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되어 다리가 되어…

    입력 : 2017.10.30 03:30

    [71회 춘천마라톤] 시각장애인·가이드러너, 풀코스 아름다운 동행

    장애인 배테랑 마라토너 김상용씨와 김씨의 눈을 대신해 함께 달리는 가이드러너 김은경씨가 완주를 다짐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장애인 배테랑 마라토너 김상용씨와 김씨의 눈을 대신해 함께 달리는 가이드러너 김은경씨가 완주를 다짐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4시간 10분 25초. 29일 춘천마라톤 결승점을 통과한 김상용(55·사진 왼쪽)씨와 김은경(여·42)씨의 기록계에 같은 숫자가 찍혔다. 은경씨는 기록을 확인하더니 "(김상용) 선생님 덕분에 제 풀코스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며 활짝 웃었다. 두 사람의 손목에는 시각장애인과 가이드 러너를 이어주는 초록색 줄이 묶여 있었다.

    가이드 러너는 시각장애인의 눈이 되어 달리기를 돕는 인물이다. 하지만 은경씨는 "실제 도움을 받는 건 오히려 내 쪽"이라고 했다. 은경씨가 풀코스를 뛴 건 재작년 춘천마라톤이 처음이었다. 첫해 기록은 5시간 32분. 반면 상용씨는 지난 10여 년간 200회 이상 마라톤에 출전한 베테랑이다. 최고 기록도 풀코스 기준 3시간 50분으로 은경씨보다 빠르다. 은경씨는 "명목상 제가 (시각장애인을 돕는) 가이드 러너지만 사실은 선생님이 제 (기록 향상을 돕는) 페이스 메이커인 셈"이라고 했다. 실제 은경씨의 10㎞·하프·풀코스 최고 기록이 모두 가이드 러너를 하며 나왔다고 한다.

    이날 달리는 내내 두 사람 사이에서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마라톤 동호회에 혜성같이 나타난 신입회원 이야기부터, '늦춘기'가 온 서로의 자녀 이야기도 나눴다. 은경씨가 "배추밭을 지나고 있다"고 상용씨에게 알리면 화제는 자연스럽게 겨울철 김장으로 흘러갔다. 지루할 틈이 없었다. 두 사람의 이번 마라톤 목표는 원래 4시간이었다. 상용씨는 "막판에 내 다리에 쥐가 나면서 조금 늦어졌다"며 "다음번에 꼭 김은경씨와 4시간 안에 들어오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은경씨는 "가이드 러너가 시각장애인을 도와준다기보다는 서로 도움을 주며 함께 뛰는 것"이라며 "선생님과 함께해 달리기가 더욱 즐거워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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