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자금성의 홍문연(鴻門宴)

    입력 : 2017.11.10 03:16

    중국 고대 한(漢)나라는 북방을 위협하던 흉노를 다루기 위해 '다섯 가지 미끼'를 자주 던졌다. 음식으로 흉노의 '입'을, 음악으로 '귀'를, 곳간을 열어 '배'를, 옷감으로 '눈'을, 황제가 직접 술을 따라 주며 '마음'을 호리는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8일 명·청 황궁이던 자금성(紫禁城) 문을 완전히 걸어 잠가놓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접대했다. 자금성이 단 한 명의 외국 정상을 위한 전용 공간이 된 것은 완공 600여년 만에 처음이다. 자금성에서 청나라 황제 요리인 만한전석(滿漢全席·만주족과 한족 요리 융합)을 만찬 메뉴로 대접했고, 중국 전통 오페라 격인 경극을 들려줬다. 시 주석은 9일에도 베이징 심장부인 톈안먼(天安門)광장을 통째로 비우고 트럼프를 환영하는 의장대 사열을 했다. 이날 2500억달러(약 279조원) 규모의 투자·구매 계약을 선물로 안겼다.

    ▶미국도 정성을 보였다. 트럼프는 자금성에서 시 주석 부부에게 외손녀 아라벨라가 치파오(旗袍·청대 전통 의상)를 입고 중국어로 "시 할아버지, 펑 할머니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동영상을 보여줬다. 시 주석 부인 펑리위안은 "원더풀"을 외쳤다. 1979년 1월 덩샤오핑 방미 때 지미 카터 대통령의 막내딸 에이미 카터가 덩의 애창곡을 중국어로 불렀던 것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당시 미국은 덩이 송아지 고기를 좋아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끼니마다 송아지 고기 요리를 올렸다. 

    [만물상] 자금성의 홍문연(鴻門宴)
    ▶트럼프는 외손녀 동영상과 함께 3척의 항공모함과 핵잠수함도 몰고 왔다. 미 항모 3척이 한반도 주변 서태평양에 동시 출격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일차적으로는 핵으로 폭주하는 북한에 대한 경고지만, 서태평양에 진출하려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있다. 미 상원이 트럼프 방중을 하루 앞둔 7일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대형 은행을 제재할 수 있는 이른바 '웜비어법'을 통과시킨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기원전 206년 초나라 항우와 한나라 유방이 천하 패권을 다투며 만났던 '홍문연(鴻門宴·홍문에서 열린 연회)'에서도 좋은 술과 음식, 값비싼 선물이 등장했다. 그러나 신명 나게 칼춤을 추던 항장(항우 사촌동생)의 칼끝은 끊임없이 유방의 목을 노렸다. 겉으로 화기애애했던 홍문의 연회는 안으로는 살기가 넘쳤다.

    ▶미·중 정상은 지난 4월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겉으로는 최고의 의전(儀典)을 주고받으며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스트롱 맨'들의 가면이 화려할수록 그 뒤의 칼날은 더 날카로운 법이다. 자금성에서 홍문연의 칼빛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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