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세상에 사연없는 민족은 없다

카탈루냐의 독립을 두고 스페인은 한창 시끄러웠다.
미얀마에서는 소수민족 로힝야족에 대한 인권 탄압이 국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 곳곳에는 나라 없는 설움을 겪는 세계 소수민족들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 구성=뉴스큐레이션팀 권혜련

    입력 : 2017.11.17 00:00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어딘가에서 전쟁은 일어나고 있다. 국제사회는 양차 대전 후 인류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벌이고 있지만, 세계 곳곳에서는 여전히 작은 분쟁과 국지전들은 빈번하다. 이 갈등의 배경을 추적해보면 핵심 키워드는 '종교'와 '민족'이다. 20세기 초, 세계는 강대국들 힘의 논리에 의해 여러 국가와 민족들이 쪼개지거나 붙여지면서 혼란의 시기를 거쳤다. 소수민족의 세기를 넘어선 피흘리는 투쟁은 여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은 소수민족 로힝야

    그들은 어떻게 미얀마에?

    현재 소수민족 문제가 가장 심각한 곳은 미얀마이다. 미얀마에는 현재 130여개의 소수민족이 살고 있는데, 이 중 로힝야족을 대한 미얀마 정부의 탄압과 박해가 국제적인 문제로 번지고 있다. 로힝야족은 원래 방글라데시 등 벵골만 주변에 살던 민족으로 대부분이 이슬람교도이다. 로힝야족에 따르면 이들은 9세기 경 미얀마에 정착한 아랍 상인의 후손이며, 오랫동안 미얀마에 살아왔다. 전체 250만명의 로힝야족 중  현재 130만명이 미얀마에 살고 있으며 이들은 불교 국가인 미얀마에서 이슬람을 믿는 유일한 민족이다.

    그러나 미얀마인들에게 이들은 19세기 무렵 영국 식민지 하에서 대거 미얀마로 이주한 무슬림일 뿐이다. 실제로 9세기 무렵부터 미얀마에 살아온 로힝야족들도 존재하겠으나 불교 국가인 미얀마에 무슬림이 늘어난 것은 식민지 미얀마의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영국이 주변의 인도 무슬림들을 대거 이주시키면서부터다. 이들은 미얀마 내에서 영국의 하수인 노릇을 하며 중간 지배층으로 군림해왔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미얀마인들의 어려운 경제사정을 이용해 고리대금업을 하고, 토지를 수탈했다. 종교적 이질감이 강했던 무슬림에 대한 미얀마인들의 적대감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더욱 커졌다.

    무엇이 문제인가

    (좌) 지난 9월 2일(현지시각)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 인근 지역으로 탈출한 미얀마 소수민족 로힝야족 난민들이 보트를 이용해 강을 건넌 후 하선하고 있다. (우) 미얀마 정부군과 로힝야족 무장세력간 유혈충돌을 피해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탈출한 로힝야족 난민들이 9월 3일 콕스 바자르 지역 인근에서 식량으 배급받기 위해 모여 있다. /AP연합뉴스

    '자비의 종교'인 불교를 숭상하는 미얀마인들이 이민족을 잔혹하게 배척하는 것은 종교적 이질감보다는 역사적으로 핍박받았던 과거의 기억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 미얀마 내에서 유일하게 이슬람교를 믿는 로힝야족은 미얀마인들을 지배했던 무슬림과 같은 종교를 가졌다는 이유로 타도의 대상이다.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미얀마 내부에서는 무슬림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할 수 밖에 없었다. 1982년 군부독재가 들어서면서 이들은 로힝야족의 시민권을 박탈했고, 92년에는 로힝야족을 포함한 모든 무슬림을 불법이민자로 간주한다는 회견을 발표했다. 로힝야족이 언제부터 미얀마 땅에 살았든 무슬림인 이상 불법이민자로 보겠다는 얘기이다. 미얀마 정부는 이후 이들에게 불교로의 개종, 토지 몰수, 노동 등을 강제하며 지속적인 탄압을 해왔다.

    결국 로힝야족은 미얀마를 탈출하여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로 향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탈출 과정 중에 '보트 피플'이 되어 바다 위에서 목숨을 잃거나 인신매매와 같은 반인륜적 범죄에 노출된다. 2012년 6월에는 로힝야족이 모여 살고 있는 라카인 지역에서 불교도와 유혈 충돌이 발생하면서 로힝야 주민 2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국제 사회는 이 지역에서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미얀마 정부군에 의한 로힝야족 탄압, 학대 살상이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다른 나라로 망명하려는 로힝야족 난민의 숫자가 급증하고 있으며, 현재 미얀마군은 남아있는 로힝야족을 무차별 학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치 여사 역시 이렇다 할 만한 해결책과 인도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다.

    우리가 왜 다른 민족까지 먹여살리나 카탈루냐

    그들은 어떻게 스페인에?

    중세 무렵, 지금의 스페인 지역에는 카스티야 연합 왕국, 카탈루냐 연합 왕국, 나바라 왕국, 사라고사 왕국, 등 여러 나라가 형성돼 있었다. 이 나라들은 15세기 말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서 의기투합했는데 이때, 현재 스페인 땅의 대부분을 가지고 있던 카스티야 왕국의 여왕 이사벨과 지금의 카탈루냐 왕국의 페르난도 2세가 결혼을 하면서 두 왕국은 지리적 통합을 한다. 당시 카스티야 왕국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는 등 지금의 카탈루냐 지역보다 영토와 경제력 면에서 앞서 있었고, 왕위 계승 문제에서도 카스티야 왕국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면서 카탈루냐 왕국은 점차 자치적 지위를 잃어갔다. 그리고 이후 벌어진 왕위 계승 전쟁에서 카탈루냐 왕국은 자치권을 인정해줄 것 같은 함스부르크왕가의 카를 6세 편에 섰지만, 부르봉 왕가의 펠리페 5세가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스페인의 일개 주로 전락한다. 펠리페 5세는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하면서 카탈루냐의 자치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카탈루냐는 완전히 카스티냐 중심의 스페인 왕국에 복속됐다.

    무엇이 문제인가
    (좌)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분리·독립을 묻는 주민투표가 시행된 10월 1일, 스페인 경찰이 카탈루냐 중심 도시 바르셀로나의 한 투표소 인근에서 주민들에게 곤봉을 휘두르고 있다. 스페인 정부는 이날 분리 투표를 막기 위해 경찰력을 투입해 일부 투표소를 봉쇄했으며, 투표 찬성 주민 집회를 강제 해산시키기도 했다. (우) 독립을 요구하는 카탈루냐 주민들 /AP 연합뉴스

    카탈루냐는 3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줄곧 독립을 요구하고 있다. 2006년에는 더 많은 자치권을 스페인 정부로부터 부여받았으나 이에 만족하지 않고 완전한 독립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카탈루냐가 이렇게 독립을 주장하는 이유는 그들만의 독자적인 문화와 정체성에 있다. 이들은 꽤 오랜 기간 스페인에 속해 있었지만 카스티야어(스페인어)를 쓰는 스페인 문화 속에서 쉽게 융화되지 못했다. 다른 왕국과 정체성도 달랐고, 카탈루냐어라는 언어를 여전히 쓰고 있다. 스페인인보다는 카탈루냐족이라는 민족 정체성이 뿌리 깊은 것이다.

    정체성 문제도 있지만 최근 들어서는 경제적 이유가 훨씬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인구 약 756만명의 카탈루냐는 상공업과 관광 산업이 탄탄해 스페인 전체 경제 규모의 20% 정도를 차지한다. 이 때문에 자치와 분리를 주장하는 스페인 지역 중 가장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이들의 주장은 2011년 스페인 정부가 재정난을 겪은 뒤 더욱 거세졌다. 스페인 정부가 적자를 메우기 위해 카탈루냐에게 더 많은 세금을 징수하자, 카탈루냐 지역이 스페인 전체를 부양하고 있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카탈루냐 분리 독립론자들은 "매년 150억유로(약 21조원)를 스페인 정부에 세금으로 내지만 중앙정부의 공공 서비스는 이에 미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카탈루냐에서는 2014년 분리 독립을 결정하는 비공식 투표를 진행했고, 이를 토대로 2017년에는 공식 투표까지 강행했다. 투표를 저지하기 위한 스페인 경찰과 진행하기 위한 카탈루냐인들 사이에 대규모 충돌이 벌어졌고, 스페인 정부와 카탈루냐 자치구 양측 모두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90% 이상이 찬성이라는 결과에 따라 카탈루냐의 독립 선언을 했지만, 스페인 정부는 자치권 회수로 압박하며 카탈루냐에 대한 직접 통치를 밝혔다. 각 소수 민족을 안고 있는 유럽 주변국들도 카탈루냐의 움직임이 유럽 통합을 방해한다며 반기지 않는 분위기다.

    세계 최대의 소수민족 쿠르드족

    그들은 어떻게 이렇게 뿔뿔이?

    '언어와 민족을 갖고도 단 한번도 나라를 가져본 적 없는 민족'인 쿠르드족은 현재 세계에서 나라가 없는 민족 중 규모가 가장 큰 소수민족이다. 우리에게는 중동 지역의 무장 단체, 테러 세력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중동 지역 정세를 이해하기 위해서 쿠르드족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본래는 쿠르디스탄 지역(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 아르메니아에 걸쳐있는 산악 지역)에 사는 산악 민족이었던 이들은 오랫동안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아왔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만 제국이 지고, 이 지역이 터키·이란·이라크·시리아·아르메니아로 나눠지면서 함께 다섯개 나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현재는 각국에서 쿠르드족이 독립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쿠르드족과 관련한 유명한 말이 있는데 바로 '쿠르드족에게는 산만 있을 뿐 친구는 없다'이다. 오랜 세월 국제 사회의 외면과 주변국 및 강대국들의 이용과 학대 등으로 나라없는 설움을 겪고 있는 쿠르드족의 현실을 나타내는 말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좌) 2017년 9월 16일 이라크 북부 쿠르드자치정부(KRG)의 수도 격인 아르빌에서 쿠르드족 분리 독립 투표를 지지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시위 참가자들은 쿠르드족 깃발을 흔들며 오는 25일 예정된 투표 참여를 독려했다. (우) 2016년 10월 17일(현지 시각) 이라크 모술에서 동쪽으로 약 25㎞ 떨어진 자르닥산 인근에서 쿠르드 자치정부 민병대(페슈메르가) 대원들이 전투를 준비하고 있다. 이날 이라크 정부군과 서방동맹군 등은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가 점령한 모술 탈환 작전에 들어갔다. /연합

    오랫동안 나라없이 살아 온 쿠르드 족은 20세기 무렵, 독자적인 민족성과 문화성을 깨닫고 자치와 독립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쿠르드족은 여러 국가로부터 박해와 학살을 당했다. 특히 쿠르드족이 대거 분포하고 있는 다섯 나라에서 이들에 대한 차별은 여전하며, 각 나라 정부군들은 독립 움직임을 보이는 쿠르드족을 탄압하고 있다. 시리아에서는 차별과 학대에 반발하는 봉기를 무력으로 진압했으며,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에서는 화학무기로 쿠르드인들을 대량 학살했다. 터키에서는 한때 쿠르드어와 쿠르드식으로 이름을 짓는 것이 금지됐다. 쿠르드 정치인들과 분리주의 조직들을 공격의 대상이다.

    그들만의 자치 국가를 꿈꾸지만,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내부 분열 문제가 매우 심각하기 때문이다. 각국의 쿠르드족은 국제 정세나 상황에 따라 다른 나라의 쿠르드족을 공격하며, 이라크나 이란은 자국의 쿠르드족의 독립을 반기지는 않으면서 상대국 쿠르드족에게는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 쿠르드족간의 분열을 부추기기도 한다. 이미 오랫동안 멀리 떨어져 지내면서 생각과 문화가 많이 달라져 각국에서 주장하는 쿠르드족의 자치와 독립에 대한 입장은 모두 제각각이다. 다섯 나라들은 물론 관련국들은 쿠르드족의 독립을 반기지 않고 있다. 쿠르드족 자체 규모가 너무 크고 그들의 거주지가 석유 산지와 겹치기 때문이다. 중동의 국가들이 쿠르드족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최근 잦은 내전과 IS의 득세로 정세와 치안이 어지러운 이라크와 시리아 내부에서 쿠르드족의 자치 정부 입지는 비교적 탄탄해졌다. 이라크 내 쿠르드 자치 정부는 IS에 맞설 수 있는 무장세력으로 부상하면서 얼마 전 이라크 정부군과 함께 IS의 근거지인 이라크의 모술을 탈환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시리아 내에서도 쿠르드족의 자치 정부인 로자바가 있으며 본래 적대 관계였던 시리아 정부군과 현재 함께 IS를 격퇴하고 있다. 

    입지와 상황이 나아지면서 이라크 내 쿠르드 자치 정부의 분리 독립 문제가 중동 지역의 화두로 떠올랐다. 지난 9월 쿠르드 자치 지역 내에서는 분리 독립을 묻는 투표가 이뤄졌다. 독립 투표를 지난 9월 25일 단행해 압도적인 '찬성' 결과를 손에 쥐었다. 하지만 이라크 정부가 "국가 통합을 저해하는 분리 독립 투표는 용인할 수 없다"며 대규모 군대를 동원해 쿠르드족이 점유한 유전 지대 키르쿠크를 빼앗았다. 주요 수입원을 한순간에 잃은 쿠르드는 자치 정부 명맥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처지가 됐다. IS 격퇴 전만 해도 쿠르드에게 우호적이었던 국제사회는 입을 닫고 쿠르드를 외면했다.

    실제로 독립한 신생국이 있을까

    코소보
    코소보의 알바니아인들이 2008년 2월 독립을 축하하며 코소보의 수도 프리슈티나에서 미국의 성조기와 알바니아기를 흔들고 있다.

    2008년 탄생한 신생 독립국이다. 코소보를 둘러싸고 알바니아인들과 내전을 벌였던 세르비아는 여전히 코소보를 국가를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UN의 111개국은 독립을 승인하였다. 본래 중세 때부터 세르비아 왕국의 영토였던 코소보는 세르비아인들에게는 정신적 고향과 같은 곳이다. 세르비아 왕국 문화의 중심이었으며 세르비아 정교회의 첫 번째 교구가 개설된 장소이다.

    하지만 15세기 오스만 제국의 침략으로 세르비아 왕국이 쇠락하면서 세르비아인들은 북부로 이주하고, 코소보엔 오스만 제국에 의해 알바니아인들이 대거 옮겨오면서 급속한 이슬람화가 이뤄졌다. 이후 세르비아 정교를 믿는 세르비아인과 이슬람을 믿는 알바니아인들이 공존했는데 문제는 10% 미만인 세르비아인들이 90% 이상의 알바니아인들을 지배하고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이었다. 두 차례에 걸친 유고 내전 중 신유고 연방을 결성한 세르비아인 대통령인 밀로셰비치는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코소보의 알바니아계 주민을 색출한다는 명분으로 무차별 학살을 자행했다.

    국제사회의 잇따른 경고에도 학살과 내전이 계속되자 북대서양기구(NATO)는 군대를 보내 세르비아를 공격했다. 이로 인해 인종청소를 감행했던 세르비아의 대통령 밀로셰비치가 전쟁범죄자로서 재판을 받고, 알바니아인들의 코소보는 2008년 독립 국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동티모르
    독립기념일 행사를 진행하는 동티모르. 동티모르는 2002년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한 신생독립국으로 인도네시아 최남단에 있는 티모르 섬 동쪽에 있다. /연합뉴스

    400년동안 포르투갈령이었다가 베트남 전쟁 직후 인도네시아의 침공으로 인도네시아의 지배를 받은 곳이다. 구성원의 대부분은 테툼족으로 인도네시아의 주류를 이루는 자바인들과는 다른 민족이다. 꾸준한 투쟁 끝에 2002년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했다.

    독립을 위한 동티모르인의 투쟁이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991년  11월에 발생한 산타쿠르즈 대학살(Santa Cruz Massacre)이다. 인도네시아 군에게 살해된 동티모르 청년의 장례식 주간에 동티모르인들이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자 인도네시아 군이 이에 무차별 발포한 사건을 가리킨다. 이 사건으로 271명이 사망하고 278명이 부상하였으며 270여 명이 실종되었다. 800여명의 인명 사고를 낸 이 사건이 영국 요크셔 방송국 기자에 의해 알려지면서 인도네시아를 지원해 오던 미국은 1992년부터 인도네시아의 공여정책을 철회하고, 1993년 3월 유엔인권위원회(UNCHR)에 인도네시아를 규탄하는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1998년 하비비 대통령은 동티모르의 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이 심해지자 동티모르의 독립을 인정하였다.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의 통치권 아래 자치권을 가질 것인지 아니면 완전히 분리 독립할 것인지의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했고  78.5%가 독립에 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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