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붓 자국에 스민 '인간의 숙명'

  • 서석원 화가

    입력 : 2017.11.10 03:02 | 수정 : 2017.11.10 08:00

    사석원이 본 '테이트名作展'

    서석원 화가
    서석원 화가
    정오 무렵, 전화 소리에 잠을 깼다. 동틀 때쯤 잠이 들었다. 밤에 작업하는 습관으로 늘 새벽녘이 취침 시간이다. 평생 해온 그림이건만 왜 이리 힘이 드는지. 머리가 무겁다. 요 며칠 새로 그린 것들을 모두 지우고 싶다. 그릴 땐 흥분해서 열정적으로 그린 것들인데. 나의 무재주에 오늘도 탄식한다.

    불현듯 소마미술관의 '테이트명작전―누드'가 생각났다. 대가의 명작들이 작업의 실마리를 풀어주지 않았는가. 더군다나 누드다. 누드는 미술대학에 합격한 뒤 예비 미술학도로서 최초로 그렸던 소재다. 그날의 떨림! 나와 동갑인 누드모델의 수줍은 얼굴과 그녀의 하얀 피부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교향곡이나 대하소설의 도입부처럼 첫 번째 전시실은 조용하지만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영국을 중심으로 한 고전주의 작품들이 웅장한 대곡의 서막을 알렸고 이어진 방들에 들어설 때마다 조금씩 호흡이 가빠짐을 느꼈다. 르누아르의 풍만한 육체를 지나자 중동의 정취 물씬 나는 마티스의 누드가 앉아 있었고, 연이어 색채의 마술사 보나르의 욕조 안 나녀(裸女)가 나타났다. 보나르. 나는 유화를 누군가한테 직접 배운 적이 없어 고전의 모사를 통해 기법을 습득했는데 그중 보나르의 작품을 많이도 따라 그렸었다. 모더니즘 계열의 기하학적 누드를 지나자 사실주의와 초현실주의가 나타났다. 점점 대곡의 절정으로 치닫는 느낌이다.

    루치안 프로이트의 '헝겊뭉치 옆에 선 여인'.
    루치안 프로이트의 '헝겊뭉치 옆에 선 여인'. /테이트미술관
    5번 방. 이거였다. 긴 교향곡이 이 지점을 향해 숨 가쁘게 달려온 듯, 긴 대하소설이 이 한 장을 쓰기 위해 지금껏 참아온 듯, 5번 방에 들어서자 클라이맥스의 전율에 걸음이 멈칫했다. 나의 무재주에 탄식하고 평생 한스럽게 맺혀 있던 갈증을 단숨에 날려준 피카소의 '목걸이를 한 여성 누드'. 87세의 대가는 이미 인간의 한계를 지나고 있었다. 신(神)의 영역에서나 볼 수 있는 수준이다. 아! 외마디 탄성이 나온다. 거침없이 그려나간 모든 붓질이 생동하며 꿈틀거렸고, 색채는 야수처럼 빛났으며, 압도하는 형상은 관객을 사로잡았다. 역시 피카소는 신과 겨룰 수 있는 유일한 화가다.

    그러곤 루치안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손자인 그의 사실적 누드 '헝겊뭉치 옆에 선 여인'은 보는 이의 폐부를 아리게 했다. 인간의 삶이 육체의 질감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기름을 뺀 거칠고 메마른 유화의 붓 자국이 인간이 갖고 있는 숙명의 아픔을 보여준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실존적 상황이다. 인간 탐구의 진정성에 새삼 경의를 표했다.

    한참을 명작의 바다에서 노닐다가 근처 시장 주막에서 소 내장국에 소주를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나의 삶, 나의 예술을 반추했다. 예술은 도대체 뭐지? 의문은 꼬리를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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