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스타 부부의 '마지막 몸짓'

    입력 : 2017.10.26 03:02

    ['오네긴'으로 유니버설 떠나는 수석무용수 황혜민·엄재용 부부]

    입단 후 1000회 넘게 호흡 맞춰…
    황 "아내와 엄마로서 사는게 꿈", 엄 "공연과 발레 교육 병행 예정"

    연습복 차림의 황혜민은 이미 타티아나였다. 가녀린 몸짓의 그녀였지만 자신에게 격정적으로 구애하는 오네긴(엄재용)을 사랑하면서도 고통스럽게 밀쳐냈다. 얼굴에 핏줄이 올랐고, 커다란 두 눈이 어느새 그렁그렁해졌다. 그에게 이끌려 품 안에 안겼다 몸부림치더니 공중으로 솟구치고…. 그런 타티아나를 애절하게 바라보는 오네긴의 동작도 거칠게 폭발했다. 드라마 발레의 대표작 '오네긴'의 절정으로 꼽히는 3막 2장 '회한의 파드되(2인무)'다.

    다음 달 24일에서 26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를 발레 '오네긴' 주연을 맡은 유니버설발레단(UBC)의 스타 부부 황혜민(39)·엄재용(38)은 막상 연습이 끝나니 언제 고통스러워했냐는 듯 환하게 웃었다. 러시아 문호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원작을 무대로 옮긴 '오네긴'은 시골 처녀 타티아나가 귀족 청년 오네긴과 사랑을 나누며 방황하고 성장하는 이야기다. 2012년 결혼해 수석무용수 부부가 된 이들의 발레단 은퇴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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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니버설 아트센터 연습실에서 ‘오네긴’의 3막을 연습하고 있는 엄재용과 황혜민 부부가 극적인 표정 연기에 한창이다. /김지호 기자

    "매번 완벽을 향해 가다 보니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마지막 공연이라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놓여요. 진정으로 즐긴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지요." 황혜민은 "인생의 같은 곳을 바라보고 싶어 재용씨와 결혼한 게 저의 큰 즐거움이었고, 무대를 같이 서는 동안 너무나 행복했다"며 웃었다. 그런 황혜민의 손을 잡아주던 엄재용은 "10년 넘게 같이 무대에 섰다가 함께 무대를 걸어나오는 것도 의미 있는 것 같다. 기쁘면서도 굉장히 슬프다"고 했다.

    엄재용은 2000년, 황혜민은 2002년에 UBC에 입단했다. '백조의 호수' '돈키호테' '지젤' 등 UBC 모든 레퍼토리에서 주역으로 호흡을 맞췄다. 지금까지 함께한 공연만 1000회가 넘는다. "감정을 모두 쏟아낼 수 있는 인생에서 가장 자유로운 순간"(황혜민), "극도의 단련을 통한 성취감"(엄재용)으로 무용에 빠져들었다고 말했다. 엄재용은 오네긴에 대해 "발레 인생에 전환점을 준 작품"이라고 했다. "2009년 혜민씨와 이 작품에서 호흡을 맞추는 동안 제 시야가 180도 확장됐어요. 틀에 박혀 있는 감정에서 벗어나 내 감정을 싣는 춤이란 게 무언지 깨달을 수 있었죠." 황혜민은 "진정한 여자의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했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저에게 무용수로의 인생만 존재했다면 이젠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와 아이도 낳고 키우는 행복을 맛보고 싶어요."

    황혜민은 '은퇴'라고 못 박았고, 엄재용은 공연과 발레 교육을 병행할 예정이다. 안무가로서의 미래도 꿈꾸고 있다. 박지성 선수 팬이자 영국 축구 마니아인 엄재용은 "박지성 선수와 비슷한 시기 부상을 당하고 재활했기에 더욱 애착이 간다"며 "국내 발레계엔 수준급의 재활 프로그램이 아직 없는데 앞으로 그쪽 분야도 파고들어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 축구 이야기에 들뜬 엄재용을 보며 황혜민이 말했다. "아들 낳으면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보낼 거라는데, 전 딸을 낳을 거예요(웃음). 삶이 앞으로도 더 재미있어질 것 같아요." 둘은 24일과 26일 공연에 나선다. (070)7124-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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