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편지] 춘천마라톤 완주 20년… 나는 매년 청춘이 된다

  • 강번석 서울 성동구

    입력 : 2017.11.03 03:10

    강번석 서울 성동구
    강번석 서울 성동구
    주로(走路)의 삼악산이 아름다운 건 오색 단풍이 의암호에 발을 담그고 있어서이다. 그 사이를 달리는 형형색색 러닝복은 잘 어울리는 색동의 점묘화이다. 눈을 흐리게 하는 색도, 코를 거북하게 하는 냄새도 없다. 배춧속 노랗게 익는 고소한 내음이 도시에서 찌든 폐를 청소해준다. 신연교를 지나 신매마을로 향하면 삼악산 칡넝쿨이 얼크러진다. 청년이 앞에서 끌고 중년이 뒤에서 밀어주며 역시 얼크러져 하나가 된다.

    춘마를 준비하며 여름내 땀방울이 넘쳐흘렀다. 그을린 구릿빛 종아리에 대비된 시리도록 하얀 발을 보았다. 반타이츠와 양말 사이 무릎 부위는 거무튀튀하다. 폭염 속 자외선, 첨벙첨벙 물 파편, 헉헉대던 숨소리, 모자챙에 매달린 땀방울, 산악 길의 피톤치드, 분칠한 듯한 선크림…. 그 검은 살갗은 내가 게으름을 떨칠 수 있다는 증표가 됐다. 술을 멀리하고, 집중력을 키우고, 나쁜 습관으로 인한 황폐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0월29일 오전 강원도 춘천에서 열린 '2017 조선일보 춘천국제마라톤대회'에서 참가자들이 40km 지점을 달리고 있다. /오종찬 기자
    춘천댐을 향하면 벽을 만난다. 두 다리가 좀 쉬어가자고 유혹한다. 급수대 바닥에 주저앉고 싶지만 정신력으로 버틴다. 언덕길은 더더욱 집중하며 오른다. 팔 흔들기에도 신경 쓴다. 네 번 흔들 때 한 번 힘차게 앞으로 더 뻗으면 팔이 발을 끌어준다. 야생초들이 바람에 쓰러졌다 일어서며 손짓해 반길 때는 후들거리던 두 발에 새 힘이 솟는다.

    내 등에 적힌 문구 '명예의 전당 20회 도전'을 보고 지나치는 주자마다 축하해준다. 그 시각 그 장소를 지나면 돌아오지 않으니 나는 일일이 답한다. "네!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어릴 적엔 보릿고개를 넘었고, 중년인 지금은 춘천댐 언덕을 넘는다. 댐의 맑은 물과 푸른 하늘을 보면 세상만사가 별것 아니다.

    마라톤은 사회적 게임이다. 홀로 달리지만 어느덧 청장년이 어우러지고, 노년에 건강을 증진시켜 의료비 부담이 줄고, 노동력도 왕성해진다. 몸을 잘 보살피면 아름다움과 여유로운 마음까지 덤으로 얻는다. 춘천마라톤 명예의 전당 20회를 달성하며 나는 또 한 번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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