 보내주고 싶은 마음에 버렸을 것도 같아요. 복잡한 이야기죠. '사랑받아서 버려졌다'는 얘기니까요. 하지만 전 이제 이해합니다. 덕분에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됐고요. 뿌리에 관심을 갖다 보니 어릴 때부터 아시아 역사와 지리를 열심히 공부했어요. 문학작품도 많이 읽었죠. 그 과정에서 사고가 깊어졌고 사는 세계의 반경이 넓어졌어요. 이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콤플렉스가 없다고요. 무엇보다 그런 것에 얽매이기엔 삶이 참 짧죠."

    '인생은 짧다'는 조아킴에게 좌우명 같은 문장이다. 아내 손정수씨는 "남편은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놀 땐 누구보다 진하게 놀고, 쉴 땐 완벽하게 쉰다. 일할 땐 몰두해서 일하고 가족과 시간을 보낼 때도 최선을 다한다. 그런 그가 때론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런 열정이 나를 반하게 했다"고 했다. 요즘도 조아킴은 틈나면 피아노와 하프시코드를 연습한다. 지난 2월엔 제네바에서 시리아 난민 돕기 공연을 열고 하프시코드를 단독으로 연주했다. 코소보 독립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에도 관심이 많아 알바니아어와 히브리어까지 배웠다. 영어·프랑스어를 비롯해 4개 국어를 할 수 있다.

    ―많은 것을 왕성하게 익히고 배우는 것도 삶을 낭비하기 싫어서인가요.

    "어려서 버려졌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어요. 제약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합니다. 세상 무엇의 방해도 받지 않고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그 무엇에 관심이 많아요. 제가 돈·시간·에너지를 쏟아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을 익히는 것도 그래서죠. 그렇게 익힌 지식은 완벽한 제 것이 되거든요. 그 누구도 뺏어갈 수 없죠. 인간은 누구나 시간의 제약을 받고 살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활동하다 보면 적어도 공간의 제약은 덜 받고 살겠죠."

    ―실패라곤 모르는 삶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럴 리가요." 조아킴은 "실패의 경험을 다 말하려면 너무 오래 걸려서 그렇죠"라면서 "하프시코드와 피아노 얘기를 해보겠다"고 했다. "처음부터 제가 연주를 잘했을 리가 없잖아요. 몇몇 연주자 CD를 반복해서 들으면서 혼자 탄식할 때가 있었어요. '대체 연주 몇 번을 더 망쳐야 저렇게 치게 될까' 하고요. 하지만 듣고 따라 하고 또 듣고 따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제 연주 실력이 늘었죠. 그 연주자들을 그토록 부러워했는데 어느 순간 보니 그들이 제 친구가 돼 있었어요. 사람에게 흠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전 흠이 많아서 노력을 많이 했고 그 덕에 도약도 했죠. 결점 덕에 장점이 생기는 거죠."

    정치는 딱 10년만

    조아킴은 2012년 사회당 당원으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이민자 삶에 관심이 많았다. 이들 정착을 돕는 운동에도 참여하고 다양한 모금 활동을 벌였으나 2년 만에 탈당했다. 정치인 밥그릇 싸움을 보는 것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조아킴은 "그들의 관심은 그저 의원 자리를 유지하는 데만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마크롱 대통령을 처음 만난 건 작년 4월 '21세기 클럽' 행사에서였다. 북아프리카·아시아 출신 젊은이들을 돕는 모임이었다. 또 다른 한국계 입양아 출신인 플뢰르 펠르랭 전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 이 모임의 회장이었다. 조아킴은 당시 경제부 장관 자격으로 모임을 찾은 마크롱 대통령과 금세 친해졌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후 조아킴에게 "나를 도와 스위스 제네바 지역구를 맡아 달라"고 부탁했고 조아킴은 출마를 결심했다.

    ―의사로 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나요.

    "더 많은 사람을 돕고 싶었어요. 제대로 정치한다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길게 할 생각은 없고 딱 10년만 하고 싶어요. 이후엔 뭔가 또 다른 것에 빠져 있겠죠.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요(웃음)."

    최근 그는 공무원 수를 줄이고 임금을 동결하는 마크롱 정부 노동 개혁에도 찬성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진보적 우파인 동시에 사회주의 성향을 지닌 우파(I embody the liberal right, but a social right)"라고 말하기도 했다. 조아킴은 "기회를 모두에게 주는 세상, 더 많은 이가 자유롭게 교류하는 세상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래도 사랑은 상처를 덮는다

    조아킴이 아내 손정수씨를 만난 건 2013년 프랑스 파리에서다. 손씨는 당시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부르고뉴대에서 박사과정까지 마친 상태였다. 둘은 파리에서 딱 사흘간 데이트했다. 손씨 역시 첼로와 피아노, 하프시코드 연주에 능했고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짧고 강렬한 만남이었다. 손씨가 귀국하자 조아킴은 그녀를 보기 위해 휴가를 내고 서울로 날아왔다. 청혼은 영국 런던에서 했다. 관광 명소로 꼽히는 회전 관람차 '런던아이'에 올랐을 때 조아킴이 반지를 내밀었다. 만난 지 6개월밖에 안 됐을 때였다. 조아킴은 "아내와 모든 것이 잘 통한다고 느꼈다. 결혼을 고민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두 살배기 딸이 있다.

    ―연애와 결혼은 그래도 또 다르죠.

    "전혀 다른 사람 둘이 만나 부딪치고 대화하고 이해하는 과정이죠. 전 뼛속까지 프랑스 사람이고 아내는 말 그대로 한국인이고요. 가끔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때도 있지만 또 그래서 같이 사는 게 재밌죠. 아이를 낳고서는 쉽지 않지만 그래도 종종 아내와 집에서 함께 바로크음악을 연주해요. 바로크음악은 워낙 복잡하고 정교해서 악보를 읽는 것도 쉽지가 않죠. 누가 악보를 빨리 읽나 내기합니다(웃음). 보통은 아내가 저보다 악보를 빨리 읽죠. 서로 그렇게 소리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면 대화하는 기분이 들어요. 또 다른 차원의 대화인 거죠." 아내 손씨는 "남편은 모든 면에서 행동가다. 나는 그 보조를 맞춰 함께 뛴다. 연주도 비슷하다. 쉽지 않지만 즐거운 등산과도 비슷하다"고 했다.

    ―누구나 부모는 처음이죠. 아내와 아이를 기르면서 또 많은 생각을 할 것 같은데요.

    "그럼요. 아이를 키운다는 건 시행착오의 연속이죠. 그래도 천천히 나아지고 있어요(웃음). 아내를 만나면서 장모님과 알게 됐고, 한국을 오가면서 많은 친척을 또 만났어요. 이들과 함께 삼겹살·김치·더덕구이도 먹고 이렇게 저렇게 어울리면서 가족이란 울타리가 또한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배우고 있어요. 제 아이에게도 다른 걸 해줄 필요는 없고 그저 그렇게 따뜻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어요. 조건 없이 사랑해주고 가능한 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되는 것 같아요. 뭘 하라고 강요할 필요도 없고 애써 가르칠 필요도 없고, 그거면 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상처를 낫게 하는 건 결국 또 다른 만남인 건가요.

    조아킴은 준비라도 한 것처럼 대답했다. "사랑이죠. 그것 외엔 답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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