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사물극장] [17] 커피를 사발로 마신 시인 김현승

조선일보
  •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입력 2017.10.26 03:11

    커피는 사물보다 기호식품이라고 해야 더 옳을 테다. 커피의 전설은 이집트 북부의 한 염소치기 목동에서 시작한다. 한 염소치기 목동이 얌전한 염소들이 처음 보는 나무 열매를 따 먹은 뒤 미쳐 날뛴다고 수도원장에게 전했다. 원장이 그 나무 열매를 따 먹어보고 효능을 확신했다. 이 열매를 끓인 물을 마신 수도사들은 야간 예배에서 더는 졸지 않았다. 그때부터 커피나무에서 수확한 열매를 볶고 갈아서 끓인 물에 타 마시는 관습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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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를 두고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천사처럼 순수하고 사랑처럼 달콤하다"고 찬탄한 이는 프랑스의 외교관 탈레랑(Talleyrand·1754~1838)이다. 커피는 권태로 늘어진 영혼을 환희로 적시고, 둔한 영혼에 날카로운 각성과 기쁨을 주는 신의 음료로 찬사를 받았다. 서울 도심에서 점심 무렵 테이크아웃 커피 잔을 들고 걷는 직장인을 만나는 것은 한가로운 일상 풍경 중 하나다.

    '절대 고독'의 시인 김현승(1913~1975)은 커피를 좋아했다. 아버지 김창국이 신학 공부를 위해 머문 평양에서 6남매 중 2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첫 목회지인 제주읍을 거쳐 7세 때부터 광주에서 성장했다. 1934년 평양 숭실전문학교로 유학을 가는데, 재학 시절 동아일보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30대 후반인 1951년 4월 조선대학교 부교수로 임용되며 광주에 자리를 잡았다.

    김현승은 커피를 사발로 마신 걸로 유명했다. 그만큼 커피를 사랑했다. 그는 커피를 마시는 동안 내면의 '절대 고독'을 응시하면서 권태와 번뇌에서 벗어났다. 그에게 가을은 "술보다 차 끓이기 좋은 시절"이었고 "가을이 외롭지 않게 차를 마신다"고 노래했다. 11월 긴 밤을 '차 끓이며 끓이며 외로움도 향기인 양 마음에 젖는다'고 쓰고, 자신의 호마저 '다형(茶兄)'이라 했다. 그가 언제부터 커피를 마시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는 평생 시인과 교육자의 길을 걸었다. 1975년 4월 숭전대(지금의 숭실대)에 강의하러 갔다가 채플 시간에 쓰러졌다. 결국 일어나지 못하고 예순두 해의 삶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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