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이 된 지 20년, 권은주가 다시 뛴다

    입력 : 2017.10.27 03:03

    1997년 첫 출전해 한국 신기록… 20년 되도록 아무도 못 깨

    "선수 땐 죽을 힘 다해 달려… 그때 못본 아름다운 풍경 즐길것"
    서포터스 20명과 풀코스 동행

    1997년 10월 26일 강원도 춘천에선 여자 마라톤 한국 신기록(2시간26분12초)이 나왔다. 첫 풀코스 도전에 완주, 대회 우승, 그리고 한국 기록까지. 주인공은 권은주(40) 현 아식스 러닝클럽 감독이었다. 이튿날 조선일보는 '첫 완주서 큰일…마라톤 신데델라'란 제목의 기사를 대서특필했다.

    권은주 감독은 여전히 한국 기록 보유자다. 강산이 두 번 바뀔 동안 그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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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은주가 세운 한국 신기록은 20년째 깨지지 않고 있지만, 그 사이 20·30대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마라톤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으며 인기 스포츠로 성장했다. 그는“여성 마라토너가 귀했던 예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라고 했다. 권은주(맨 앞) 감독이 서울 한강 잠원지구에서 일반인 참가자들과 함께 훈련하는 모습. /이진한 기자
    그는 29일 열리는 2017 춘천마라톤(조선일보·춘천시·스포츠조선·대한육상연맹 공동 주최)을 몇 달 앞두고 결심했다. 한국 기록 달성 20주년을 기념해 다시 춘천 풀코스를 달리기로. 지난 22일 서울 한강공원에서 만난 권 감독은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작년 뉴욕 마라톤을 뛰긴 했지만…오랜만에 달리려니 쉽지 않네요. 세월이 많이 흐르긴 했나봐요(웃음)."

    20년 전, 홀로 뛰었던 권 감독 곁엔 20명의 동료가 있었다. 그는 이번 대회를 함께 뛸 서포터스들을 직접 모집했다. 권 감독은 "기록 단축이 목표인 분들은 배제하고 서로 다독이며 완주할 분들을 뽑았다"고 말했다. 이날은 총 4차례의 공식 훈련 중 마지막 연습날이었다. 12㎞ 러닝을 마친 권 감독이 동료들을 불러 모았다. "남은 일주일 동안 체력 조절 잘해주세요. 이제 즐겁게 달릴 일만 남았습니다!"

    권은주가 1997년 춘천마라톤에서 한국 신기록을 세우며 결승선을 통과하는 장면.
    권은주가 1997년 춘천마라톤에서 한국 신기록을 세우며 결승선을 통과하는 장면. /조선일보 DB
    현역 시절과 달리 직장 생활(아식스 스포츠마케팅 팀장)을 하는 권 감독에겐 '풀코스' 도전 자체가 모험이었다. 30㎞ 러닝 훈련을 하다가 체력이 고갈돼 포기한 적도 있다. 그러다 문득 '왜' 달리는지 생각하게 됐다. "이젠 선수 때처럼 기록 때문에 스트레스 받으며 죽을 힘 다해 뛸 필요 없잖아요(웃음). 힘들면 걷겠습니다. 완주는 꼭 할 거예요. 예전에 그냥 스쳐 지났던 춘천의 산과 호수, 단풍 보면서 '펀 런(Fun Run)' 할 겁니다."

    권 감독은 춘천 코스를 '달릴 맛이 나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아름다운 풍경은 물론 춘천 시민들의 거리 응원, 아기자기한 도시 분위기까지 모두 맘에 든다"며 "서울에서 뛰면 혼자 뛰는 느낌이지만 춘천에선 누군가와 함께하는 기분이라 힘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춘천마라톤 70주년을 맞아 10㎞ 부문에 출전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춘천은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곳이잖아요. '마음의 고향'이죠."

    최근 일반 여성들 사이에선 마라톤이 '대세'가 됐다. 특히 20~30대 젊은 여성들이 함께 모여 달리는 '크루' 문화가 자리 잡았다. 올해 춘천마라톤의 경우 풀코스·10㎞ 부문을 합해 여성 비율은 약 20%다. 권 감독은 "여성 마라토너가 귀했던 예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라며 "마라톤은 특별한 장비 없이 쉽게 접할 수 있기에 여성에게도 매력적인 스포츠"라고 말했다.

    그가 바라보는 엘리트 마라톤은 어떨까. "지금 선수들도 실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어요. 사실 예전엔 기록 욕심이 있었지만…이젠 후배들이 제 기록을 깨주길 바라는 마음이 큽니다." 은퇴한 선배는 또 다른 '춘천의 기적'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었다.


    [인물정보]
    '마라톤의 전설' 권은주는 어떤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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