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두살 왕세자가 칼뽑았다

    입력 : 2017.11.06 03:02

    [사우디 빈살만, 하루아침에 사촌형 등 왕자 11명 체포]

    - 사우디 '왕자의 난'
    왕위 계승권 놓고 다툼 벌였던 국가보위부 장관 등 끌어내려
    부패혐의 내세우며 정적 제거

    - '아랍의 워런 버핏'마저도…
    美 타임워너·트위터 주주인 거물 빈탈랄까지 숙청 명단에
    韓·사우디 수교 55주년 기념 지난달 한국 왔던 장관도 체포

    숙청 단행한 32세 사우디 빈살만 왕세자.
    숙청 단행한 32세 사우디 빈살만 왕세자.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세 왕세자 무함마드 빈살만(32)이 4일(현지 시각) 자신과 왕위 계승권 다툼을 했던 압둘라 전 국왕의 아들 무타입 빈압둘라(65) 국가보위부 장관, 왕실 최고 갑부이자 사촌형인 알왈리드 빈탈랄 킹덤홀딩스 대표 등 왕자 11명을 체포했다고 사우디 관영 통신이 보도했다. 또 현직 장관 4명을 포함한 전·현직 장관 수십 명도 체포됐다. 살만 국왕의 칙령을 받아 반(反)부패위원회를 신설하고 긴급 명령을 내린 형식이었지만 자신의 개혁에 반대하는 정적을 선제적으로 제거하기 위한 '무혈 친위 쿠데타'라는 분석이 나온다.

    사우디 국영 방송 알아라비아는 이날 "정부는 2009년 홍수 재해, 2012년 메르스 사태 등 국가 재난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부정하게 재산을 축적한 인사에 대해 조사를 해왔다"면서 "빈살만 왕세자는 반부패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이를 근거로 부패 혐의자에 대한 체포 명령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체포 명단에는 군과 정·관계, 경제계 거물들이 대거 포함됐다. 이날 체포된 인사 중 핵심은 국가보위부를 맡고 있는 무타입 왕자이다. 국가보위부는 왕실 경호를 맡고 있는 군 3대 핵심 조직 중 하나이다.

    서른두살 왕세자가 칼뽑았다
    부패위원회는 정예 부대를 동원해 기습적으로 무타입을 검거했다. 무타입은 자신보다 서른세 살이나 어린 빈살만이 권력을 독차지한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60세 이상의 왕실 기득권층을 끌어모아 빈살만이 최근 발표한 여성 운전 허용 등을 포함한 개혁 정책에 대해 "성급하다"며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군 병력을 움직일 수 있는 무타입을 전격 체포한 것은 그를 중심으로 반발 세력이 뭉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 정부는 이날 무타입을 체포한 직후 사우디 내 모든 공항의 개인 소유 비행기 이륙을 금지했고, 무타입의 남동생인 투르키 전 리야드 주지사와 그의 측근 군간부들도 체포했다.

    빈살만은 또 왕실에서 개인 재산이 가장 많은 사촌형 빈탈랄 왕자도 체포해 왕실의 경제적 주도권을 강화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숙청 명단에 '세계 최대 갑부'이자 친(親)서방인 빈탈랄이 포함돼 국제사회에 더 큰 파장이 일고 있다"고 전했다. 빈탈랄은 미국 유명 미디어그룹인 '뉴스 코프(News Corp)', 미국 케이블 채널 '타임 워너'를 비롯해 시티그룹·트위터·애플 등 글로벌 회사의 주요 주주로 세계 경제계의 거물이다. 공식 재산만 320억달러(약 35조원)에 이른다. 그 밖에 지난달 방한해 한국·사우디 수교 55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던 아델 파키흐(58) 기획경제부 장관, 살리흐 압둘라 카멜 이슬람은행 전체위원회 위원장 겸 제다 상공회의소 회장, 왈리드 알이브라힘 중동 최대 방송사 MBC 설립자 등도 체포됐다.

    빈살만 왕세자가 4일 축출한 왕자 및 고위인사들
    빈탈랄은 최근 서방 언론 인터뷰에서 국영 석유업체 아람코의 기업 공개 준비를 둘러싼 문제점 등을 이야기해 빈살만의 심기를 건드렸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아람코의 기업 공개는 사우디 정부의 핵심 사업 중 하나이다. 그는 또 최근 사우디 정부와 동맹 관계를 강화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해 "그는 미 (여당인) 공화당뿐 아니라 미 국민 모두에게 부끄러움을 주는 인물"이라는 내용의 트위터를 올리기도 했다. 아직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8명의 왕자 가운데는 빈살만의 삼촌이자 빈탈랄의 아버지인 탈랄 빈압둘아지즈가 있다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다.

    빈살만의 이번 조치는 50~60대의 왕자들이 장악한 왕실을 갈아엎어 세대교체를 하려는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최근 "사우디를 온건한 이슬람국가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힌 적이 있다. 이슬람원리주의 성향이 짙은 기성세대로 인해 사우디가 극단주의·반인권 국가 또는 테러 지원 국가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고 보고, 이를 뒤집어 판을 바꾸겠다는 구상이라는 것이다.


    [나라정보]
    사우디 왕세자, 왕위계승 작업 '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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