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우의 팝 컬처] 농부가 지은 노래

    입력 : 2017.11.09 03:12 | 수정 : 2017.11.09 08:59

    스위스 공학박사 조윤석, 음악인 '루시드 폴'로 살며 2년 전부터 제주서 귤 농사
    13평 작은 집에서 노래 녹음
    농부는 '꽃이 온다'고 한다, 부드럽고 강한 노래가 온다

    한현우 주말뉴스부장
    한현우 주말뉴스부장

    마흔두 살 남자 조윤석은 제주에서 노지 감귤을 재배하는 농부다. 300평 작은 밭에 농약도 제초제도 뿌리지 않는 친환경 농법으로 농사를 짓는다. 9년 전 그는 스위스 로잔 공대에서 생명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당시 'RAFT 중합법을 이용한 약물 및 유전자 전달체'라는 것을 발명해 국제 특허를 받았는데, 이 전달체는 쉽게 말해 캡슐로 심장병을 치료할 수 있는 물질이었다. 그로부터 9년 전엔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스웨덴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대학교 1학년이던 1993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동상을 받았고, 2001년부터는 '루시드 폴(Lucid Fall)'이란 이름으로 음악을 발표하고 공연을 해오고 있다. 최근 그는 '모든 삶은, 작고 크다' 라는 제목의 여덟 번째 앨범을 냈다. 이 앨범은 CD 한 장으로 만들어져, 같은 제목의 250쪽 남짓한 에세이집에 부록처럼 붙어 있다. 물론 이 책도 조윤석이 썼다.

    화학도에서 생명공학 박사로, 다시 농부로 전업한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 귤 농사를 지으려고 화학과 생명공학을 13년이나 공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난 2008년 스위스에서 잠깐 만났을 때 그는 박사 후 과정을 밟고 있었다. 계획을 묻자 그는 "뭘 하게 될지 정말 모른다"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음악 하는 사람이에요. 공부는 제가 좋아하고 또 재미있으니까 한 거예요. 제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걸 찾으면, 선택할 수 있는 건 굉장히 많아요." 결국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전업 뮤지션으로 앨범 세 장을 낸 뒤 제주에 정착했고 결혼했다. 그리고 농부가 됐다.

    루시드 폴. /조선일보 DB
    이 사내의 엉뚱하고도 희귀한 행보는, 그의 음악을 듣고 그의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부산 바닷가에서 자란 그는 늘 바다를 동경해 왔고 그것이 제주 정착의 이유가 됐다. "아는 것도 없고 땅도 없고 경험도 없"던 그는 100시간 농업 기술 교육을 받으며 무작정 농사에 뛰어들었다. 그가 처음 한 농사는 창고에 쌓인 양배추를 종이 상자에 담는 일이었다. 또래 농부들과 함께 밭을 빌려 농사를 짓던 그는 2년 전 작은 밭을 구해 자신만의 귤 농사를 시작했다. 그해 말, 조윤석은 7번째 앨범에 귤 1㎏을 곁들여 심야 홈쇼핑에서 팔았다. 9분 만에 1000세트가 모두 팔렸다.

    농사에 대한 그의 심정은 글을 통해 정직하게 전달된다. 그는 "농사를 음악에 비유하자면 인더스트리얼 록 아니면 EDM 같은 음악에 가깝다. 그것도 아주 큰 볼륨으로 틀어놓은 음악"이라고 했다. 인더스트리얼 록은 금속성 사운드가 반복되는 차가운 음악이고, EDM은 전자 사운드로 만든 댄스곡이다.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밭일이 결코 낭만적이고 감성적일 수 없음을 그는 고백한다. 식초에 패화석(貝化石)을 섞은 뒤 숙성시켜 칼슘아세테이트 용액을 만들고 이것으로 액체 비료를 만들어 뿌리는 장면을 읽다 보면, 농사지으려고 박사 학위를 받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한현우의 팝 컬처] 농부가 지은 노래
    /이철원 기자
    조윤석은 자기 밭 한가운데에 작은 2층짜리 목조 건물을 지었다. 이 집을 '오두막'이라고 부르는데, 1층은 4평, 2층은 9평이라고 하니 작위적 겸손은 아닌 듯하다. 제주에 살며 알게 된 목수를 비롯한 여러 친구와 함께 이 집을 지으면서 그는 아마도 새 앨범의 지향점을 떠올린 것 같다.

    "집 안팎을 둘러싼 나무는 레드시더(red cedar)라는 나무다. 손톱에도 흠집이 날 만큼 조직이 부드럽다. 하지만 비바람과 강한 햇살을 이만큼 잘 버텨주는 재료가 없다. 억센 것이 강한 것이 아니듯, 부드러운 것이 약한 것도 아니다. 나무는 부드럽고 강하다."

    그의 음악이 그러하다. 감귤밭 한가운데 오두막 2층에서 녹음한 그의 노래들은 부드럽지만 흐느적거리지 않는다. 흙과 퇴비와 땀으로 덩어리를 이룬 그의 밭처럼, 그의 음악은 꼭 필요한 만큼의 피아노와 기타와 목소리만 들어 있다. 마지막 곡 '밤의 오스티나토'는 풀벌레 소리를 녹음해 오스티나토(같은 악절을 되풀이하는 연주)로 썼는데, 노래 마지막 50초가량은 오로지 벌레 소리만 나온다. 그 단조로운 반복을 듣고 있노라면 이 소박한 뮤지션의 오두막 2층 작업실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농부들은 봄에 "꽃이 핀다"고 하지 않고 "꽃이 온다"고 한다. 봄이 되면 "꽃이 왔어?"라고 묻는단다. 꽃을 대하는 마음씨가 다른 것이다. 생명공학자이자 농부인 조윤석의 새 노래를 들으며 '노래가 온다'고 생각했다. 음악 대하는 마음씨를 달라지게 하는, 그런 노래들이었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