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퍼싱 원칙

    입력 : 2017.10.31 03:16

    존 조지프 퍼싱(1860~1948)은 미국 최초의 6성 장군, 즉 대원수가 된 기록을 갖고 있다. 퍼싱은 800여명의 선배들을 제치고 대위에서 준장으로 세 계급이나 건너뛰어 진급한 진기록도 남겼다. 1차 대전 때는 유럽 원정 미군 사령관으로 활약했다. 마셜, 맥아더, 아이젠하워, 패튼 등 2차 대전 때의 기라성 같은 장군들이 그 밑에서 부관 혹은 참모로 컸다. 미군은 M26 중전차, 지대지(地對地)미사일 등 각종 신무기에도 그의 이름을 붙여 업적을 기렸다.

    ▶퍼싱 장군은 미군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인물로도 유명하다. 1차 대전 때 미군은 뒤늦게 참전했다. 병력도 영국·프랑스에 작은 규모였다. 영·불 연합군은 미군을 자기들 예하에 두고 지원 병력 정도로나 쓰려고 했다. 그러나 퍼싱은 "미군은 건국 이래 타국 군의 지휘를 받아본 적이 없다"며 이를 거부했다. 미군이 다른 나라 지휘를 받지 않고 독자적인 지휘권을 행사하려는 전통, 이를 '퍼싱 원칙'이라고 한다. 

    [만물상] 퍼싱 원칙
    ▶2차 대전 때 유럽 연합군 최고사령관은 미국의 아이젠하워였다. 영국의 명장 몽고메리는 "미국인들이 영국인들보다 열등한데 어떻게 내가 미군 지휘를 받아야 하는가"라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이런 반발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미군은 유럽군에 대한 지휘권을 유지했다. 미군은 전후(戰後)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체제에서도 나토군 최고사령관 지위를 유럽에 넘겨주지 않고 있다.

    ▶2014년 10월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퍼싱 원칙'이 깨지는 것 같은 이변이 일어났다. 전작권이 한국군에 넘겨진 뒤 한미연합사를 대체해 신설될 미래사령부(현 미래연합군사령부) 사령관을 한국군 대장이, 부사령관을 미군 대장이 맡기로 한·미 간에 합의한 것이다. 여기엔 한국군에 매우 우호적이었던 제임스 서먼 주한 미군 사령관의 역할이 컸다. 그러나 전작권 전환이 사실상 무기 연기돼 미래사령부가 먼 미래 일이 됐기 때문 아니냐는 뒷얘기가 있었다.

    ▶엊그제 열린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미래연합군사령부 창설안 합의가 불발돼 그 배경이 궁금증을 낳고 있다. 국방부는 미군 대장이 한국군 대장 밑에 들어가는 계획에 미국 측이 반대 의사를 나타낸 적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퍼싱 원칙을 고수해온 미군의 오랜 전통을 살펴보면 이런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현 정부의 계획대로 전작권을 가급적 빨리 가져오려면 미군의 역사를 살피고, 우리 군이 미군을 제대로 지휘하고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는가부터 냉정히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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