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는 언어 난투극 현장… '직관'에서 '이성'으로 돌아가라

    입력 : 2017.11.03 03:01

    '혁명을 팝니다' 공저자, 히스 토론토대 교수
    "정보 넘쳐나는 현대 이성보다 직관에 의존"

    트위터·유튜브에 시선 빼앗기면 합리적 사고 어려워

    계몽주의 2.0
    계몽주의 2.0 | 조지프 히스 지음 | 김승진 옮김|이마 | 512쪽|2만2000원'

    계몽주의 2.0'이라는 제목을 보고 딱딱한 철학책을 예상했다면 놀랄 것이다. 책을 쓴 조지프 히스(50) 토론토대 철학과 교수는 체 게바라 같은 혁명의 상징이 사실은 소비 자본주의를 추진한 동력이었음을 지적했던 '혁명을 팝니다'(마티 刊)의 공동 저자. 위르겐 하버마스의 제자지만 심리학 인지과학 언어학 등을 통해 주장을 펼친다. 사변적인 사고실험보다 미국 현실 정치에서 사례를 끄집어낸다. 그리고 직관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되는 이 정보 과잉의 시대에 다시 이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히스는 요즘 인간은 더 이상 '사피엔스'처럼 행동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이름에 걸맞으려면, 우리는 속도가 인류를 멸종 위기로 몰아가기 전에 우리 자신에게서 속도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지적하는 '속도'는 감(感), 시쳇말로는 '촉'이라고도 부르는 직관적 사고방식이다. 이 직관은 합리적 사고가 필요한 시점에 불쑥 끼어들어 오판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계몽주의 2.0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는 즉각적이고 지속적인 관심을 갖게 만든다. 정보가 넘쳐날 때 인간은 직관에 의존한다. 저자는 직관의 시대인 지금이야말로 이성의 가치를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1초에 뇌가 받아들이는 정보는 1만1000비트인데 의식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정보는 40비트뿐이라는 심리학 연구 결과를 인용한다. 이성이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은 극히 제한돼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 처리해야 할 정보는 폭증하고 있다.

    그는 직관이 과잉 개입하는 예로 정치인의 비논리적 발언에 열광하는 유권자를 꼽는다. 공화당 후보가 "오바마는 사회주의자다" "그는 월스트리트 친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서민을 공격한다"라는 말을 한다. 두 문장은 모순이다. 사회주의자가 월스트리트에 자본가 친구들이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공화당 지지자들은 이 말에 환호했다. '사회주의자'라는 말만 들어도 직관적으로 '나쁜 것'이라고 판단하고 역시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는 '월스트리트 자본가의 친구'라는 말에 오바마에 대한 비호감이 강화된다는 것이다.

    이는 광고 영역에서도 마찬가지. 직관이 더 먹힌다는 사실을 파악한 광고주들은 문장 수를 점차 줄여나갔다. 20세기 초반 커피 광고는 빽빽한 줄글이었지만 1970년대에는 캐치 프레이즈 한 줄로 줄었다. '커피 브레이크를 가지세요'. 장단점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보다는 '브레이크(휴식)'라는 단어가 더 먹힌다는 것.

    인간의 직관 선호를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전략이 사회 전방위적으로 펼쳐지면서 상황은 악화됐다. 저자는 "정치가 비정상적인 것과 정상적인 것으로 양분되었고 비정상적인 것이 우위를 차지했다"고 지적한다. 이념이나 철학, 이성적 토론이 아니라 유권자의 감정에 호소하면 되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로 인간의 직관적 사고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정치는 우파와 좌파라는 이념적 지형으로 더 이상 갈리지 않는다. 저자는 이러한 정치 문화를 합리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개인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환경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18세기 계몽주의는 이성이 온전히 개인에게 속한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반대로 이성적이기 위해서는 사회적 환경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영상보다는 문자인 트위터가, 트위터보다는 숙고가 가능한 블로그가 더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는 것이다.

    2014년 이 책이 캐나다에서 나온 뒤에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됐다. 트럼프는 수시로 트위터를 통해 자기 의견을 개진했다. "미국인들은 트럼프의 다음 트윗을 궁금해하느라 정작 중요한 일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그는 "트위터에서의 공방은 언어로 이뤄지는 난투극"이라며 "기술 발전으로 동영상이 더 보편적으로 쓰이면서 상황은 앞으로 더 악화될 것"이라고 했다. 어떤 일에 집중하고 숙고할 수 있는 길이 갈수록 막혀나간다는 것이다.

    히스는 인간이 이성보다는 직관을 선호한다는 증거를 여러 근거를 들어 보여준다. 그러나 대안으로 내세우는 '슬로 폴리틱스'와 '계몽주의 2.0'은 공허한 느낌을 준다. 카카오톡 메시지가 쏟아지고, 하루에 마주치는 광고가 500개 넘는 시선 분산의 시대. 인간에게 사고의 브레이크를 밟으라는 말은 고기 뷔페에서 채식주의를 고수하는 것만큼이나 힘들어 보인다.

    저자는 이런 비판을 예견한다. 그리고 이성에 기반한 '계몽주의 2.0'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아무도 지식인의 말을 듣지 않는 시대에 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인가? 아시모프의 답은 그냥 사회가 무너지게 두고 그다음에 수천 년쯤 들여 사회를 다시 짓는 것이다. 운이 좋다면, 우리는 그보다 조금 더 나은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예전과는 다른 전술로 계몽주의를 한 번 더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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