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맛깔나게 살린 名人의 예술혼… 마이크 사용은 아쉬워

    입력 : 2017.11.06 03:02

    [음악극 '적로']

    대금 명인 박종기·김계선 삶 다뤄

    1941년 초가을 경성의 으슥한 밤, 청계천변 어느 돌다리 위에 서 있던 박종기(안이호)와 김계선(정윤형) 앞에 인력거가 와 선다. 이유도 모른 채 도착한 곳엔 십수 년 전 불현듯 사라져버린 기생 산월(하윤주)이 있다. "여시한테 홀렸는가, 귀신에 씌었는가" 해후에 감격한 세 사람은 술을 주고받으며 "이 몸이 늙었으면 마음조차 늙어야지, 늙지 않는 이 마음이 큰 탈이요, 병이로다"며 노래한다.

    ‘적로’의 한 장면.
    ‘적로’의 한 장면. 박종기와 김계선, 산월은 숨이 멈추면 구멍 뚫린 나뭇조각으로 남는 젓대처럼 허망한 인간사를 떠올리며 불멸의 노래를 부른다. /서울돈화문국악당
    지난 3일 서울돈화문국악당 공연장에서 막 올린 음악극 '적로: 이슬의 노래'는 대금의 명인 박종기(1879~1941)와 이왕직(李王職)아악부의 대금 스타였던 김계선(1891~1943)의 삶을 그렸다. 극작가 배삼식과 작곡가 최우정, 연출가 정영두가 의기투합했으나, 한 포대에 너무 많은 술을 부은 탓일까. 국악과 양악이 뒤섞인 음악은 신선하지만 복잡했고, 잊혀져가는 두 명인의 예술혼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는 후반부로 갈수록 집중도가 떨어졌다.

    가진 거라곤 '젓대(대금) 한 자루와 불알 두 쪽'이 전부인 박종기와 김계선이 찬연했던 전성기를 되짚을 때, 극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잡히지도 않는 소리에 목을 매어 일평생을 부평처럼 떠돌다가 돌아가니(…) 아버지요 아버지요, 나 좀 살려주오"라고 자탄하는 대목에선 풍각쟁이라 멸시당해도 한 자락 불지 않곤 숨 쉴 수 없었던 두 예술가의 열정과 고뇌가 배어난다. 하지만 산월이 출생의 비밀을 밝히며 반전을 드러내는 순간, 이야기는 급격히 느슨해진다. 산월의 기구한 사연에 무게중심이 쏠리면서 손에 잡힐 듯 구체적으로 그려지던 두 명인의 예술세계는 희미해지고 몰입감도 옅어진다.

    신디사이저(황경은)와 대금(박명규), 클라리넷(이승훈), 아쟁(한림), 타악(김준수)이 어우러진 음악은 재즈에 비트박스가 올라타는 듯 참신하게 들렸다. 박종기 역 안이호는 대사와 소리를 맛깔스럽게 소화했다. 하지만 '자연 음향 국악전문 공연장'을 표방하며 지난해 9월 문을 연 서울돈화문국악당(140석)이 첫 브랜드 공연으로 선보이면서 배우들에게 마이크를 씌운 점은 아쉬웠다. 소리 본연의 울림만으로 섬세한 변화와 강약을 제대로 전달한다면 극의 맛이 한결 깊어지지 않을까. 24일까지. (02)3210-7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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