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손 안의 와인 감별사… 와인 문턱 낮추다

    입력 : 2017.11.03 03:02

    비비노·와인서치… 와인 앱 통해 평점·전세계 가격 비교 후 구매
    보다 많은 사람이 즐기는 술로 변화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청담동 한 와인숍. 프랑스 보르도(Bordeaux) 코너에서 와인 한 병을 집어든 김승현(33)씨가 스마트폰 카메라로 라벨을 찍었다. 두 병, 세 병, 네 병… 촬영을 이어가다가 한 병을 골라 계산대에 올려놨다. "앱(APP)으로 라벨을 찍어 시음평을 검색해봤어요. 와인을 아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앱 덕분에 어디서도 주눅 들진 않아요."

    ◇스마트폰 속 소믈리에

    와인숍 풍경이 달라졌다. 판매원이 주는 정보나 지식에 기대 '추천'받아 구매하지 않는다. 자신의 입맛에 따라 프랑스·이탈리아·미국 같은 생산 국가와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피노 누아(Pinot Noir) 같은 포도종(種)으로 카테고리를 좁힌 뒤 가격대가 괜찮은 와인을 앱에서 '검색'해 구매한다.

    2일 오후 서울 청담동 한 와인숍에서 한 남성이 스마트폰 앱(APP)으로 와인 라벨을 촬영하고 있다.
    2일 오후 서울 청담동 한 와인숍에서 한 남성이 스마트폰 앱(APP)으로 와인 라벨을 촬영하고 있다. 10초 후 앱 사용자들이 이 와인에 대해 남긴 평점과 시음평, 평균 판매가가 나왔다. /박상현 기자
    '비비노' '와인서치' '와인그래프' 같은 와인 앱은 스마트폰 카메라로 라벨을 찍으면 어느 나라, 어느 양조장에서 만든 와인인지 자동으로 분석해준다. 이전에도 와인 앱이 개발됐지만, 최근 앱은 '인식률'이 90% 정도로 높아져 풍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같은 와인을 마셔본 사람들이 남긴 별점과 시음평을 읽어보면 소믈리에(와인 감별사)만큼은 아니더라도 와인의 성격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승윤(33)씨는 "와인숍 판매원이 들려주는 '자두 향이 난다'거나 '장작 타는 냄새가 난다' 같은 막연한 설명보다 사람들이 매긴 별점과 시음평을 보고 구매 의사를 결정하는 편"이라고 했다.

    그동안 와인은 복잡하고 어려운 술로 여겨졌다. 국제포도와인기구(OIV)에 따르면, 2015년 와인 생산량은 325억병(700mL). 전 세계 인구 73억명에게 1인당 5.4병이 돌아가는 양이다. 나라별·지역별·생산자별로 각양각색 와인이 출시되고, 빈티지(생산 연도)나 포도밭 등급 등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라 따로 '공부'하지 않으면 와인에 다가가기 어려웠다.

    ◇집단지성이 만든 '와인 백과사전'

    와인 앱 중 가장 유명한 '비비노(vivino)'는 집단지성으로 만들어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와 그 원리가 같다. 전 세계 앱 사용자들이 자기가 마셔본 와인의 라벨과 구매 가격·시음평을 정리해 올리면, 그 정보가 축적돼 '와인 백과사전'이 만들어진다. 지난 9월 말 기준 '비비노'엔 사용자 2500만명이 1200만종의 와인에 대해 7700만개의 평가를 등록했다. 새로운 평가도 매일 10만건씩 올라온다. 평가가 많은 와인일수록 점수가 '조작'됐을 가능성은 더 낮아진다.

    '바가지' 쓸 염려도 없다. 와인별로 '전 세계 평균 판매가'가 공개되기 때문. 국내에선 판매처에 따라 같은 와인이라도 가격 편차가 크다.

    와인 소재 만화 '신의 물방울'에 나온 와인을 사러 서울 시내 와인숍 몇 곳을 돌아다녔다는 박수진(29·가명)씨는 "같은 와인을 백화점은 15만원, 대형 와인숍은 5만900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며 "백화점에서는 '10만원까지 할인해 드릴 테니 구매하시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했다. 앱으로 검색된 전 세계 평균가는 3만5049원. "소비자를 기만한다는 생각이 들어 불쾌했어요. 앱이 없었다면 싸게 산 줄 알고 좋아했을 거 아녜요."

    관세청에 따르면, 작년 국내 와인 수입액은 1억8432만달러(약 2054억원)로 맥주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2012년 1억4191만달러와 비교해 30%가량 높아진 수치다. '고급문화'로 여겨지던 와인이 젊은 세대가 가볍게 즐기는 술이 된 것도 '와인 앱' 열풍에 한몫했다. 윤석진 문화평론가는 "'똑똑한 소비'를 도와주는 와인 앱 열풍이 이어지면서 '와인 민주화'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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