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효과… 말괄량이 여중생들이 달라졌어요

    입력 : 2017.10.30 03:34

    [71회 춘천마라톤]

    여주여중 마라톤 동호회 28명… 10㎞ 전원 완주
    성격 밝아지고 체력 좋아져… 우애도 다지고 성적까지 올라

    29일 조선일보 춘천국제마라톤(조선일보·춘천시·스포츠조선·대한육상연맹 공동 주최) 10㎞ 코스 반환점 근처. 여주여중 1학년 김은서(13)양의 다리에 쥐가 났다. 이날은 김양의 '생애 첫 마라톤' 출전이었다. 통증이 심해 '이대로 포기할까' 생각이 들었다. 다리를 쩔뚝이는 김양 옆에 동갑내기 친구 염수빈·최여진양이 다가왔다. 그리고 어깨를 부축했다. 김양은 "아파서 포기하고 싶었지만 친구들 덕분에 끝까지 뛸 수 있었다"고 했다. 이 3명은 나란히 결승선을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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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풍에 젖고 풍경에 취해 심장도 붉게 쿵쾅거렸다" 춘천마라톤, 5만명의 축제로 - 조선일보 춘천국제마라톤대회(조선일보·춘천시·스포츠조선·대한육상연맹 공동 주최)에 출전한 마라토너 2만4200명이 단풍으로 물든 의암호 주변을 힘차게 달렸다. 29일 강원도 춘천 의암호 순환 코스에서는 참가자를 포함해 가족, 자원봉사자 등 5만여 명이 만추(晩秋)의 전경을 즐겼다. 케냐의 루카 로코베 칸다(34)가 2시간06분15초의 대회 신기록으로 2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오종찬 기자

    '사람은 남자와 여자, 그리고 중학생으로 분류된다'는 말이 있다. 질풍노도의 시기 딱 중간을 겪는 중학생들은 그만큼 튀는 존재다. 일주일에 서너 번씩 부모님과 티격태격 다투기도 하고 선생님의 말도 흘려듣기 일쑤다. 오죽하면 '중2병(病)'이란 말이 있을 정도다.

    이날 춘천마라톤에 단체로 참가한 여주여중 학생 1~3학년 28명 '여중의 전설' 팀도 지난해까진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중학생 병'을 앓는 학생들이었다. 그러나 1년 만에 다른 아이들이 됐다. 주말이면 가족들과 함께 등산 가고, 선생님 말 한마디가 척척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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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마라톤은 단풍을 즐기고 강바람을 만끽하는 아름다운 코스로 정평이 나 있다. 강철 다리를 가진 마라토너들이 29일 춘천마라톤 코스인 의암댐 주변 신연교를 건너는 모습. /이태경 기자

    변화의 시작은 '마라톤'이었다. 이날 오전 10시 출발을 앞두고 춘천 공지천 옆 공원에서 만난 아이들은 연예인 이야기 대신 마라톤 이야기에 한창이었다. 서로 10㎞ 최고 기록을 묻거나, 달리기 호흡법 비결을 공유했다. 한 달여 훈련을 성실히 마친 박한솔(15)양은 "친구들끼리 워너원(아이돌 그룹) 이야기를 하는 것만큼 '어떻게 하면 더 잘 달릴 수 있을지' 이야기를 나누는 게 즐겁다"고 했다. 출발선에 선 뒤에도 수다에 여념이 없던 아이들은 신호와 함께 2~3명씩 짝을 지어 주로를 달려 나갔다. 여중생들은 2시간 안팎의 기록으로 28명 전원 완주했다.

    사람들은 '여중생들도 마라톤을 하느냐'며 쳐다본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 조사에 따르면, 1주에 한 번도 운동을 하지 않는 10대 여학생은 2명 중 1명(45.1%) 수준이었다. 동갑내기 남학생의 운동 비(非)참여율(29.3%)보다 훨씬 높았다. 국내 여중생의 평균 비만율은 최근 10년 새 8.7%에서 13.8%로 늘었다.

    여주여중에선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이 학교 채용기(46) 체육 교사는 "전교생 578명 모두가 마라톤·축구·탁구 등 교내 20개 체육 동아리에 가입해 방과후 체육 활동을 하고 있다"며 "어떤 학생은 살을 빼고 싶어서, 또 다른 학생은 친구의 권유로 마라톤에 도전하고 싶어했다. 마라톤 동아리를 새로 만들고 한 달간 강훈련을 해서 춘천에 왔다"고 말했다.

    중학생 대부분이 과중한 학업에 시달리며 운동을 전혀 하지 않고, 혼자 스마트폰에 빠져 있거나 친구들끼리도 그저 연예인 이야기만 한다. 하지만 마라톤으로 변화를 만들었다. 여주여중 학생들로 이뤄진 ‘여중의 전설’팀 28명이 춘천마라톤 10㎞를 모두 완주하는 가을 동화를 썼다.
    중학생 대부분이 과중한 학업에 시달리며 운동을 전혀 하지 않고, 혼자 스마트폰에 빠져 있거나 친구들끼리도 그저 연예인 이야기만 한다. 하지만 마라톤으로 변화를 만들었다. 여주여중 학생들로 이뤄진 ‘여중의 전설’팀 28명이 춘천마라톤 10㎞를 모두 완주하는 가을 동화를 썼다. /김연정 객원기자

    '마라톤 효과'는 탁월했다. 아이들의 성격이 밝아졌다. 주말만 되면 방안에 틀어박혀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던 아이들이 요즘은 제 발로 부모님을 찾아가 "등산 가자" "공원 가서 달리기하자"고 조르게 됐다. 체력과 집중력이 좋아지면서 성적이 올랐다는 학생들도 많다. 완주 후 메달과 함께 셀카를 찍는 데 여념이 없던 박은영(13)양은 "예전엔 수학 시험을 보면 계산 실수가 잦았는데, 요샌 집중력이 올라가서 실수가 많이 줄었다"고 했다. 33명 중 10등 정도였던 박양의 성적은, 최근 5등까지 올랐다고 한다.

    운동이 성적 향상에 도움 된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대(UCLA)가 2000여 명의 초·중·고등학생을 조사한 결과, '체력장 달리기'(1.6㎞) 종목을 정해진 시간 내에 완수한 학생들은 시간을 넘겨서 통과한 학생들보다 캘리포니아주 학력고사(CAT6) 점수가 확연히 높았다. 결승점까지 걸리는 시간이 1분씩 늘어날수록 성적은 1점 이상 떨어졌다.

    '여중의 전설' 팀은 내년에도 춘천을 찾을 예정이다. 홍채원(13)양이 땀 범벅을 한 얼굴로 씩 웃으며 한마디 했다. "요즘은 운동하는 게 더 멋진 여자가 되는 비법이래요. 내년에도 꼭 춘천마라톤에 참가할 거예요."

    ※춘천 시민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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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마라톤, 5만명이 쓴 '가을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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