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Review] 역경의 극복인가, 섣부른 자기계발인가

    입력 : 2017.11.03 03:01

    역경의 극복인가, 섣부른 자기계발인가
    페이스북 2인자 셰릴 샌드버그
    남편 하늘나라 보낸 지 2년 만에 경영대학원 교수와 회복·극복기 펴내

    [심층 Review] 역경의 극복인가, 섣부른 자기계발인가

    화제의 탄성(彈性)으로 보나 끈끈한 점성(粘性)으로 보나, 금주의 신간을 꼽으라면 이 책이 될 것 같다.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 셰릴 샌드버그(48)와 세계 최고 경영대학원 중 하나로 꼽히는 와튼 스쿨의 젊은 교수 애덤 그랜트(36)가 함께 쓴 '옵션B'.

    초판 2000부도 겨우 찍는 최근의 국내 출판 현실에서 '옵션 B'는 그 열 배인 2만 부를 찍었다. 이 책의 부제는 '역경에 맞서고, 회복탄력성을 키우며, 삶의 기쁨을 찾는 법'. 주지하다시피 최선을 고를 수 없을 때의 선택이 옵션 B다. 제목이나 저자를 보면 얼핏 수많은 자기계발·경제경영서 중 한 권일 것 같지만, 거창한 서두의 이유가 있다. 페이스북 2인자이자 억만장자인 샌드버그는 2015년 5월 1일, 두 살 위 남편을 잃었다. 예상하고 대비했던 죽음이 아니었다. 운동하러 간 피트니스센터에서 숨진 채 발견된 것. 아이들마저 어렸다. 초등 4학년 아들과 2학년 딸.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파워우먼 중 한 명에서 졸지에 남편 먼저 저세상 보내고 어린 남매와 남은 비운의 싱글맘이 된 것이다.

    따라서 책의 부제는 이제 구체적 윤곽을 드러낸다. 남편 잃은 아내와 아빠 없는 아이들은 어떻게 비애와 상실을 이겨내고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예의 있는 독자라면 샌드버그의 '극복'에 만장일치의 박수를 보내야 옳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분투에 충심의 응원을 보내면서도, 이 책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의 박수가 흔쾌하지만은 않았다. 심리학을 전공한 경영대학원 교수의 안내로 얻은 소위 '승리 선언'을 100% 지지할 수 있을까. 우선 공평을 기하기 위해, 이 책이 지닌 미덕부터.

    [심층 Review] 역경의 극복인가, 섣부른 자기계발인가
    일러스트= 박상훈 기자
    1인칭 고백 서사의 힘.

    샌드버그의 언어는 진솔하고 감동적이다. 이 책이 지닌 힘의 대부분은 남편 데이브가 숨진 후 5개월 만에 무려 10만6338개의 단어를 쏟아냈다는 그의 일기에서 비롯된다. 거의 요즘 책 3권 분량이다.

    "운동기구 옆 바닥에 쓰러져 있는 데이브를 발견했다. 구급차를 타고 병원까지 가는 30분이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자동차들이 사이렌 소리를 듣고도 좀처럼 길을 비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아들과 딸을 옆에 앉혀 놓고 아빠가 하늘나라에 갔다고 말해야 하다니. 아이들의 서러운 울음소리를 듣고 있다가 나도 그만 따라 울었다."

    서점에 넘쳐나는 수많은 힐링 서적에 공감하지 못하는 첫 이유는, 대다수가 생의 무게를 제대로 느낄 수 없는 3인칭 인용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것이 아닌 언어를 자신의 것인 양 포장하는 거짓 위로들. 하지만 샌드버그는 누구보다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자신의 상실을 고백한다. 1인칭 고백 서사의 힘이다.

    친구와 동료에 대해서도 고마움과 섭섭함을 고스란히 털어놓는다. 충심의 위로를 건넨 이도 있었지만, 많은 경우는 자신을 유령처럼 취급하거나 잘못된 인사말을 건네더라는 것. 샌드버그는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지내요'라고 묻는 대신 '오늘은 기분이 어때요'라는 질문이 더 좋았다고. 자신도 사고 이전에는 몰랐다고 했다. 역경에 빠진 이에 대한 최악의 위로가 '괜찮을 거야, 틀림없이!'라는 것을. 그보다는 '앞으로 무슨 일을 겪을지 몰라. 하지만 그 과정을 너 혼자 겪게 하지는 않을 거야. 내가 곁에 있어줄게'가 훨씬 더 나았다는 것.

    그는 경험을 통해 '우정의 백금률'을 제안한다. "네가 대우받고 싶은 대로 타인을 대우하라"가 우리가 알고 있는 황금률이라면, 누군가가 고통을 겪고 있을 때는 "그들이 대우받고 싶어 하는 대로 대접하라"가 옳다는 것. 비탄에 잠긴 사람이 보내는 신호를 감지해 그들을 이해하고 행동으로 반응하라는 경험담이다.

    그는 3P의 늪과 그 극복을 이야기한다. 각각 개인화(Personalization), 침투성(Pervasiveness), 영속성(Permanence)이다. 내가 좀 더 데이브를 일찍 발견했더라면 죽지 않았을 텐데라고 자책하거나(개인화), 일상의 모든 영역에 침투해서 아무 일도 못하거나, 영원히 이 상실이 계속될 거라고 믿는다는 것. 하지만 부검 결과 데이브는 심장부정맥으로 누구도 손쓸 시간 없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확인됐고, '결코'나 '언제나'보다 '때로' '최근에'라는 단어를 쓰면서 그 늪에서 한 걸음 빠져나갔음을 고백한다. "나는 언제나 이 경험이 끔찍하다고 생각할 거예요"보다는 "나는 때로 이 경험이 끔찍하다고 생각할 거예요."

    셰릴 샌드버그 / 애덤 그랜트
    셰릴 샌드버그 / 애덤 그랜트
    실용적 지침서로의 빠른 전환

    고통과 상실을 고백하면서 강력한 몰입과 공감을 이끌어내던 책은 이렇게 중반을 넘어가며 회복과 극복과 기쁨을 이야기한다. 마음을 울리는 회고록에서 실용적인 지침서로 변화하는 순간이자, 고개를 끄덕이게 되면서도 갸웃거리게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와튼 스쿨 최연소 종신교수 기록을 가지고 있는 애덤 그랜트의 개입도 이 대목부터다.

    이제 샌드버그와 그랜트가 가장 좋아하는 명언은 니체가 된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 삶의 동반자를 잃고 슬픔에 빠져 있던 아내는 이제 회복을 넘어 성장과 구원을 이야기한다.

    뉴욕타임스가 '가장 생산성 있는 심리학자'로 명명한 애덤 그랜트는 속도와 효율에 최적화되어 있는 일급 경영대학원 교수로 보인다. 역경을 함께 아파하고 공감하기보다, '회복탄력성'을 더 강조한다. 그랜트의 긍정심리학 치유법을 통해 샌드버그가 강해졌다면 물론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상실 채 2년이 지나지 않아 더 강해졌다는 샌드버그의 승리 선언은 비슷한 처지의 적지 않은 이들을 좌절과 낙담으로 이끌고 있는 듯하다.

    미국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는 '옵션B'에 대한 리뷰가 1000개 가까이 달려 있다. 그 중 가장 많은 지지를 얻고 있는 글은 샌드버그의 회복을 축하한다는 내용이지만, 두 번째로 많은 400여명의 지지를 받고 있는 리뷰의 제목은 '잘못된 충고'다.

    25년 전 남편과 사별한 뒤 슬픔을 달래기 위해 심리학 공부를 시작했고, 결국 심리치료사라는 직업까지 가지게 됐다는 이 글의 필자는 그랜트의 요법을 '잘못된 충고'라고 단언한다. 사랑하던 사람은 그렇게 쉽게 잊히지 않으며, 그랜트의 긍정심리학 전략은 깊숙한 상처에 대한 단순 지혈일 뿐이라는 것. 또 자신의 주변에는 상처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났어도 아직 힘들어하는 여성과 남성이 많으며, 그들은 샌드버그의 '극복 선언'에 열등감을 넘어 모멸까지 느끼고 있다고 말이다.

    '옵션 B' 10장의 제목은 '다시 사랑하고 웃기 위해'다. 샌드버그는 남편 데이브가 세상을 떠난 지 반년이 채 되지 않아 새 연인을 만났음을 조심스레 고백한다. 비탄에 빠진 여성이 새롭게 기쁨과 삶의 의미를 되찾았다는 점에서 물론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초등생 자녀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친아빠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니, 엄마를 따라 함께 회복하고 함께 기뻐해야 착하고 회복 탄력성 강한 자녀가 되는 것일까.  

    샌드버그와 그랜트의 선의를 믿는다. 실제로 역경에 빠졌을 때 도움이 되는 충고와 지침도 이 책에는 적지 않다. 하지만 지옥으로 가는 길은 종종 선의로 가득 차 있다는 서양 속담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옵션 B’의 선의는 적지 않은 낙오자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듯하다.

    감기에 걸리면 온몸에 열이 난다. 힘들지만, 필요한 고통이다. 감기 바이러스가 열에 약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필요한 싸움인 셈이다.

    힘들면 눈물을 흘리라고들 한다. 억지로 눈물을 참으면 상처가 아물지 않고, 기억날 때마다 아프기 때문이다. 역경에 승리했다고 섣불리 선언하기보다, 오랜 기간 함께 아프고 눈물 흘리는 일이 더 필요할 수도 있다. 회복과 구원 역시 그렇지 않을까.

    ** 셰릴 샌드버그
    1969년 미국 워싱턴 D.C.출생
    하버드대 경제학과,
    경영대학원 졸업
    페이스북 최고 운영 책임자
    저서 ‘린인(Lean In)’

    ** 애덤 그랜트
    1981년 미국 미시건주 출생
    하버드대 심리학과 졸업
    와튼 스쿨 최연소 종신 교수
    저서 ‘오리지널스’,
    ‘기브 앤 테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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