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아픔 녹여… 대전차방호시설이 문화공간으로

    입력 : 2017.10.31 03:03

    [서울 도봉구 흉물의 변신 '평화문화진지' 오늘 개관]

    1969년 길이 250m, 3층 높이… 유사시 폭파… 北탱크 진입 차단
    한때 시민아파트로도 사용

    공방·전시실·세미나실 등 마련
    벙커는 군사시설 그대로 두기로

    1968년 1월 북한 무장공비들이 서울로 침투했다. 북한 특수부대인 124군 소속 침투조 31명이었다. 수류탄과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이들 중 28명이 우리 군경합동수색진의 합동 소탕작전 끝에 사살됐다. 2명은 도주했다. 유일한 생포자였던 김신조씨가 "박정희 멱 따러 왔다"는 말을 남겨 유명해진 사건이다. 사건 후 대북 경계가 강화됐다. 이듬해인 1969년 서울 북쪽 경계인 도봉구 도봉동 6-5 일대에 대전차방호시설이 들어섰다. 5480㎡ 땅에 길이 250m, 3개 층으로 아파트처럼 지었다. 유사시 건물을 폭파해 북한군 탱크가 서울 도심으로 내려오는 길을 차단하려는 목적이었다.

    서울시는 1972년 이 건물의 아파트 부분만 인수해 도봉시민아파트로 만들었다. 5층으로 올려 1층은 벙커로, 2~4층은 아파트로 썼다. 한때 180가구가 살았다. 2004년 건물이 노후해져 2~4층의 아파트는 철거됐다. 이후 10년 넘게 1층 군사시설만 덩그러니 흉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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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9년 북한군의 통행을 막기 위해 설치된 도봉구 대전차방호시설은 2004년 1층만 남긴 채 철거됐다(왼쪽 위). 서울시와 도봉구는 이 시설 일부를 전시 공간으로 꾸며‘평화’와 관련한 시민작품을 선보인다. 전시실과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공방, 교육·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다목적 전시실, 시민 편의공간으로 새롭게 꾸며진‘평화문화진지’는 31일 시민에 공개된다. /오종찬 기자·서울시
    서울 북쪽의 대표적 흉물이었던 이 대전차방호시설이 공방과 전시실을 갖춘 문화 공간으로 새롭게 탄생한다. 지난해 12월 착공해 1년 가까운 공사를 마치고 31일 개관한다. 시가 마포구 석유비축기지에 이어 두 번째로 선보이는 재생형 문화공간이다. 분단의 아픔을 딛고 통일로 가자는 뜻에서 이곳에 '평화문화진지'라는 이름을 붙였다.

    평화진지는 도봉구에 문화를 입히려는 도봉구의 노력에서 시작됐다. 구는 2013년 9월부터 대전차방호시설 재생에 대한 공감과 아이디어를 모으기 위해 주민설명회를 열었다. 40회의 설명회 끝에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안이 나왔다. 서울시는 지난해 이곳을 '2016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했고, 국방부 동의를 받아 지난해 12월 공사에 들어갔다.

    평화진지는 연면적 1902㎡(576평)로, 1층짜리 건물 5개 동이 나란히 붙어 있는 구조다. 각각 시민동, 창작동, 문화동, 예술동, 평화동으로 불린다. 주로 예술가와 주민을 위한 공방과 전시공간으로 활용된다. 차세대 예술가를 위한 스튜디오, 복도형 전시실, 세미나실이 마련된다. 연극, 무용, 건축 등 다양한 분야 예술가들이 창작 활동을 하게 된다. 벙커는 군사시설로 존치된다. 건물 곳곳에는 아직도 포 사격이 언제든 가능하도록 구멍이 뚫려 있었다.

    공사 중에도 우여곡절이 있었다. 올해 초 공사 중 건물 2동과 3동 사이에 땅굴이 발견됐다. 지도에도 없던 지하통로였다. 시는 이를 시민에게 개방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고 잠정 중단했던 공사를 재개했다. 땅굴 위에는 평화광장을 만들고, 국방부에서 대여한 전차(47t) 1대와 장갑차(8.4t) 1대를 놓았다. 분단의 아픔을 잊지 말자는 취지에서 교육용으로 전시한다. 평화 진지 동쪽 끝에는 높이 20m 전망대가 연말 쯤 문을 연다.

    개관을 맞아 대전차방호시설의 역사를 돌아보는 기획전 '아파트 1탄'이 열린다. 평화진지의 전시실 및 커뮤티니공간은 매주 화~일요일 오전 10시~오후 7시 문을 연다. 입주 작가 공방과 휴게 공간은 연중무휴 24시간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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