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의 마음읽기] 놀고 나면 더 피곤한 당신을 위한 휴식 레시피

  •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입력 : 2017.11.06 03:12

    문화적 취미 활동의 장점은 자기 중심으로 보던 인생을 타인의 관점으로 보게 하는 것
    술잔 부딪치는 송년회 좋지만 별을 바라보며 시집 펼치고 조각상 감상하는 시간도 갖자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몸과 마음의 컨트롤센터인 뇌도 휴대폰처럼 충전을 위한 쉼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어떻게 쉬세요'란 질문에 쉽게 답변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하는 것엔 많은 시간 투자를 하는 반면, 쉼에 대해선 '일을 안 하면 쉬는 것 아닌가' 정도의 생각이 많은데, 과연 일을 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충전이 일어날까.

    뇌 안에 일하는 공장과 충전하는 공장이 따로 있다고도 한다. 연휴 끝 날, 재충전되었는지 질문하면 시원하게 '그렇다'라 대답하는 사람이 적다. '일하는 날보다 더 피곤하다'란 슬픈 답변까지 나온다. 쉬는 날이어도 뇌 안에 충전 공장이 잘 작동하지 않으면 일하는 날과 다를 것이 없게 된다. 일하는 것도 힘든데 충전을 위해서도 무엇을 또 해주어야 하나 생각하면 피곤하다. 하지만 충전 공장이 잘 작동할 때 긍정 에너지도 차오르고 창조적 사고, 공감 소통 능력도 회복되어 일할 때도 활기를 유지할 수 있다.

    충전 공장이 좋아하는 에너지원 중 하나가 문화와의 만남이다. 문화 콘텐츠에 몰입할 때 인생을 바라보는 시점이 주인공에서 관객으로 바뀌면서 따뜻한 충전이 일어난다고 한다. '내 인생은 왜 이렇게 힘들까'라는 주인공 시점에서 벗어나 '멀리서 관객으로 보니 내 삶에도 긍정적인 것이 많이 있네, 내 인생만 힘든 것도 아니야, 원래 인생은 이런 거였어'라는 소탈한 감성이 주는 긍정 에너지가 차오른다. 일하는 공장은 '올해 성적을 두 배 올리겠어'같이 목표치를 높여야 열심히 달려간다. 반대로 충전 공장은 '파란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 그것으로 행복해'같이 기대치를 낮추어 소탈한 감성을 가질수록 강한 긍정성의 충전이 일어난다.

    /조선일보 DB
    그런데 우리 국민의 여가 활동에 대한 통계청 조사(2013년)를 보면 수동적 휴식이 대부분이고 문화적 취미 활동은 2.7%에 불과하다. 왜 우리는 잘 쉬지 못하고 있을까. 현재 삶이 바쁘다는 이유가 가장 많다. 쉼을 나중으로 미루고 있는 것이다. 마음을 바쁘게 만드는 데에는 불안이란 감정 신호가 큰 영향을 준다. 불안은 미래를 염려하는 신호이다. 미래의 생존이 불안한데 현재의 쉼에 투자할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쉼에 다가가는 데 생존 불안이란 큰 장애물이 존재하는 것이다. 뇌 안에 일하는 공장과 충전 공장이 협력 관계면 좋으련만 경쟁 관계라 한다. 마음이라는 시장에 충전 공장이 진입하려 하면 일하는 공장이 마음에 대한 점유율이 떨어지는 것을 싫어해 불안 신호를 더 증폭시킨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몸과 마음이 지쳐 위험 증상이 나오는 상황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려고 계획을 세워도 잘 안 된다는 호소가 많다. '지금 놀면 넌 이룬 것을 다 잃게 될 거야' 같은 불안의 외침이 마음속에 울려 퍼지기 때문이다. 마음 점유율을 지키려는 일하는 공장의 공격적 마케팅인 셈이다. 그러나 팩트는 '쉼 없는 달리기'가 장래를 더 어둡게 하는 위험이란 점이다.

    송년회 시즌이 다가왔다.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맛난 음식을 먹으며 올해와 작별하는 건배의 술잔들은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된다. 기분 전환은 마음의 에너지를 태워 인공적으로 좋은 기분을 만드는 마음 관리 기술인데 효과가 있지만 과용하면 마음이 더 지치게 된다. 연속되는 송년회 후 느끼는 공허함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말에 흥겨운 송년회와 더불어 잔잔한 문화 데이트 계획도 함께 세워보면 어떨까. 예를 들어 보면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펼쳐 놓고 검은 하늘의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며 올해의 섭섭함을 털어 버리는 것, 현대 조각의 거장 자코메티의 앙상한 남자상이 왜 1000억원대에 팔리나 놀라며, 그것이 혹시 인생 고독의 가치는 아닌지 느껴보는 것, 또는 작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으며 '완벽을 향해 달려가지만 결국은 불완전한' 내 삶을 꼭 안아주는 시간을 갖는 것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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